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노 Jan 09. 2022

느슨한 공백이 주는 작은 위로

빠르면 6년, 보통은 7년. 지금처럼 대학 졸업을 미루는 풍조가 드물던 2000년 초반, 나는 8년에 걸쳐 대학을 졸업했다. 4년을 공부했고, 4년은 쉬었다. 물론, ‘군대’라는 피치 못할 공백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회 진출이 무서웠던 탓인지, 게으른 천성 탓인지 잘 모르겠다. 왠지 모르게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기 싫었을 뿐이다. 나는 학교를 쉬면서 어떠한 생산적인 일에도 뛰어들지 않았다. 남들은 공무원, 변리사 등 저마다의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휴학계를 신청했다. 괜히 ‘나만 시간을 낭비하는 건가’ 싶었다.


4학년이 시작될 무렵, 친구들은 취업전선에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었다. 누구는 어디 대기업에 붙었다더라, 누구는 공무원에 합격했다더라 등, 친구들의 취업 소식이 들릴수록 뒤쳐지는 마음만 커졌다. 겉으로는 웃으며 축하의 말을 건냈지만, 사실 속으로는 불편했다. 차라리 모른 척해줬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학교에는 새 정장에 어설픈 넥타이, 매끈한 구두를 신은 친구들이 곳곳에서 자신감 있게 활보하고 다녔다. 녀석들은 모든 걸 다 이룬 듯한 표정으로, 기꺼이 자신의 신용카드를 긁었다.


우여곡절 끝에 늦게나마 설계사무소에 들어갔다. 학생 시절에는 늘 유학을 가고 싶었다. 그런데 취업시즌이 되니, 왠지 어려울 것 같았다. 늘 원대한 이상을 그렸지만, 그에 비해 노력은 충분하지 않았다. 취업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해야 할 것 같았다.


회사에서 맛본, 건축 설계는 미디어에 비친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아니, ‘사뭇’이라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설명이 턱없이 부족했다. 박봉이었고, 강도 높은 야근은 필수였다. 출근시간에 출근하고 퇴근시간에 퇴근하지 못했다. 집에 가면 쓰러져 자기 바빴고, 눈을 뜨면 출근하기 바빴다. 내가 어떤 삶을 꿈꿨는지, 어떻게 해야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결과는 형편없었다. 이게 내가 생각했던 이상이었나? 처음으로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한번 벌어진 균열은 걷잡을 수 없었다. 나는 채 2년을 버티지 못하고 회사를 뛰쳐나왔다.


친구와 사업을 준비했다. 당장 돈을 벌 수는 없었지만, 아이디어를 모았다.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동안 쌓아온 이상을 실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아이디어를 내는 것과 실행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몸을 움직이는 것은 머리로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에너지와 용기를 필요로 했다. 늘 머뭇거렸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제자리를 맴돌았다. 결국 아무런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렇게 1년 가까운 시간을 또다시 흘려보냈다.


나는 젊은 날의 공백이 늘 불편했다. 멈춰 있어 늘 불안했다. 남들보다 빠른 취직, 결혼, 승진이 인생의 승리로 향하는 길이라 생각했다. 비어있는 시간, 즉 공백을 최대한 제거하고 모든 시간을 생산적인 것으로 채워야 하는 거라 믿었다. 골인 지점을 향하는 선수처럼 쉬지 않고 달려야 한다 생각했다.


어쩌면 남들보다 빨라야 한다는 강박이, 젊은 날의 공백을 만든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면 잠시 쉬어가도 되는데, 곁을 지나쳐가는 누군가를 바라보며 조급한 마음만 키웠던 것 같다.




11시가 넘은 어느 주말의 늦은 아침, 찌뿌둥한 몸을 침대 밖으로 겨우 끄집어낸다.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본다. 늦게 일어났다는 마음에 괜스레 죄책감이 든다. 뭐라도 해보려 늦은 오후 집 밖을 향한다. 한적한 카페에서 자리를 잡는다. 멍하니 밖을 바라보며 별 시답잖은 생각을 하고, 남들의 SNS를 뒤지며 가십거리를 뒤진다. 분명 뭐라도 하려고 나왔는데, 또 시간만 축냈다. 스스로가 한심해진다. 의미 없이 시간을 또 버렸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다음에는 이러지 말아야지’하고 다짐한다.


현대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불편하다. 뭐라도 봐야 하고, 뭐라도 공부해야 한다.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야 하고,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틈이 없도록 꽉 찬 일정의 하루를 보낸다. 하루 종일 업무에 시달려도 퇴근 후 지친 몸으로 학원으로 향한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기계는 이렇게 효율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쉼 없이 정보를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움직이면 쉽게 고장 난다. 기계에 정기적으로 기름을 칠하듯이 인간에게도 휴식이 필요하다. 때로는 늦잠을 자고,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창 밖을 바라봐도 좋다. 이유 없이 계속 우울해질 때는 긴 시간 여행을 다녀와도 나쁘지 않다. 늘 팽팽한 고무줄처럼 긴장한 상태로 지내다가는 언젠가 툭하고 끊어질지 모른다. 때로는 느슨하게 풀어주고 휴식을 취해야 한다. 그래야만, 다시 팽팽한 상태로 돌아가도 부담이 없다.


비록  젊은 날의 공백이 불편했지만, 되돌아보면  시간만큼 스스로에게 집중했던 적은 없었던  같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시작한 대화가 아침 해가  때까지 이어졌다. 질릴 만큼 책을 읽을 정도로 여유로웠다.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깨달을 만큼 하루 종일 영화를   있었고, 떠나고 싶을  배낭 하나전국을 걸어 .  시간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었냐고 누군가 물어봐도, 나는 딱히 대답할 거리가 없다. 다만 지치고 힘들어 모든 것이 귀찮아질 , 가끔  시절을 떠올리며 피식 웃음을 지을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주도적인 삶 vs 시간에 끌려다니는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