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TI를 신뢰하는 편이 아니지만, 나는 INTP 성향과 거의 일치한다. 내향적이고, 직관적이며, 논리적이고, 즉흥적이다. 사람을 만나기보다 혼자 보내는 시간이 편하다. 말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관심 있는 분야라면 수다쟁이가 된다. 비합리적 규칙을 싫어하기 때문에 사회생활에 그리 능하지 않다. 불이익이 있을 줄 알면서도 기꺼이 상급자에게 항거한다. 또한, 구체적으로 계획하지 않는다. 계획보다는 순간의 상황과 생각에 따라 행동한다. 틀은 가지되 그 속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여행을 간다면 시간 단위로 계획된 패키지여행은 가급적 피한다. 숙소만 정하고 나머지 일정은 자유로운 편이 좋다. 가고 싶은데로 움직이고, 눈에 띄는 곳에 불쑥 찾아간다. 여행에서 겪는 우연함이 진정한 여행의 묘미라 생각한다.
새해가 시작되면,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새해 계획을 세운다. 브런치만 봐도 2022년 계획의 글로 넘쳐난다. 글을 쓰겠다, 운동하겠다, 영어 공부하겠다는 등 단골 레퍼토리가 이번에도 반복된다. 헬스장은 사람으로 가득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텅 비어있던 체육관이 하루아침에 달라졌다. 코로나가 무색할 정도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오래가지 않을 것 같다. 작심삼일일까? 브런치에 글을 올릴 정도면 그보다는 낫겠지. 아마 작심’삼십’일 쯤?
어린 시절, 방학이 시작되면 생활계획표를 만들었다.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당시에는 모양이 거의 비슷했다. 먼저 커다란 원을 그리고 선을 그어 시간을 나눈다. 공부하기, 놀기, 책 보기, TV보기 등 하루에 할 일을 가득 채운다. 시간에 맞춰 밥이 나오는 식당도 아니지만, 정확한 시간에 식사 시간을 기입한다. 솜씨 좋은 친구들은 알록달록 색을 칠하고 군데군데 그림을 그려 넣는다. 내용이 중요한지, 계획표 꾸미는 게 중요한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완성하면 괜히 뿌듯한 기분이다. 계획대로만 방학을 보내면 왠지 한 단계 성장한 내가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모두 알겠지만, 계획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관성으로 살아간다. 하던 일, 하던 방식, 하던 행동에 편안함을 느낀다. 조금이라도 궤도를 벗어나면 왠지 모르게 불안한 마음이다. 머리가 바꾸길 원해도, 몸이 적극적으로 거부한다. 아무리 강한 동기가 있어도 쉽게 변하는 법이 없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이전으로 회귀한다.
1월은 계획하기 좋은 시기가 아니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뭐든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사실 오만이다. 의욕 충만 상태는 자칫 과욕을 부른다.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감정에 이끌려 앞 일을 쉽게 계획한다. 9시에 일어나는 사람이 새벽 4시에 일어나는 미라클 모닝을 시작하고, 1년에 10권도 채 읽지 않는 사람이 100권 읽기에 도전한다. 글 한번 써본 적 없는 사람이 매일 글쓰기를 시도한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은 틀렸다. 시작은 아무것도 아니다. 지속하지 않으면 하지 않은 것과 같다. 1년 내내 할 수 있을 것 같은 운동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느슨해진다. 약속이 생겼다고, 몸이 좀 안 좋다고 한 번 두 번 빼먹는다. 빠지는 횟수가 늘어나고 운동이 귀찮아진다. 글도 하나 둘 완성 해갈수록 생각과 다름에 당황한다. 쓰는 행위는 생각보다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소재도 역시 빠르게 고갈된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일이 바빠지면 우선순위는 점차 뒤로 밀린다.
새로운 계획은 삶의 패턴을 바꾸는 일이다. 여유 시간을 쪼개어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삶의 한 부분을 채우려면 필히 다른 뭔가를 버려야 한다. 친구와의 술자리, 늦잠, 게임, 연애 등 뭐라도 하나 내어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삶을 바꿀 수 있다. 이런저런 핑계로 아무것도 포기할 수 없다면 그저 욕심에 불과하다.
물론, 나도 계획한다. 하지만, 새해라서 계획하지는 않는다. 하고 싶은 일, 필요한 일이 있다고 판단하면 언제든 계획하고 실행한다. 상황을 고려하고 충분히 여유 있다 판단하면, 그때 새로운 것을 끼워 넣는다. 또한, 구체적으로 계획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생활계획표처럼 빽빽하게 채워진 15분 단위의 삶은 성향상 맞지 않다. 생각만 해도 감옥에 갇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큰 틀을 만들고 그 속에서 자유로운 게 좋다. 몇 가지 필수 규칙을 정하고 세부 계획은 하지 않는다.
일주일에 글 하나를 쓰고 있다. 월요일 오전이 마감이다. 하지만, 언제 쓸지는 내 맘이다. 아침에 쓸지, 자기 전에 쓸지, 책상에서 쓸지, 카페에서 쓸지 정하지 않는다. 쓰고 싶을 때 어디서든 쓴다. 퇴근 후에 쓰고, 휴가를 내고 카페에서도 쓴다. 밤을 새기도 하고, 새벽 일찍 일어나 쓴다. 마감에 몰리면, 가족에게 양해를 구하고 카페로 향한다.
- 나의 글쓰기 -
하나 덧붙이자면, 삶의 큰 틀의 존재 여부가 계획의 성공률을 좌우한다. 이를테면,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같은 것 말이다. 이런 인생의 대전제는 계획에 당위를 부여한다. 반드시 해야만 내가 원하는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면, 돈이 되는 공부를 하고 행동으로 옮긴다. 선한 영향력을 가지고 싶은 사람이라면, 사회에 목소리 내는 일에 시간을 투자한다. 어떤 일을 시작하려 할 때, 이것을 왜 해야 하나 먼저 생각하자. 필요한 일이라면 주저 말고 시작하고, 필요치 않다 싶으면 과감히 포기하자. 어쩌면, 작은 욕심에 눈이 멀어 인생 전체를 낭비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