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와 PT
얼마 전, 뉴스에서 안타까운 비보가 전해졌다. 바로 넥슨의 창업자 김정주 전 회장이 유명을 달리했다는 소식. 명확한 사인을 밝히지 않았지만, 평소 우울증을 알아왔다는 기사 내용으로 짐작할 뿐이다. 같은 IT 종사자로서, 그의 죽음은 왠지 모르게 묵직하게 다가온다. 아직 할 일 많은 젊은 나이었고, 많은 개발자에게 롤모델 같은 존재였으니까. 한 사람의 정신과 영혼의 깊이를 감히 이해하진 못하겠지만, 물질적 풍요가 곧 정신의 풍요로 이어지는 건 아님을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다.
요즘, 세상 안팎으로 난리도 아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설마 했는데, 진짜 선을 넘었다. 푸틴에게 어떤 실익이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정권 연장이 아닐까 싶다), 모든 인류의 공공의 적으로 급부상했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은 대선이 한창이다. 투표는 이미 시작되었다. 역대급 사전투표율을 기록할 만큼 열기가 뜨겁다 못해 과열되었다. 이제 며칠이면 다음 대통령이 결정된다. 누가 될지 모르겠지만, 기대보다는 오히려 걱정이 앞선다. 오로지 자신의 권력을 위해 국민을 반으로 가르고 분열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과 여성, 20~30대와 기성세대, 여전한 영호남 갈등 등, 대한민국 곳곳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코로나도 여전하다. 미국이나 유럽을 보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아직 현재 진행 중이다. 확진자가 만 명을 넘더니 며칠 만에 20만 명을 훌쩍 넘었다. 주변에서도 확진자들이 끊이질 않는다. 고열과 몸살에 시달린다는 소식이 곳곳에서 전해진다.
회사는 또 어떤가. 언제나 고공 행진할 거라 믿었던 회사에 제대로 브레이크가 걸렸다. 눈 씻고 찾아봐도 긍정적인 기사 하나 없다. 온통 부정적 시각뿐이다. 보상 수준도 실망스럽다. 여기저기 불만이 터져 나오는데, 누구 하나 수습할 생각이 없다. 팀 프로젝트는 연거푸 연기되거나 취소되었다. 개편된 기형적 조직구조가 여기저기 혼란만 부추긴다. 일에서 재미를 찾는 건 진즉에 포기한 상태다. 어디로 나가야 할지 모르겠다. 감이 잡히지 않는다. 매일매일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는 기분이다.
3평 남짓 방 안, 컴퓨터 앞에서 하루 종일 모니터만 바라본다. 한참을 집중하다 이따금 우울이 훅하고 펀치를 날린다. 당황스럽다. 받아들일 준비도 시간도 없이 온몸으로 우울이 번진다. 마치 바이러스가 퍼져가는 것 같다. 이럴 때면, 차가운 방바닥에 등을 대고 눕는다. 불을 끄고 새하얀 천정을 가만히 바라본다. 아무 생각 없이 몸을 축 늘어뜨려 잠시 누워있는다. 조금씩 회복되는 기분이다. 그러나 곧 녀석이 다시 찾아올 것을 알고 있다. 빈도가 점점 잦아진다. 재택을 오래 한 탓일까?
한 사람에게 우울이 찾아오는 이유는 다양하다. 외부의 특정 사건이 원인이 되기도, 내적 심리 상태나 마음의 불안도 원인이 된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목적의식의 부재가 개인적으로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한다. 오랫동안 몰두했던 대상이 의미 없게 느껴질 때, 허무함과 함께 우울이 찾아온다. 그럴 때면, ‘왜 살아야 하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지?’ 같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반복한다. 하지만, 답은 없다.
가벼운 우울은 누구나 이겨낼 수 있다고 믿는다. 가만히 방구석에 앉아 있기보다 바깥으로 나가자. 친구를 만나는 것도 좋고, 영화를 보러 가는 것도 괜찮은 생각이다. 무작정 달리며 턱밑까지 숨이 차오르는 걸 느껴보든 것도 좋다. 아니면, 이참에 운동을 등록해 버리자. 혼자 시작하는 것보단 누군가 함께 하는 것이 훨씬 나으니까.
사고 싶은 걸 잔뜩 사는 것도 임시 처방으로 썩 나쁘지 않다. 당장 입에 풀칠하기 어렵지 않다면, 그동안 쌓아 두었던 위시리스트를 꺼내보자. 이 순간에는 ‘필요함’에 집착하지 말자. 오로지 갖고 싶은 걸 위해 마음껏 소비하자. 지갑은 얇아지겠지만, 그게 뭐 대수일까.
나는 최근에 두 가지를 질렀다. 하나는 PT 등록, 또 하나는 자전거 구입이다. 몸뚱이는 점점 비대해지고, 회복 능력은 갈수록 악화된다. 살기 위한 운동이라는 말은 먼 미래에나 할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현실화되어 버렸다. 자전거는 헬스장에 가기 위한 교통수단으로 알아보기 시작했다. 걸어가기엔 멀고 차를 타기엔 부담스러운 거리라, 가볍게 타고 다닐만한 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접히면 좋겠다 싶었다. 한국은 자전거 도둑이 판치는 세상이라 실내에 들여야 안전하다. 들고 다녀야 하므로 작고 가벼워야 한다. 점점 판이 커진다. 가격은 올라가는데, 눈은 저 높은 꼭대기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다. 이쯤되면, 운동하려고 사는 건지, 갖고 싶어서 사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몰두할 대상이 생겼다. 분명 반가운 일이다. 신나게 건강해지고, 마음껏 패달을 밟아보자. 지갑 사정은 다소(‘다소’라고 쓰고 ‘아주 많이’라고 읽는다) 팍팍해지겠지만, 마음 사정이 나아진다면 그럭저럭 등가교환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