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존 인물과 무관합니다. 실제 겪은 몇몇 사람과 들었던 얘기에 약간의 양념을 추가했습니다.)
나름대로 꽤 많은 회사를 다녔다. 기간으로 따지면 14년, 수로 따지면 9군데쯤 된다. 아주 작은 회사부터 나름 대기업이라 불리는 지금의 회사 까지. 그만큼 많은 사람과 일했고, 다양한 상사를 만났다. 이런 사람이라면 연봉쯤은 괜찮다 싶은 적도 있었고, 밤마다 이불 킥을 날리게 만드는 빌런도 있었다. 그들은 폭력이나 폭언을 행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은근히 나를 힘들게 만드는 부류였다. 밖에서 보면 누구나 들어가고 싶은 회사지만, 이들 때문에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었다.
| 퇴근 전 일 시키는 상사
드라마를 보면, 꼭 퇴근하기 직전 일을 주는 상사가 있다. 회사를 다니기 전에는 저런 사람이 실존할까 싶었다. 그저 드라마 속 과장된 인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사회에 나와보니 생각 외로 이런 사람 많더라.
10년쯤 됐을까. 약속 있던 날, 퇴근하기 10분 전쯤이었다. 당시 직속 상사 A 실장의 급히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귀를 의심했지만, 분명 그분의 목소리였다.
‘하필 지금.. 설마.. 아니겠지?’
‘네!’ 하고 얼른 대답했지만, 일어나고 싶지 않았다. 불안했다. 제발 일 주는 게 아니길,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그리고는 자리로 다가갔다. 이런저런 설명을 구차하게 하는 거 보니, 역시 일이구나 싶었다. 2시간쯤 걸릴 것 같았다. 속으로,
‘지금 해달라는 건가? 아니면, 내일 해도 되는 건가?’
잘 보이고 싶었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당장 처리했겠지. 하지만 나는 불합리함에 몸서리치는 사람이다. 그래서 직설적으로 물었다.
“저 약속 있는데, 지금 해야 하나요?”
잠깐의 정적. 모두 내 대답에 깜짝 놀란 것 같았다. A실장의 눈썹이 꿈틀대고 있었다. 나를 보며 ‘당돌하네?’, ‘요것 봐라 니까짓 게?’ 같은 말을 퍼붓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어이없다는 투로 이렇게 말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에요?”
이후 A실장 같은 사람을 몇 번 더 만났다. 처음에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던 그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들은 보통 일에 진심이다. 말하자면 워커홀릭. 일과 생활에 경계가 없다. 퇴근에 맞춰 일하기보다는, 일에 맞춰 퇴근하는 케이스다. 지금 당장 일을 처리해야 직성이 풀린다. 타인의 퇴근 시간이나 저녁 약속은 관심 밖이다. 오로지 일에 초점을 맞출 뿐이다.
| 자신의 성공만 탐닉하는 상사
회사에서 성공하려면 남을 밟고 올라가야 한다지만, 가끔 도가 지나친 상사가 있다.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탐욕에 따라 움직인다. 경쟁자뿐 아니라 팀원조차 하나의 소모품처럼 여긴다. 승진과 인센, 인정만을 탐욕한다. 팀원을 갈아 넣어도 일말의 미안함 조차 없다. 목표 달성을 위한 작은 희생일 뿐이라 생각한다. 마치 소시오패스의 행동 같다.
자신의 상사가 이런 사람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위해 평가 시즌에 잘 관찰해보자. 팀원을 생각한다면 보상에 있어서도 자신보다 팀원을 먼저 챙긴다. 자신의 파이가 작아지더라도 고생한 사람들에게 가장 큰 파이를 분배한다. 하지만, 본인의 성과만 탐닉하는 상사는 자신에게 가장 큰 파이를 할당한다. 그리고 수족처럼 부리던 자기 사람들에게 나머지를 쥐어주며 신경 썼다며 생색낸다. 철저히 이익에 맞춰 행동한다. 나머지 사람들은,,, 말해봐야 입만 아프다.
| 제집 드나들듯 선 넘는 상사
선을 넘는다는 건, 사실 개인차가 크다. 어떤 사람은 가족 같은 회사를 지향한다. 모두 형 동생 하길 원하고, 사생활도 공유하길 원한다. 또 어떤 사람은 계약한 만큼만 일하는 곳으로 생각한다. 회사나 팀에 그 어떤 애정도 없다. 선을 긋고 나와 회사를 철저히 분리시킨다.
누가 맞고, 누가 틀리냐의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팀원의 성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자기 기준으로만 행동하는 리더다. 가족 같은 분위기의 회사를 만들겠다고 모두에게 자신의 기준을 들이민다. 시도 때도 없이 술 먹자 조른다. 그리고 사생활도 거침없이 캐묻는다. 상대적 약자인 팀원은 단칼에 자르기 어렵다. 혹시라도 불이익을 받을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눈치마저 없다면 정말 최악이다. 거절하고 또 거절해도 요구는 계속된다. 이쯤 되면 그만해야 하는데, 끝이 보이지 않는다. 분노 게이지가 계속 축적되고, 결국은 폭발해버린다. 하지만, 그들은 팀원이 화를 내는 이유를 모른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괜히 억울해한다.
만약 자신의 상사가 이런 사람이라면, 정확하게 말해야 알아듣는다.
“아니요. 싫습니다!!”
자신의 일과 기준, 이익만을 쫓다 보면 언제든 누군가의 빌런이 될 수 있다. 직급이 낮다고, 어리다고, 약해 보인다고 함부로 대하거나 피해를 주면 언젠가 모든 화살이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회사도, 직급도, 관계도 모두 시작과 동시에 끝을 향해 달려간다. 지금의 권력과 직위는 언젠가 사라질 신기루에 불과하다. 조심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며 욕심부리지 않는 것만이 회사든 어디에서든 롱런(Long-Run)할 수 있는 비결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