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의 별들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바람이 좀처럼 잦아들 줄 모르던 겨울의 어느 날.
우리는 그 얼음장 같은 호령에도 기죽지 않고,
하늘과 가장 가까이 맞닿은 고원을 향해
거침없이 올랐다.
낮에는 밭을 일구고 배추를 심는 땀방울과
밤에는 침묵에 잠긴 채 존재를 발산하는 빛방울이,
경이롭게 수놓아진 안반데기.
그 드넓고 깊은 우주를 품은 대지는
넉넉한 손을 활짝 뻗은 채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별무리 한가운데에 서서 눈을 맞추면,
일시에 모든 소리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별 하나를 세며 번민을 잊고,
별 하나를 그리며 고뇌를 지우고,
별 하나를 더듬으며 혼란을 털어냈다.
모든 무용한 덩어리들이
까마득한 블랙홀 속으로 먼지처럼 삼켜졌다.
우리는 그 무중력에 몸을 맡긴 채,
떠오르는 우렁찬 속삭임에 귀를 쫑긋 세웠다.
‘어이 거기, 무엇을 두려워하는 거지?
어깨는 왜 그렇게 움츠리고 있는 거야.‘
황소자리를 향해 화살을 겨누고 있던 오리온자리가
별안간 툭툭 시비를 걸어왔다.
넘치는 기백이 과연 밤하늘의 사냥꾼답다.
“해보고 싶은 일이 있는데 실패하면 어떡하지?
큰맘 먹고 도전했는데 형편없는 결과로 돌아온다면,
다시는 용기를 내지 못할 거야.”
겁에 질린 내 목소리가 불쑥 튀어나와 항변했다.
그 쭈뼛거리는 대답에 오리온은 코웃음을 쳤다.
‘이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잖아.
일단 나처럼 활을 들어. 목표가 보인다면
오로지 그것만 보고 시위를 당기는 거야.
화살이 과녁을 비껴가도,
도중에 고꾸라져도 뭐 어때.
다시 당기면 되지.
지체하다가 꼬부랑 할머니가 되면,
기력이 떨어져서 당기고 싶어도 못 당긴다고.
두고 봐. 수없이 바람을 갈랐던 화살이
반드시 그 궤적을 기억할 테니.’
오리온이 연이어 쏘아댄 말들이
허공을 가르고 날아와 마음에 꽂혔다.
나는 깊이 박힌 화살을 뽑아내 손에 단단히 쥐었다.
숨죽이고 있던 또 다른 이의 목소리가
고개를 내밀었다.
입꼬리를 축 늘어트린 채로 울상을 지었다.
“나는 지쳤어. 버티는 게 무슨 의미인지
이제는 잘 모르겠어. 이번에도 승진은 틀렸고,
이력서는 계속해서 폐기되지.
더 이상의 이유도, 방법도 못 찾겠어.”
그 주눅 든 모습에
황소자리가 단단한 뿔을 들이밀며 낮게 속삭였다.
‘내 머리에 달린 이 뿔이 보이니.
이건 숱하게 부딪히고, 수없이 다듬어져
마침내 지금의 모양이 된 거란다.
누군가에겐 쓸모없어 보이기도,
흉해 보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이 뿔을 가지기 위해
들인 시간과 노력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단다.’
그는 손을 뻗어
세월에 깃든 뿔을 조심히 쓰다듬었다.
제법 묵직한 무게감이 휘청이는 마음을 꾹 눌렀다.
괜히 손바닥을 쥐었다 피면서
남은 온기를 되새겼다.
순간, 투덜거리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불평을 쏟아냈다.
잔뜩 파리해진 얼굴이 쌓인 피로를 대변했다.
“모두 같은 사람으로 태어났는데,
사람을 대하는 건 왜 이렇게 쉽지 않을까?
나에게 인간관계란
영원히 답을 찾을 수 없는 숙제 같아.”
그 한숨 같은 푸념에
쌍둥이자리는 호탕하게 웃으며 속삭였다.
‘친구, 인간관계는 수능 문제집 같은 게 아니야!
괜히 머리 써서 풀려고 들면 더 꼬이기 십상이라고.
모르겠을 땐 그냥 칸을 비워둔 채
다음으로 넘어가는 거야.
쉬운 이야기부터 읽다 보면
문득 풀이 방법이 떠오르기도 하니까.
그리고 답이란 건 늘 혼자만 풀어가는 것도 아니다!
네가 잊고 있었던 것들에 대해
누군가 답을 채워놓고 갈 때도 분명 있을걸?’
그녀는 쌍둥이의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신기하게 바라보다 손을 내밀었다.
형제는 주저 없이 그 손을 맞잡고
씩씩하게 팔을 흔들었다.
에너지가 손끝을 타고 흘러와 마음에 번졌다.
손안에 기분 좋은 전류가 흘렀다.
그녀는 왜인지, 당장 연필을 잡고
빈칸을 채워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불현듯, 어디 숨어있었는지 모를
누군가의 목소리가 중얼거렸다.
“나는 왜 이럴까?
남들에 비해 나는 한참 모자란 것 같아.
타고난 재능도, 가진 외모도, 직업도 애매해
하나같이 평범하기 그지없잖아..”
그때, 조용히 경청하던 마차부자리가
나긋하게 속삭였다.
‘나는 오각형의 한쪽이 찌그러지게 태어나,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단다. 남들 모두 가지고 있는
신체가 없다는 건 참 불편하지 짝이 없었지.
그래서 나는 튼튼한 두 팔을 이용해
다리를 대신해 줄 마차를 만들었어.
나는 그 마차 덕분에,
하늘에서 가장 빠르게 달리는 별을 품게 되었단다.‘
얘야, 네가 가진 평범함이
너를 어디로 데려다 줄지 기대해 보렴.
생각할 줄 아는 두뇌와 반짝이는 두 눈.
그리고 언제나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두 다리로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말이야.
우리는 고개를 숙여 곧게 뻗은 각자의 다리를 보았다.
우두커니 서서 발 끝만 가만히 내려다보다,
뚜벅뚜벅 걸어 마차부자리의 옆자리에 올라탔다.
그렇게, 고삐를 서로의 손에 나눠 잡고
다 함께 마차를 몰았다.
우리는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별들과 나눈 속삭임을 하나씩 읊조려 본다.
오리온의 화살에서 용기를 쥐고,
황소와 머리를 맞대며 인내를 세기고,
쌍둥이 형제와 악수하며 우정을 다지다가,
마차부와 나란히 앉아 자신을 돌아본다.
우리는 무한한 낙원 속 자유로운 별자리가 되어
마주치는 성운과 인사하고,
지나가는 유성에 감탄하면서,
가슴을 짓누르던 돌덩이들은 모조리
진공 속으로 던져버린다.
한참 동안 하늘을 떠돌던 우리는,
서서히 들어차는 소음에
황혼에서 깨어나 지상으로 돌아온다.
그 상냥하고 다정한 별자리들과
다시 눈을 맞추고서 닿지 않을 작별 인사를 건넨다.
오늘의 우리는 안반데기를 내려가지만,
그곳에서 떼어 온 저마다의 별자리를 손에 들고서
내일을 보내고, 한 해를 나고, 평생을 살아보기로 한다.
용기 넘치고
끈기 있고
친절하고
지혜롭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