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뿐인 나의 동생
언젠가 내가 쓰던 주황색 다이어리 귀퉁이에서 '형제는 자연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라는 글귀를 본 적이 있었다. 정확하게 이 문장이 맞는지는 찾아봐야 할 텐데 그 다이어리는 고향 집 창고 같은 방 어딘가에 잘 박혀있을 것이다. 아빠도 항상 내게 이런 말을 해주셨다. '니 동생뿐이 없다.'고.
이번에 제주도를 내려가서도 나랑 가장 잘 놀아준 친구는 내 여동생이었다. 연년생인 우리는 정확히 2주 모자란 1년 차이가 난다. 같은 쌍둥이자리로 둘도 없는 친구이지만 부모님의 확실한 교육 탓에 내게 '야' 소리 단 한번 못했던 내 동생. 우린 어릴 때부터 항상 똑같은 머리를 하고 색깔만 다른 똑같은 옷을 입었다. 어릴 때는 그게 창피해서 싫었던 적도 있었던 것 같다. 우린 그때부터 운명적인 한쌍의 친구였는데 바보같이 그것도 모르고 둘이 어디를 같이 다니는 것도 솔직히 창피해한 적도 있었다. 참 어릴 때였다. 지금은 내가 동생에게 많이 의지하고 동생이랑 같이 놀려고 하지만 그로부터 많이 자라 버린 내 동생은 마지못해 이 불쌍한 언니랑 놀아준다.
그래서 지금 돌아보면 어릴 때 동생이랑 왜 더 잘 못 놀아 줬는지 더 보듬어주지 못했는지 후회와 미안함이 들 때가 있다. 세상 그 누구보다 미울 만큼 싸운 적도 많았고 아직도 허구한 날 만나기만 하면 티격태격 말싸움은 기본이지만 지금도 앞으로도 내 동생을 대체할 사람은 없을 거라는 걸 안다.
직장인이 되었다는 이유로 나보다 빨리 운전을 배웠다. 그리고 엄마가 끌던 차를 가지게 된 동생은 자기 차를 끌고 같이 제주도 바람을 많이 쑀다. 차의 조수석에 타고서 동생과 이 얘기, 저 얘기, 쓰잘데 없어 보이는 이야기마저 재미있다고 깔깔댔다. 농담 따먹는 말장난까지 배를 잡고 웃는 일은 예삿일이었다. 우린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맛있는 걸 같이 먹고 서로의 고민을 함께 나누었다. 제주도에서 가장 힘든 순간, 가장 재밌었던 순간, 행복했던 순간, 설레었던 순간 모두 함께 했다.
난 나중에 아이를 가지면 꼭 내 아이에게 형제를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너무 싸우고 싸우다 1초 만에 부침개 뒤집듯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화해 모드로 돌아설 수 있는 내공의 지경까지 갈 만큼 싸우다 보면 결국은 '니 동생뿐이 없다'는 말의 의미를 운이 좋다면 알게 될거다.
그렇게 제주도에서도 역시 피할 수 없었던 형제 싸움의 피날레는 내가 동생의 집에서 쫓겨나는 걸로 마무리됐다. 이 좁은 방에 언니랑 계속 붙어있다간 폭발하겠다며 날 쫓아냈다. 쫓아내면서도 언니가 싫어서가 아니라 언니를 사랑하지만 좀 나가라며 굳이 숙소까지 잡아서 날 내쫓았다. 자기도 미안하고 내가 혹여나 동생의 진심에 오해를 할까 '사랑하지만'이라는 부연 설명까지 덧붙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