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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ueskies Aug 05. 2018

느닷없는 혼자의 시간

나의 친구, 바이올린

제주에 있으면서 혼자 있고 싶지 않았으니까 툭하면 나갔다. 친구랑 약속을 잡고 혹은 혼자이더라도 카페를 가거나 어떤 활동을 하거나 동생이랑 신나게 수다를 떨거나.


그렇게 가족과 친구와 함께했던 나날들이 지나고 제주도에 머물었던 시간의 끝이 다가올 무렵, 내 동생의 확고한 결단으로 난 느닷없이 혼자가 되었다. 동생은 자신의 공간에서 나를 밀어내겠다고 엄포를 놓고는 그걸 그대로 밀어붙였다.

동생 덕분에 계획에 없던 제주도의 낯선 호텔에서 머물게 되었다. 그러자 나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들어줄 동생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나는 문득 어색함을 느꼈다. 그것이 낯선 호텔방이 주는 느낌 때문인지 뒤늦게 혼자라는 걸 깨달은 탓인지 몰랐다. 


그동안 어떻게 혼자의 시간을 견뎠을까. 

쫓겨난 마당에 구차하게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하소연하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쫓겨날 공간은 동생이 마련해주었는데 그것은 참 고맙고 언니로서 내 동생 멋지다고 생각도 들었다. 


차분하게 지금 나는 혼자라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이 낯선 공기와 친구를 하기로 마음먹은 나는 가만히 창밖의 탁 트인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혼자서 tv를 보고, 노트북을 켜서 해야 할 일들을 마무리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하나하나 해나갔다. 


캐리어의 내 짐들은 트윈룸이었기에 내가 잠을 잘 침대가 아닌 다른 하나의 침대에 고스란히 올라갔다. 처음엔 정리가 안되던 물건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자기 자리를 찾았다. 냉장고 속 생수 두 병은 나의 하루의 갈증을 풀어 줄 중요한 생존 아이템이었다. 매일 같은 시간 청소해주시는 아주머니께서 생수 두병을 갈아주셨다. 매일 간단한 청소를 해주셨고 수건을 갈아주셨다. 


어떤 날은 비가 아주 내렸다. 내가 집에서 쫓겨나던 때는 마침 장마였다. 창 밖 파스텔톤의 풍경은 그새 남색 빛을 띤 하늘과 회색 빛의 건물로 바뀌었다. 창에는 빗방울이 맺혔다. 밖에 나가기도 쉽지 않게 되자 어떡하나 싶었지만 상관없을 듯했다. 굳이 밖을 나가야 하나 생각이 들던 참이기도 했다. 

내가 여기서 관광객이 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또 늦게 깨닫고서야 밖으로 나가야만 하는 여행객의 의무를 접기로 했다. 

비를 맞는 숙소 안에서 아늑한 공간을 누리기로 했다. 

에어컨 바람에 추워지면 껐다가 눅눅해지는가 싶으면 다시 켰다가 그렇게 에어컨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갤 기미가 보이지 않는 창 밖을 바라보다 생각에 잠기다가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문득 서울에 두고 온 나의 바이올린이 떠올랐다. 제주도에 내려오면서 같이 가지고 와야 할지 엄청 고민을 했었다. 서울의 나의 공간에서 했던 모든 것들에 지쳤던 나는 가지고 내려오지 않기로 했다. 실은 두 달여간 있으려니 가지고 와야 할 짐이 은근 많았기에 바이올린까지 등에 매고 내려올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한번 내려오면 다시 서울로 올라갈 때까지 중간에 올라오긴 쉽지 않을 텐데 연주하던 감각을 반납할 각오를 해야 했다.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그리고 숙소에서 오래간만에 혼자서 있자 반쯤 포기하고 잊어버리고 있던 바이올린이 떠오른 것이다. 다시 연주하고 싶었다. 꽤 오래전부터 바이올린이 내는 바이올린만의 소리가 좋아서 배우고 싶어 했었다. 그리고 내가 힘들 순간에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세어보니 9개월간 꾸준히 배웠다. 취미로 시작한 거였는데 어느새 시간이 그만큼이나 흘렀고 서울에 올라온 지금 앞으로도 그만둘 생각은 없을 것 같다. 제주도에서 두 달간 있었던 탓에 바이올린 잡는 것도 못하고 이대로 아주 그만두게 되는 걸까 하고 생각했던 우려와는 달리 다시 연습하기 시작했다. 복습하느라 애를 먹고 있다. 


느닷없이 혼자가 됐던 그 숙소 안에서 서울 올라가면 다시 바이올린 연주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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