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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조합과 투쟁(2)

# 날지 못한 새

by 푸른 하늘

3) 청천벽력


구청에서 기대했던 답변을 듣지 못하고 조합에서는 연락조차 없던 상황에서, 갑작스레 조합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조합장: 안녕하세요? 00 조합장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제가 다른 일로 잠시 자리를 비우느라 회신이 늦었습니다. 그 사이 많은 일이 있었네요. 총무님, 시간 되실 때 조합에 방문해 주시겠습니까?


박 총무: 안녕하세요, 조합장님. 기다리고 기다리던 연락을 이제야 주셨네요. 언제가 괜찮으실까요?


조합장: 총무님이 직장 다니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주말마다 사무실에 있으니, 주말 중 편하신 시간에 오시면 됩니다.


박 총무: 네, 알겠습니다. 이번 주 토요일 오전 11시에 남편과 함께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후, 나는 명탐정 건축사님께 연락하여 조합장과의 회의에서 논의할 내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추진위원회 시절 작성했던 협약서의 효력을 확인하자는 의견을 냈고, 건축사님도 이에 동의했다. 이후 준코 상가회장에게 연락해 변호사님을 만나 상의해야 할 것 같으니, 함께 가실 상가 조합원들을 모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우리는 서초동의 변호사 사무실로 향했다.


명탐정 건축사님은 추진위 때 약속한 협약서라 법적 효력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지만, 변호사님의 답변은 청천벽력 그 자체였다.


협약서를 한참 들여다보던 변호사님은 첫마디로 이렇게 말했다.


이 협약서는 휴지조각입니다. 아무런 효력도 없고, 내용 역시 적용할 수 없습니다!!


조합 설립 당시 새로운 협약서를 조합장으로부터 받아 조합 정관에 포함시켰어야 했는데, 이미 3년 넘게 지났습니다. 지금 와서 조합장이 다시 협약서를 작성해 줄 리 없고, 정관 수정은 아파트 조합원 2/3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안타깝지만 저희가 도와드릴 방법이 없습니다.


이어 변호사님은 조심스럽게 대안을 제시했다.


가능하다면 조합장에게 개인적으로 호소하거나, 상가 조합원 동의서를 받을 때 불법적인 요소가 있었는지 검토해 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서명했다던가 하는 경우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증거를 찾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현재로선 추진위 때 작성된 협약서가 이행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조합장을 고소하는 방법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저희가 상담했던 다른 상가 조합원들도 대부분 비슷한 상황이었습니다. 조합 설립 당시 정관에 관련 내용을 포함시키는 것이 가장 안전하지만, 많은 상가 조합원들이 이 부분을 놓칩니다.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변호사님의 말은 단호했고, 냉혹했다.


상가 조합원 중 한 분이 친구인 변호사에게 자문을 구했지만, 답변은 같았다. 2022년 12월의 서초동 겨울바람은 우리의 가슴속 깊이 매섭게 파고들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조합장이 "조합 설립 동의하셨잖아요. 위임하셨잖아요."라고 당당하게 말했던 이유를. 상가 조합원이 조합 설립 동의서를 제출한 순간부터, 우리는 이미 권리를 잃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4) 투자금 버릴 각오로 도전


이제 더 이상 조합장과 협상할 무기도 없다. 00 구청은 행정상 문제가 없으면 사업시행인가도 내줄 수 있다고 하고, 변호사는 추진위 때 작성한 협약서는 의미 없는 휴지조각이라고 한다. 이제부터 어떤 작전으로 조합장을 설득해야 할지, 잠이 오지 않았다.


다른 상가 조합원들은 이렇게 될 때까지 무엇을 했을까? 오늘도 현장에서 변호사님이 협약서를 휴지조각이라고 말해도, 믿지 않고 조합장이 추진위 때 써준 것이라며 도의적인 책임을 진다고 얘기하는 상가 조합원들. 나이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왜 아직도 분위기 파악이 안 되는 걸까? 상가 조합원들은 왜 여전히 조합장을 믿고 있을까?


법적 효력을 갖춘 정관에 상가에 유리한 문구 하나 없는데, 왜 조합장은 다 알아서 해줄 거라 믿고 있는 걸까? 이런 상황을 보면서 답답하고, 상가 조합원들은 봉숭아 학당에 다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니면 조합장과 다른 거래를 한 걸까? 그들은 현재 상황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아마도 나만 숨이 막혔던 것 같다. 명탐정 건축사님도 협상에 도움을 주셨지만, 가시밭길 협상에서 잘될 가능성이 낮다는 걸 알고 계셨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내 의지가 꺾이지 않도록 계속 자료를 업데이트해 주셨다.


조합장은 상가 조합원들의 무관심 속에서 상가 땅을 모두 지하상가로 건축심의를 받았고, 상가 조합원들이 아파트로 갈 수 있는 길을 최대한 막아놓았다. 이후 상가의 감정평가액을 저평가한 뒤, 이를 아파트 비례율에 적용하면 상가 조합원들이 아파트로 갈 수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독립정산제로 진행한다고 해도, 상가를 받은 후 남은 권리가액으로 아파트를 받게 되니, 상가 조합원 중에서 아파트로 갈 수 있는 사람은 많아야 3~4명뿐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조합장은 상가 조합원들이 찾아와 문의하면 도의적인 책임을 지겠다고 말하며, 뻔뻔하게 "모르쇠 작전"으로 사업시행인가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혹시 관리처분 때 상가 조합원들이 반발하더라도, 추진위 협약서를 들이대며 "이 협약서대로 적용하겠다"며 호의적인 태도로 지금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고 말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며, 조합장이 정말 못된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현금청산 당할 거라면, 해볼 때까지 해보자! 억울해서 이대로 멈출 수 없으니 끝까지 싸워보자! 명탐정이 보내준 자료를 밤새 검토하고 공부하며, 수시로 명탐정 건축사님께 문의를 드렸다.




5) ″협상에 앞서 명탐정과 나는 협상 내용을 정리했다″


1. 명탐정의 분석 결과

명탐정 건축사님은 추정 분담금 책자를 철저히 검토하고 분석한 후, 상가 부지에 (예시) 25평형 아파트를 건축할 경우 몇 채를 건설할 수 있는지 계산했다. 25평 기준으로 41채 건설이 가능하며, 기부채납으로 4채를 제공하고 나면 37 채이므로 아파트에 피해 주지 않고 상가조합원 모두 상가 땅으로 지어진 아파트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


2. 정관 변경 문제와 상가조합원의 요구

조합은 2019년 조합 설립 당시, 정관 제46조 제10항 "가”목의 "공급받지 아니하는 경우”라는 문구를 “건설하지 않는 경우”로 수정했다. 이는 상가 조합원들의 동의 없이 변경된 사항으로, 상가 조합원들이 이로 인해 상가를 받고 아파트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영향을 미쳤다. 이에 조합 측에 책임을 묻고, 적절한 대안과 해결책을 마련할 것을 요청


3. 상가 부지 3% 관련 주장

• 이미 지하상가로 건축 심의를 받았으나, 상가 부지는 전체의 3%에 불과하므로 "지하상가도 3%만 받는 것이 타당하다"라고 주장.


• 연도 상가의 구조상 내부 상가는 외부에 노출되지 않아 상업적 운영이 어렵고 분양에도 어려움이 예상되며 이에 "우리 상가는 앞쪽 전면부 3%만 받겠다"는 입장을 제시하고, 나머지 상가는 조합에서 주차장이나 조합원 복리 시설로 활용할 방안을 모색할 것을 요구


4. 협약서 작성 요구

사업 시행 인가 신청 전에 새로운 협약서를 반드시 작성할 것을 요구


5. 조합장과의 협상 준비 및 박총무의 전략

토요일에 조합장과 협의할 내용을 정리하고 며칠간 고민한 후, 남편과 함께 조합장을 만나러 갔다. 협상 전략은 명탐정이 제공한 자료를 바탕으로 정통적으로 접근하는 방식이었다. 또한, 100세 시대를 고려해 조합장의 나이를 배려하며, 남은 인생을 감성적으로 설득하는 전략을 세웠다.


6. 자료 사전 송부
조합장을 만나기 전, 00 구청과 조합 사무실에 조합 설립 당시 "조합장의 생각"을 정리한 자료와 명탐정이 작성한 추정 분담금 책자, "토지 및 아파트 공급 면적 집계표", "아파트 공급 호수 집계표"를 미리 송부했다. 이러한 자료를 미리 읽어두면 협상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기대




6) ″2019년 조합 설립 당시 조합장의 생각을 함께 되짚어 보았다″


1. 재건축 추진위원장 000입니다.


이제 3월■일로 예정된 조합창립총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상가동의 동의율이 아직도 50%에 못 미치고 있습니다. 지난 12월부터 상가 대표 분들과 수차례 협의를 거쳐 지난주에 협약서가 합의된 바 있습니다. 앞으로도 상가 소유주 분들의 그 간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하고 법과 절차 안에서 상가와 관련될 모든 일은 소유주 분들의 뜻을 존중하도록 하겠으며 이것이 모두를 위해 서로 단합되어 함께 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까지 동의서를 내지 않으신 분들은 빠른 시간 내에 내주시어, 가장 단기간 내에 훌륭한 상가가 건립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주변의 개인 목적을 위한 부정적이고 책임지지 못하는 말에 이끌리지 마시고, 항시 사실여부를 문의해 주시고 상가주민대표 또는 추진위원장에게 상담· 확인해 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2. 상가조합원 덕분에 시간 비용 낭비 절감


모든 상가조합원님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상가 분할 소송 없이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최선의 방향으로 진행하게 되었음을 보고드립니다.


이는 인근단지들이 상가분할소송으로 인하여 시간과 비용의 낭비를 (소송비용만ㅡ약 2억 원 미합의 시 분할등기비용 ㅡ상가포함 약 30억 원) 하는데 반하여 재건축비용을 최대한 절감


3. 말뿐인 감사 인사


지난 3월■일에 개최한 조합창립총회는 상가조합원님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성공적으로 마쳤으며, 가장 빠른 기간 내 약 11개월)에 최소의 비용으로 내실을 기하며 추진하여 00 구청에서 4월■일 조합인가를 받은 바 있습니다. 그동안 성원해 주신 상가조합원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조합장은 상가 조합원들에게 감사 인사만을 반복했을 뿐, 3년 넘게 상가협의회와 정관 수정 관련 논의를 진행하지 않았다. 정비구역 지정 당시 상가 부지는 이미 아파트 부지로 포함된 상태였으며, 사업시행인가를 기다리기만 하는 조합장의 태도는 아쉬움을 남겼다. 상가 조합원들은 조합장이 알아서 자신들의 재산을 보호해 줄 것이라 믿었던 걸까? 조합 설립 이후에는 협약서 작성 제안이나 상가 부지의 지하상가 및 지상 용적률에 대한 주장을 적극적으로 펼칠 필요가 있었을 텐데, 왜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던 걸까???


4. 나는 조합장에게 진심 어린 감정으로 호소했다.


상가와 아파트 조합원분들의 성원 덕분에 조합설립이 원만하게 이루어진 역사를 보며 조합장님의 진정성 느낄 수 있었습니다. 초심을 잊지 마시고 상가조합원의 입장에서 한 번만 더 깊이 생각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사업시행인가 신청 전까지 협약서를 작성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자 합니다. 구정 전 초안 작성과 1차 2차 조율 미팅을 진행해 2월까지 원만히 마무리할 수 있도록 긍정적인 검토 부탁드립니다.


5. 추정분담금 안내책자 토대로 작성


″ 토지 및 아파트 공급면적 집계표와 아파트 공급 호 수 집계표″ 기반으로 분석자료 준비


이 작업은 상가의 보물 같은 건축사님 덕분에 가능했다.


나는 건축사님이 제공해 주신 자료를 바탕으로 조합장과 본격적으로 협상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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