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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조합과 투쟁(1)

# 희망은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한 걸음씩 내디뎠다.

by 푸른 하늘

1) 추진위원장 시절 작성한 협약서 약속 이행 독촉


정관을 수정하는 일이 이렇게 어렵고 힘든 것인지, 그때는 미처 몰랐다.


지난 12월 9일, 상가조합원 간담회가 끝난 후, 미리 조합에 연락하여 조합장과의 면담을 잡았다. 이날은 조합장과의 첫 공식적인 만남이었다. 예상보다 많은 상가조합원이 참석했기에 조합장은 다소 불편한 기색을 보였고,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그 모습과 함께 “나 조합장이야”라는 위엄이 느껴지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조합장에게 상가협의회 총무로서 간담회에서 논의된 내용을 보고하며 세 가지 요청사항을 전달했다.


추진위원장 시절 작성된 협약서 재작성 요청


정관의 “독립정산제로 할 수 있다”를 “독립정산제로 한다”로 수정 요청


현재 정관에 누락된 “산정률 0.4” 기재 요청




조합장의 대답은 간결했다.


조합장: 상가조합원들께서 조합 설립에 동의하고 사업을 위임하신 겁니다. 지금은 사업시행인가를 받느라 정신이 없고, 상가는 관리처분 때 논의하면 됩니다. 여러분이 원하시니 사업시행인가 후 협의하겠습니다.


나는 조합장에게 말했다.


박총무: 조합장님, 상가조합원의 재산은 보이지 않으시나요? 이런 식으로 무시해도 괜찮습니까? ‘독립정산제로 할 수 있다’는 결국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따라서 ‘독립정산제로 한다’로 명확히 수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조합장은 이렇게 답했다.





조합장: 정관은 제 마음대로 수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인생이라는 게 원래 다 그런 거 아닙니까? ‘할 수 있다’는 의미에는 ‘할 수 없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는 거지요.


그 말에 나는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박총무: 조합장님, 이런 상황에서 상가조합원의 재산이 걸린 중대한 문제를 그렇게 가볍게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상가조합원들의 입장을 생각해 주십시오. 꼭 검토해 주세요.


이날 회의는 답답한 대화의 연속이었다.





특히 한 상가조합원은 개포 지역 사례를 들며, “상가 감정평가액이 터무니없이 낮다”라고 지적했으나, 조합장은 이를 묵살하며 “감정평가사의 판단”이라며 변명으로 일관했다.


조합장: 개포 지역과 우리는 다릅니다. 그리고 현재 상가는 값어치도 없고 장사도 되지 않아 감정평가액이 그렇게 나온 겁니다. 그럼 감정평가액을 10% 인상해 드릴 테니 독립정산제를 없애는 것은 어떠세요?


박총무: 아니요. 10% 인상이 아닌 아파트와 동일하게 감정평가액을 맞춰주세요. 지금은 아파트의 60%밖에 되지 않은 감정평가액을 받아 너무 저평가되어 있습니다. 아파트와 같은 땅인데 상가 땅은 왜 저평가되었는지 의문입니다. 안쪽에 있는 아파트 땅보다 저희 상가 땅이 훨씬 입지며 가치가 있는 땅인데 말입니다. 독립정산제를 없애고 싶으시면 상가 감정평가액을 아파트와 동일하게 해 주십시오!!


조합장: 그건 안됩니다. 장사도 되지 않은 상가이며 감정평가사가 그렇게 감정평가를 주었기에 제가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총무: 동일하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는지요?


조합장: 사업시행인가 후 다시 감정평가를 실시합니다. 그때 결정이 나지요. 지금은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

총무: 지금 가만히 있으면 사업시행인가 후 상가조합원이 불리해질 수 있습니다.


조합장: 관리처분 때 협의하는 건데 지금 해달라고 말씀하시니 사업시행인가 후 협의 하자는 얘기입니다.


총무: 아니요. 사업시행인가 전 반드시 모든 협의는 이루어져야 합니다. 오늘은 답이 나오지 않으니 이만 저희들은 가보겠습니다. 오늘 회의 한 내용은 메일로 송부드리겠습니다. 말씀드리고 조합사무실을 나왔다.



첫 회의를 마치고 나온 우린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시작한 느낌이 컸다.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에서 운전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참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어떡하면 좋을까? 울컥 눈물이 났다. 남편에게도 얘기 못하겠고 씩씩한 척 투자 잘한 척은 다 해놓고 이런 상황을 솔직히 얘기하기가 두려웠다. 우리들의 노후자금을 날린다면 어떻게 살아가지?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얼마나 차 안에서 울었을까? 답이 보이지 않았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건축사님께 연락을 했다. 오늘 회의 내용과 조합장의 미온적인 태도 등등 미로 같은 길을 이제부터 어떻게 뚫고 나가야 할지 명탐정 건축사님과 4시간 이상 얘기를 나눴다.


조합장 쉽게 바뀌지 않을 거예요. 저도 몇 번 시도하다 지쳐서 그만뒀지만 총무님이 힘내주세요!! 저는 그 말밖에 해드릴 말이 없습니다. 상가조합원 어느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고 관심조차 없는 이 상황에서 많이 힘들 겁니다.


다만 제가 알고 있는 정보 그리고 조합에서 받은 자료를 검토해서 총무님이 협상에 필요한 자료를 정리해 카톡으로 보내드릴게요. 보내드린 자료 검토 해보시고 모르는 부분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 주세요. 시작했으니 같이 해봅시다! 제가 많이 돕겠습니다.라고 나에게 용기를 주셨다.


건축사님과 전화를 끊고 곰곰이 생각 후 준코 상가회장에게 연락을 했다.


총무: 회장님 저희 담 주 00 구청 담당자 만나러 가요? 이렇게 있다가 상가 땅 다 뺏길 것 같아요. 상가조합원분들 가능한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연락 부탁드립니다.


준코 회장: 알았어요. 제가 상가조합원들에게 연락하여 함께 00 구청 민원 넣으러 가자고 할게요. 언제가 좋을까요? 총무님


총무: 빠르면 빠를수록 좋을 것 같으니 담 주 목요일 00 구청 1층 로비에서 2시에 만나요. 제가 담당자와 미팅 잡을게요!!


준코 회장: 저도 최대한 많이 모집해 볼게요.


이렇게 우린 총무는 협상가, 명탐정 건축사님은 정보와 전문지식 정리하여 총무에게 전달, 준코 회장은 연락망으로 역할 분담을 자연스럽게 맡아 ″상가 땅 찾아오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독립정산제란 아파트와 상가를 분리하여 개발이익과 비용을 별도로 정산하며 상가협의회가 상가토지 기여로 인해 신축된 건물에 관한 관리처분계획안의 내용을 자율적으로 마련하는 내용으로 조합과 상가협의회 사이에서 합의하여 정비사업을 진행하는 것을 독립정산제 라고 한다.





2) 비빌 언덕이 필요해!


조합에 상가협의회 이름으로 상가간담회 회의 내용을 보냈지만 아무런 회신도 없었다. 우린 민원 접수하는 첫날 상가조합원( 총무 포함 10명)이 참석하여 00 구청 담당자님과 미팅을 가졌다.


지난번 상가 매수건으로 조합장에게 소개받은 상가조합원이 조합장과 얘기해야지 구청 찾아오면 안 된다! 고 말씀하셨지만 무시한 채 다 같이 6층 사무실로 이동했다. 우리들은 00 구청 담당자분께 현재 상가가 처한 상황을 상세히 설명하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길 간절하게 바랬다.




미팅내용은 다음과 같다.


1. 2019년 조합설립 당시 정관 제46조 10항 ″가″목에 있는 ″공급받지 아니하는 경우″라고 적혀 있던 문장이 ″건설하지 않는 경우″로 슬며시 바뀌어 있습니다. 상가조합원 동의 없이 수정되었습니다. 상가조합원 동의 없이 정관 수정이 가능한가요?


구청 담당자: 절차상 문제가 있었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2. 추진위원장 때 작성한 협약서에 ″독립정산제로 한다″″산정률 0.4″로 한다라고 기재되어 있지만 현재 정관에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조합장께 정관 수정을 요청드렸지만 조합장은 정관 수정이 어렵다고만 하십니다. 이럴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구청 담당자: 이 부분은 조합과 상의를 다시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3. ″상가의 경미한 변경″ 의 기준은 어디까지인지 문의드립니다. 현재 우리 조합은 상가를 모두 지하로 설계한 후 건축심의를 받았습니다. 추진위원장 당시 설명회 때, 1층 포함하여 주상복합으로 짓겠다고 설명회를 해놓고 상가조합원 모르게 상가 땅 모두를 지하상가로 건축심의받은 후 상가조합원은 상가를 받는 게 원칙이라고 말씀하시는 뻔뻔한 조합장이 우리 조합장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상가가 지하로 설계되었으니 지상 용적률 300%는 모두 상가 소유가 아닌가요?


구청 담당자: 경미한 변경은 확인해 보겠습니다. 건축심의 변경 부분 또한 조합과 말씀 나누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절박한 심정으로


총무: 그럼 사업시행인가를 막아주십시오!!


구청 담당자: 저희는 행정적인 문제가 없으면 사업시행인가 내줄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처한 상황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저희 또한 조합에 지시할 수 없는 입장이기에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총무: 그럼 우리는 어디에 가서 호소를 해야 할까요? 모든 걸 조합과 협의해라 하시면 오늘 구청에 오지도 않았을 겁니다. 만약 이대로 사업시행인가를 받아버리면 상가조합원 재산은 보장받기 어렵습니다. 조합장은 조합설립 이미 동의하셨잖아요? 위임하셨잖아요? 의 말씀으로 일관성 있게 밀어붙이는데 상가조합원은 손 놓고 기다리고 있어야 합니까? 저희도 절박한 상황이기에 오늘 구청까지 찾아왔습니다.


구청 담당자: 재산권에 관련된 얘기다 보니 저희가 어떻게 답을 드리지 못하지만 검토해 보겠습니다. 다만 대부분 오늘 말씀하신 내용은 조합과 협의를 해야 하는 부분으로 보입니다. 저희도 조합 측에 연락하고 회신드리겠습니다.라는 형식적인 답변으로 회의는 끝났다.


회의를 마치고 구청을 나온 우리는 답답함을 감출 수 없었다. 구청도 우리 편이 아니라면, 결국 소송밖에 답이 없는 걸까? 소송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막막함과 슬픔이 밀려왔다.




상가 잔 다르크의 다짐


조합설립 전 협약서를 작성했으면 조합설립 때 정관에 넣었다면 이런 무거운 숙제는 없었을 텐데 상가조합원들의 무지함이 뼈저리게 느껴진 순간이었으며 어떻게 당장 이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할지 마음이 무거웠다.


돌아오는 길에 나 자신을 자책했다. ‘왜 이런 상가를 사서 고생을 할까?’ 하지만 곧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 끝까지 해보자. 조합장을 설득할 때까지 포기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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