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더 이상 이대로 살아갈 수 없겠다는 생각

아직 가보지 않은 길을 가기로 마음먹게 된 이야기

by 김재희

어린 시절부터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내 성향이 그렇게까지 외향적인 편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딱히 불편한 점은 없었다. 그저 누군가가 내게 다가오면 나는 그 사람과 친해지며 적당히 인간관계를 유지해오는 삶을 살았고, 그 정도만 되어도 크게 무리는 없었으니까.


하지만 대학교를 졸업하고 내가 택한 직업이 선생님이 된 순간, 나는 그제야 깨달아버렸다. 나와 이 직업은 맞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교사는 단지 지식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아이들과 더불어 감정적인 교류를 해야 하고,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만 그 가운데서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안타깝게도 아이들을 온전히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저 준비해 간 수업내용들을 교탁 앞에서 늘어놓는 것만으로 교사로서의 책무를 다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러니 학기가 계속되면서 점점 생기는 나와 아이들 사이의 관계의 골은 점점점 더 깊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 반동으로 학교폭력이 발생한다거나 교권침해로 여겨질 정도로 아이들이 내 수업에 집중하지 않기 시작했다.


사실 고등학교 3학년 때, 내가 교대를 쓴다는 소식을 들은 고1 담임선생님과, 고3때 만난 수학선생님의 우려 섞인 눈빛과 말을 그때는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었다. ‘네가 아이들에게 상처받을지 모르겠다.’라는 말을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고, 난 가서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은 그분들의 말씀이 옳았다. 이미 정식교사로 발령이 나기 전에 4학년 때 한 달 간 갔던 교생실습에서부터도 이미 내가 교사라는 직업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깨달았으니까. 그러나 그때 나는 다른 선택을 하지 못했다. 3년간 다녀온 대학 생활 시간이 아깝기도 했고, 이제 1년만 더 하면 졸업인데 이제 와서 어떻게 다른 길을 찾을까 싶은 생각을 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직접 현장에 가서 느낀 감정은 역시나 나는 교직생활과는 맞지 않는 사람이구나라는 현실의 벽을 체감해야만 했고, 그렇게 어거지로 교사생활을 한 게 어언 11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버렸다.

나이로 따지자면 벌써 30대 중반이 되어버렸고, 내가 초임 때 가르쳤던 6학년 아이들이 이미 대학교 3학년이 되어버린 긴긴 시간이 흐를 동안 나는 내가 가진 성향을 바꾸지 못했고, 내게 맡겨진 아이들에게 죄를 짓고 있다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아이를 둘 낳고 한 아이마다 1년씩 육아휴직을 쓰면서 학교현장으로부터 떨어져서 다시 마음을 재정비하고 어떻게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다시 교사생활을 해보고자 했지만, 올해 다시 6학년 담임을 맡아 1년이 흘러가고 있는 지금, 나는 역시나 11년 전에 했던 고민을 또 똑같이 반복하고 있는 내 자신을 깨닫게 되었다.

결국 나는 교사와는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이제는 받아들여야겠구나.


하여 교사가 아닌 다른 일을 찾아보기 위해 유튜브를 둘러보다가 유통판매업으로 성공한 모 유튜버의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나보다 어린 나이에 경제적인 성공을 거둔 그는 말을 하는 데 있어서도 자신감이 넘쳐 보였고, 스스로 가지고 있는 철학과 논리, 경험에서 얻은 지식들을 체계적이고 호소력있게 잘 전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유튜버가 한 말 중 한 마디 말이 내 심장을 관통하듯 묵직한 울림을 남겼다.


{자신이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내려놓는 것도 능력입니다.}


아아! 나는 왜 이 사실을 이제야 알게 되었던 것일까.

내 주변의 지인들은 내가 교직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괴로움을 토로하는 말을 건넬 때마다 저마다 비슷한 반응들을 보였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 대체 아이들을 데리고 수업하는 게 뭐가 그리 힘드냐는 반응, 세상일이 다 힘든 거고 네가 다른 직업의 생태계를 잘 몰라서 그런 호강에 초치는 소리를 하고 있다는 둥.


그런 말들은 전혀 내 마음에 위안을 주지 못했고,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인식을 은연중에 심어주었다. 하지만, 삼십대 중반이 된 지금에서야 나는 깨달았다. 그들이 말하는 대로 내 삶을 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그들의 생각대로 움직여야 할 필요가 없는 자유의지를 가진 한 사람의 인간이었다. 그리고 내 인생은 그들이 절대로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사실도 말이다.


문득 한 가지 속담이 떠올랐다.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라는 속담이었다. 제 아무리 교사가 안정적이고 여자로서 하기 좋은 직업이라 하더라도 내가 도무지 그 직업이 맞질 않는데 억지로 그 틀에 끼워 맞추며 내 스스로를 고통으로 굳이 몰아넣을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게다가 내가 이런 태도로 교사생활을 계속 한다 한들, 날 담임으로 만나는 학생들에게 죄짓는다는 기분이 들어 찜찜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입장을 바꿔서 내가 학부모라면 나는 나같은 담임교사가 내 아이의 담임인 게 좋을까라고 생각을 해보자 진지하게 아니라는 답변이 마음속에서 흘러나온 순간, 나는 결심했다. 이 좋은 교사를 관두고 이제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자고.


일단 현실적으로는 남편이 돈을 벌고 있었고, 크게 쪼들리는 가정형편이 아니었기에 감사하게도 내가 일을 그만두더라도 큰 경제적 타격은 없다는 것이 내 결심에 한몫 했다. 거기다 지금 당장 퇴직을 하기 전에 내겐 아직 쓰지 않은 육아휴직 기간 4년이 남아있었다.

하여 나는 4년 동안 내 적성과 성향에 맞는 일을 찾아 새로운 직업의 세계로 이전하기 위한 일을 도모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이런 결심을 먹은 데 계기가 된 일이 있었다.

교직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도 풀 겸, 겸사겸사 나는 웹소설을 써서 관련 사이트에 올리곤 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가 여름방학이 막 끝나가기 전에 세 곳의 출판사에서 내 작품에 대한 긍정적인 답신을 주어 계약을 할 수 있었다.


이 경험을 통해 나는 내가 앞으로 웹소설을 잘 쓰면 굳이 교사를 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는 먹고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제 겨우 출간계약서를 작성했을 뿐 내 작품을 세상에 내놓지는 않았기 때문에 내가 글을 써서 먹고 살 수 있을지를 아직은 확신할 단계가 아니었다.

하여, 나는 일단 내게 주어진 계약 건대로 소설을 잘 마무리 짓고, 내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새로운 삶을 위한 도전을 하기 위한 준비과정을 글로 남겨놓기로 마음먹었다.


이에 브런치북이라는 좋은 공간을 알게 되었고 나의 생각과 의식의 흐름, 그리고 나의 좌충우돌 도전기를 브런치북에 글이라는 형태로 남기기로 했다. 어쩌면 나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고 나는 좌절과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헤맬 수도 있을 터다. 하지만 그 또한 의미있는 시도가 아닐까.


아무런 실패도 겪지 않으면서 현실의 삶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생각만 가진다는 건 이율배반적인 행동일 테니까 말이다. 나는 앞으로 예측가능한 미래가 아닌, 불확실하고 힘든 고난이 예상될지라도 기대와 설렘이 있는 길을 걸어가 보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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