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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희 Feb 16. 2024

[에세이]#2.거절할 줄 아는 용기

모든 사람의 기대를 다 충족시킬 수는 없기에.

한동안 착한 사람 신드롬에 시달린 적이 있다.

사실 아마 성장과정 내내 그랬다고 봐도 될 것이다.


어릴 때부터 결혼하기 전까지는 부모님 기준에 합당한 자랑스러운 딸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결혼을 앞두고서는 배우자의 부모님께 잘 보이고 싶었다.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며느리가 되고 싶었고, 그들이 내게 부여한 기대치에 걸맞는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몸부림을 쳤다.


차라리 처음부터 너무 애쓰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껄 싶은 생각이 든 건,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서였다.

내가 무언가를 승낙하고 그 일을 성실히 해내면, 그들은 내게 더 많은 것들을 요구했다.

그리고 매번 성실히 행하던 것을 정말 몸이 아파서 몇 번 수행하지 못했을 땐, 득달같이 화난 얼굴로 나를 찾아와 나를 몰아세웠다.


그때라도 깨달았으면 좋았을 걸.

다른 이들에 비해서 시간은 오래걸렸지만, 나는 서서히 깨달아갔다.

내가 모든 것을 예스맨처럼 다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서 노력을 해도, 무언가 하나 잘못한 부분이 있으면 저들은 그걸 걸고 넘어지는구나.


그럼 난 대체 언제까지 힘겹게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거지?
애초에 그럴 필요가 있었나?


저 생각에 이르기까지 그간 내 몸이 사회적으로 관습처럼 받아들여온 수많은 규범과 책무, 의무들이 나를 옭아맸다.

그 중에는 의례히 '나도 과거에 소싯적엔 다 그랬어.' 라고 하는 어른들의 무언의 압박이 있었다는 것도 결코 부정할 수 없으리라.


하지만 난 이제야 깨달았다.

나를 향한 그 어떤 기대도, 내 스스로를 버겁게 만들고 내가 감당하기 힘든 수준까지 날 몰아붙일 순 없다는 걸.

적어도 내가 그 일을 '자발적으로' 선택해서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즐겁게 행했다면 모를까.

은연 중에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시작하게 된 일들은 결국 외적 동기인 타인의 기대가 사라지는 순간 마치 그 옛날 어린 시절 읽었던 인어공주처럼 허무하게 물거품이 되어 사라져버린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서야 깨달았다.


그래서 이젠 나도 안다.

적당히 부드럽고도 정중하게 때론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 거절로 인해 비록 상대에게 실망을 미칠 지라도 그것이 나중에 지나놓고 보면 내 삶에 있어서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아니라는 것을.


계속해서 봐야 할 인연이라면 내가 상대를 조금 실망시켰다고 한들, 다음엔 더 잘 할 기회가 있을 테니까.

그리고 내가 상대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해서 소원해진 관계라면 그건 나중에 언제라도 멀어질 수 있었던 관계였음을 이제는 안다.


남이 내게 가진 기대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 사이의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게 삶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걸 알았다는 사실을 깨닫자,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확 스쳤다.

'그럼 나도 이제 제법 나이가 든 건가?'


아무렴 어떤가.

자연의 흐름과 법칙에 따라 자연스레 멋지게 나이 들어간다는 것도 꽤나 멋진 일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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