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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푸름 Oct 23. 2023

올해 마지막 뜀박질, 비와 함께

2023 현대 롱기스트 런 참여 후 느낀점

이번 10월은 걷기 대회와 달리기로 주말 시간이 가득 채워졌다. 지난달 여자친구와 도전했던 5K 달리기를 시작으로 짧은 마라톤에 계속 도전해 보기로 했다. 마음먹은 날 바로 신청해서 참가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대회가 10월 1일 추석연휴 기간에 열리는 10K 마라톤이 있었다. 편히 쉴 수도 있었지만 한번 불탄 마음을 꺼트리기 아쉬워 지체 없이 신청을 했다. 평소 운동할 때 40분 이상 달리기를 해본 적은 없었다. 그래서 이번 10K 달리기 첫 참여이면서 첫 도전이었다.

내 체력상태로 1시간 넘게 달리는 게 가능할까 의문이 들었다. 마라톤 경험이 많은 후배가 조언해 주기로는 현장에 참여하면 평소에 혼자 달리는 것과는 확실히 분위기가 다르다고 했다. 같이 코스를 달리는 사람들의 페이스를 따라가게 되고 모두가 열심히 뛰는 모습에 자극받는 것도 있어서 평소 자신의 러닝 페이스보다 더 빠르게, 그리고 오래 달리게 될 거라고 했다. 후배의 말대로 나의 첫 10K 마라톤 성적은 54분대로 평소 러닝 페이스보다 훨씬 빠르게 들어올 수 있었다. 피니시 라인에 들어서자마자 다리에 힘도 풀리고 부족한 산소를 애타게 찾듯이 거칠게 숨도 몰아쉬었다. 하지만 10K 완주 메달과 문자로 온 완주증을 보니 그렇게 기분 좋을 수 없었다. 그동안 하기 싫어서 미뤄왔던 일을 극복하고 성취한 느낌이었다.



앞선 마라톤보다 일찍 잡혀있던 마라톤 일정이 있긴 했다. 주로 이용하는 러닝 어플에서 일정기간 동안 열리는 미션을 완수하면 마라톤에 무료로 참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미션당 15분을 뛰면 하나씩 미션 스탬프를 채울 수가 있는데 다 채우면 10월 21일 10K 마라톤 참여 자격이 주어지며 안내 링크를 따라가면 마라톤을 신청할 수 있었다. 평소 운동을 꾸준히 했으니 미션 채우는 건 제법 쉬운 일이었고 미션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9월 초에 신청을 바로 할 수 있었다. 그 사이 10월 1일 10K 마라톤을 시험 삼아 해 본 것이었는데 완주 성공 후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신청서 작성 시 10K 완주 소요 시간에 따라 러닝 그룹을 선택해야 했다. A그룹(50분), B그룹(55분), C그룹(60분), D그룹(70분)으로 총 4그룹이 있었다. 그 당시에는 10K 경험이 없어서 완주 시간을 예상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가장 늦게 들어오는 그룹인 D그룹(70분)으로 정했다.

2023 현대 롱기스트 런 참가안내

10월 21일, 마라톤 당일이 되었다. 오전 6시 30분까지 집합이라서 전날 서울로 올라와 부모님 집에서 자고 5시 반쯤 일어나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여의도공원으로 향했다. 여의도공원까지는 40분 정도 걸렸는데 중간에 '나는 마라톤 하러 가는 사람이다'라고 알리듯 참여자들에게 배부된 티셔츠를 입고 지하철에 탑승하는 분들을 보고 같은 마라톤에 참여하시는 분들임을 속으로 파악하고 즐거워졌다. 하늘은 비가 올 듯이 흐려서 평소보다 더 어두웠다. 그럼에도 수많은 인파가 여의도공원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걷기 대회나 마라톤 참가를 많이 한 건 아니지만 이렇게 사람이 많이 참여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래도 나름 이런 대회에 참가한 경험이 있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이 몰려서 대기시간이 오래 걸리는 물품보관소에 물건을 빨리 맡기고 무대 앞 안내멘트에 따라 몸을 풀기 시작했다.


나는 매일 아침 라디오를 들어서 그날과 다음날 날씨정도는 자연스럽게 파악해 놓는다. 하지만 마라톤 당일 날씨를 파악하지 못한 건 실수 었다. 아니, 어쩌면 실수가 아니라 그냥 운명이었던걸까. 비를 쫄딱 맞고 달릴 운명말이다.


러닝 그룹별로 사람들이 출발선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7시 반쯤 비가 오기 시작했다. 흐린 구름 사이로 맑은 하늘도 언뜻 보여서 금방 그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출발 직후 비는 강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오히려 비오는 게 시원해서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km도 채 뛰지 않아 푹 젖은 모자에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신발도 흠뻑 젖어서 무거워짐을 느끼며 우중 마라톤이 이런 것이구나 느낄 수 있었다. 가끔 비가 올 때 운동장에서 우산을 쓰지 않고 신발이 젖는 것도 상관치 않고 달리는 분들을 보면서 러닝에 진심이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이 우중 달리기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그러고 있었다.


달리면서 어이없는 웃음이 나오다가 차가운 아침 공기에 비까지 맞으니 곧 온몸이 덜덜거리며 떨려오기 시작했다. 얼어붙는 몸을 녹이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열심히 달렸다. 신청했던 러닝 그룹에서 벗어나면 안 되는 줄 알았는데 러닝 시작 후 시간별 페이스메이커 말고는 러너들에게 그런 구분을 짓는 건 없었다. 페이스를 올려 달리다보니 점점 신청 러닝 그룹에서 멀어졌다. 무리하지 않도록 호흡과 페이스를 조절했다. 전문적인 호흡법은 배운 적은 없지만 예전에 누군가 달리기를 하면 짧게 두 번 내쉬고 두 번 들이쉬는 호흡을 하라고 알려준 적이 있어서 그것을 의식적으로 할 수 있도록 집중했다.

2023 현대 롱기스트 런 10K 코스

서강대교 반환점에서 약간 경사가 있던 것 말고는 코스에 고저 편차가 크지 않아서 달릴 때 큰 무리는 없었다. 비는 6~7km를 달리고 나서 서서히 그치기 시작했다. 그래도 달리기의 마무리를 화창한 날씨와 함께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이번 10K 기록은 56분 14초. 지난 마라톤보다 기록이 느려졌지만 비가 오면서 무거워진 옷과 신발을 이끌고 포기하지 않고 완주한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체력은 저번보다 좋아진 것 같았다. 완주하고 나서도 크게 힘들지 않았다. 내년엔 20K도 도전해봐야 하나 그런 생각이 잠깐 들었다. 그렇게 올해의 마지막 뜀박질을 마무리했다.


마라톤 완주 후에는 여러 후원 업체에서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는 부스를 설치해놓고 있었는데 완주하고 들어온 사람들이 잔뜩 줄을 서서 기다리는 걸 보고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 부스도 참여해서 상품이나 기념품 받는 것도 대회 참가의 묘미일 텐데 나에겐 완주 메달과 완주했다는 성취감으로 충분했다. 나에게는 유독 마라톤에서 소모하는 육체적 에너지보다 완주함으로 챙겨 오는 정신적 에너지가 훨씬 큰 것 같다. 평소 쌓여 있던 수많은 감정의 쓰레기들을 달리면서 내쉰 거친 숨과 함께 내버린 것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글을 쓰고 있는 평일, 직장에서 일을 하면서 평소보다 스트레스 자극도 적고 힘내서 일을 하고 있다.


올해의 건강 목표는 초과달성을 했다. 5K 마라톤 완주가 목표였는데 10K를 넘어서 20K도 생각해보고 있으니 말이다. 내년에도 꾸준한 체력 관리를 위해서 그리고 강인한 정신을 키우기 위해서 주기적으로 마라톤에 도전하려고 한다. 나이가 들어가는 만큼 건강을 챙기는 건 필수임을 피부에 와닿게 느끼고 있다. 또한 나 자신의 개인적인 목표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들과도 건강하게 오래 지내고 싶은 목표를 위해서 달릴 것이다. 주변에 열심히 살지만 건강을 챙기지 않다가 아파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까지도 마음이 아프다. 그런 아픔을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진 않다. 여러 가지 동기가 몇 십 년간 움직이기를 싫어하던 나를 바꾸어 놓았다. 바뀐 경험은 또 다른 자신감을 가져다준다. 내가 더 나은 사람으로 바뀔 수 있다는 자신감 말이다. 그런 사람이 되어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담아가는 큰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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