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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푸름 Sep 17. 2023

계속 보아야 잘 보입니다

영화 자주 안 본 사람이 3번 영화 본 소감

같은 영화를 3회 보는 건 흔한 일은 아니다. 특정 영화에 심취해서 여운을 더 느끼고 싶은 영화 마니아들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영화를 자주 보는 편도 아닌 나에게는 특이한 일이다. 

2022년 마블 영화 스파이더맨 노웨이홈을 292번 관람한 신기록이 탄생했다는 뉴스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영화관에서 보낸 시간만 30일 정도고 대본까지 외울 정도였다는데 그 뉴스를 보고 든 생각은 나와는 정말 다른 사람이라고 구별지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본 영화는 여러 번 볼 정도의 가치가 있었다.


나는 영화는 한 달에 한 번 볼 때도 있고 몇 달 동안 안 볼 때도 있다. 영화보다는 회차가 나누어져 나오는 드라마를 보는 편인데 그것도 최근에는 거의 보지 않았다. 유명한 드라마는 방영 당시 보지 않고 몰아보는 편이다. 요즘에는 OTT 서비스에서 배속 기능과 넘기기 기능이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주로 보고 싶은 장면, 명장면 등 사람들 사이의 화젯거리를 이해할 수 있는 정도로만 '정보를 입수'하는 편이다. 


영화는 그럴 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 감독이 정한 시간의 흐름에 저항할 수 없다. 배우들의 감정을 시시각각 순리대로 봐야 하고 영화관을 가득 채우는 웅장한 소리에 머릿속이 가득 찰 때도 있다. 그렇다고 드라마가 더 좋냐? 그건 아니다. 무언가를 선호하는 건 아니지만 필요한 정보만 자극적으로 쉽고 짧게 전달하는 요즘 시대에 2시간 남짓한 시간을 가만히 앉아서 영화를 보는 건 굉장한 대작 아닌 이상 발걸음이 잘 옮겨지지 않는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오펜하이머> 촬영 진행 중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증앙)

그런 내가 3번이나 본 영화는 바로 <오펜하이머>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이 제작한 영화인데 사실 나는 이 감독의 전작들 <다크나이트> 시리즈, <인셉션> 등을 본 적이 없다. 가공의 인물이 아닌 실제 인물 전기를 토대로 제작한 영화는 처음이라고 듣기만 했다. 그렇다고 오펜하이머에 대해서 아는 건 더더욱 아니었다. 감독과 영화 주인공에 대해서 이렇게 모르고 가도 되나 싶었지만 굉장한 호평이 쏟아지는 영화라서 영화관에 가서 볼 만하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렇게 첫 번째 <오펜하이머> 관람이 시작되었다.


과학 역사상 이론이 실전으로 이렇게 까지 빠르게 쓰인 건 역사상 처음이라고 했다. 원자폭탄의 아버지 오펜하이머의 일대기를 그려내는 스토리는 지루하지 않았고 영화치고는 긴 상영시간이었던 3시간이 몰입하다보니 금방 지나갔다. 그러나 인물들이 상당히 많이 등장해서 누군가 대사에서 언급되면 어떤 사람이었는지 생각하느라 놓친 장면도 몇몇 있었다. 


한 번 보고 나니 아쉽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때까지 영화를 보면서 처음 든 생각이었다. 놀란 감독이 오펜하이머 평전인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토대로 영화를 기획했다고 하는데 그 책을 직접 보고 오펜하이머라는 사람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고 싶었다. 평전은 본문만 900페이지에 달하는 엄청난 분량이었는데 그럼에도 이 영화를 충분히 이해하려면 이 정도의 준비는 필요할 것 같았다. 그것이 예의일지도 모르겠다는 과한 생각마저 들었다. 충동적일 수도 있었지만 평전과 함께 영화 극본집까지 바로 구입해서 읽어나갔다. 극본집은 다 훑어보고 평전의 1/3 정도를 읽었을 즘에 두 번째 관람을 했다.


평전을 다 보고 봤으면 더 좋았겠지만 극본집만 읽고도 관람욕구가 치솟아서 어쩔 수 없었다. 감독이 생각한 장면의 연출흐름과 영상으로는 알 수 없었던 글로 설명된 등장인물의 심리를 보고 나니 시간상 편집된 장면 사이의 흐름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이 장면은 왜 감독이 넣었는지, 감독은 무엇을 전달하고 싶었는지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정말 평전의 1/3 만큼 영화가 이해되는 것도 신기했다. 이제 등장인물들의 얼굴과 이름은 머릿속에서 잘 매칭되었고 극본집과 실제 영화장면이 다른 점도 비교가 되어서 배우는 왜 다르게 표현했고 감독은 그것을 왜 넘어갔을까를 고민하면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이젠 평전의 나머지를 다 읽고 오펜하이머의 전 생애를 머릿속에 담은 뒤, 세 번째로 영화를 다시 보기로 했다. 어렴풋이 느껴지던 오펜하이머의 심정이 전보다 명확해지면서 이해가 되었다. 순수하게 이론 연구결과의 실험적 성공을 바랐던 과학자이면서 미국의 국가 간 정세 방향에도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의 참혹함을 알고 난 뒤에는 후회와 죄책감으로 남은 생애를 살아온 것으로 보인다. 

영화 <오펜하이머> 스틸컷

영화를 보이는 그대로 보는 재미도 있지만 감독이 만든 연출과 인물이 처한 상황의 배경과 심리를 분석하고 곱씹어보는 영화평론가가 되어 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간만에 특정 주제에 홀린 듯이 빠져서 집중해서 파고들어봤다. 무언가에 집중하면 다른 잡념이 사라지고 생각을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순수한 힘이 생기는 것 같다. 또 소소하지만 색다른 경험을 해 본 것이 시야를 넓혀주는 것 같다. 영화에 관련된 많은 매체들을 접하고 쌓아간 지식들이 어딜 가진 않을 것이다. 쉽진 않겠지만 다음에도 이런 영화같이 계속 보고 싶은 영화가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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