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봉사활동을 시작한 지 7개월 가까이 되었다. 첫 봉사는 저장강박증이 있으신 어느 주민분의 집에 화재가 나서 원주에 있는 여러 봉사단체가 모여서 청소를 하는 자리에 나간 것이었다. 집 안은 잿더미가 된 짐들 때문에 빛이 들어오지 않는 암흑이었다. 안에 들어가는 것부터 난관이었는데 출입구부터 쌓인 까맣게 눌어붙은 짐들을 빼내느라 오전 내내 쓰레기가 가득 담긴 포대자루를 날랐다. 청소를 하는 우리를 보면서 그동안 냄새와 짐 때문에 고생했다면서 속 시원해하는 몇몇 이웃들을 보니 집주인 분이 높게 솟은 아파트처럼 마음에 높은 장벽을 쌓고 살아서 이웃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새카맣게 된 집만큼이나 온갖 짐을 천장까지 쌓아온 집주인의 마음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느 한 구석이 새카맣게 타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날 버려진 짐들에서 났던 탄 내는 온몸에 배겨 집에 돌아가 씻어도 한동안 내 주위를 머무는 듯했다. 그 냄새가 제법 열심히 일했다는 증거 같아서 스스로 칭찬을 하기도 했다.
뜨거운 태양이 떠오르는 7월 중순, 또 다른 봉사 현장에 나온 나는 굉장히 심각해졌다. 문을 열자마자 튀어나오는 바퀴벌레 떼에 나를 포함한 몇몇 사람들이 소란스러워졌다. 잔뜩 쌓인 옷과 쓰레기,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부패한 음식물들을 버리면서 오늘만큼은 잘못 온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다른 현장보다 집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집주인 분의 귀중품이나 개인정보가 담긴 물건들이 옷 주머니나 짐 속에 있었기 때문에 잘 살펴 버리고 분류해야 했고, 덕분에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벌레들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벌레를 무서워하는 나로서는 가장 힘든 봉사 현장이었다.
집 안에 있으면 안되는 존재들이 너무 많았다.
같이 봉사를 나오신 분들 중에는 다양한 봉사현장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으신 베테랑 봉사자분들이 많았다.
벌레가 튀어나오는 집안을 들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나와는 달리 성큼성큼 집안으로 발걸음을 옮기신 용감한 봉사자분들은 옷과 쓰레기를 거침없이 포대에 넣으시고 바퀴벌레들을 향해 살충제를 뿌리셨다. 나 같이 벌레 때문에 집 안에 들어갈 생각을 못하는 분들은 밖으로 나온 포대 자루를 풀어서 분류작업을 했다. 자연스럽게 팀이 집 안 청소팀과 포대자루 분류팀으로 나뉘었다. 바깥은 햇빛이 뜨겁게 비춰서 등을 땀으로 적셨지만, 집 안보다는 낫다는 생각에 열심히, 하지만 벌레가 나올까봐 조심스럽게 옷들을 뒤적였다. 봉사가 있었던 아파트가 보수공사도 진행되어서 지게차가 왔다 갔다 하느라 집에서 나온 쓰레기들을 지게차 운행에 방해가 되지 않게 잘 정리해서 쌓아두는 작업도 진행했다. 어지러웠던 집 안이 어느새 깨끗하게 비워지고 약 때문에 힘 빠진 바퀴벌레들이 천장에서 하나둘씩 툭툭 떨어지기 시작할 때 집 안 청소팀의 바닥 청소가 시작됐다. 그리고바닥 청소 마무리 후 집 안팀 봉사자분들이 건물 밖으로 나오셔서 커피 한 캔씩 하실 때 오늘 할 일이 끝났음을 알 수 있었다. 서로 말할 틈도 없이 일하다가 그제서야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함께 봉사를 나오신 한 부부는 원주 내에 봉사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면 대부분 참여하고 있다면서 우리에게 남들이 다 쉬는 주말에 나와서 봉사하는 게 쉽지 않은데 기특하다고 하셨다. 한 달에 한두 번 봉사를 나오는 입장에서 민망했지만 나름 꾸준히 하는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기에 이런 말을 던졌다.
"봉사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주변에 많거든요. 그런데 막상 기회가 왔을 때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아무나 못하는 것 같다고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이 말을 들으신 부부는 웃으시면서 흘러내리는 땀을 수건으로 닦으시고 망설임 없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무나 못하는 게 자원봉사지만 아무나 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 저희가 앞장서서 봉사하는 거죠."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사실 내가 하는 봉사에는 내가 속해있던 직장의 이미지와 더불어 봉사회를 알리고자 하는 마음이 컸었다. 개인적인 명예를 바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회에 대단한 영향력을 끼치고자 한 것도 아니었다. 그에 비해 저분들이 하시는 봉사의 의미는 대단히 맑고 순수했다. 솔선수범의 자세로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가는데 함께하길 바라셨다.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말씀이었고 봉사의 의미를 스스로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많지 않지만 여러 가지 봉사를 나가면서 느낀 것은 우리가 서로의 이웃이 어떤 사람들인지 모르고 문을 꼭 닫고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 또한 계단을 오르며 문 앞에 놓인 택배박스들을 보면서 '저 집에 사람이 살고 있구나' 짐작만 할 뿐 그 이상의 관심은 가지 않았다. 사실 관심보다도 경계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비상식적인 사건들을 뉴스에서 많이 접하다 보니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한다는 말로 마음의 철벽을 세워나가고 있다. 저장강박증이 있으신 분들처럼 마음 문을 굳게 닫고 물리적인 성벽을 쌓고 있던 분들이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주변 이웃들의 작은 관심과 도움이 있었다면 어떻게 달라졌을지 모를 일이다. 같은 건물에 있는 이웃들끼리 마주칠 때 인사정도만이라도 밝게 하는 것도 어찌 보면 서로의 마음을 안아주는 넓은 범위의 봉사가 아닐까 한다.
소금산 환경정화 봉사활동
현재 내가 속해있는 봉사단에도 봉사를 하고 싶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실천에 옮기지 못했던 여러 사람들이 알음알음으로 모이고 있다. 십시일반(十匙一飯)이라고 작은 마음들이 모여서 어느 한 사람의 삶뿐만 아니라 지역을 살리는 일을 하고 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아무나 할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 앞장서서 노력해 가는 활동들이 빛이 되어 주변에 용기를 주는 것 같다. 그렇게 봉사의 의미를 내 안에서 다시 정의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