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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푸름 Feb 19. 2024

[독후감] 후회 없는 것의 부러움과 선택이 주는 책임감

『2023 제1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고

『2023 제1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미상 외 6명 / 문학동네


 나는 한 달에 책을 3권 이상 읽으려고 노력한다. 여기엔 책을 편식하면 안 된다는 나만의 원칙이 있다. 그래서 여러 장르를 골고루 읽으려고 한다. 매월 1일, 인터넷 서점 장바구니에 담은 책들 중에서 소설 하나, 에세이 하나, 공부하고 싶은 전문분야 책 하나, 이런 식으로 장르가 겹치지 않도록 주문한다. 그러나 예외로 어떤 달은 유독 특정 주제에 꽂혀 집요하게 파고들 때가 있다. 저번 달이 그랬다. 양자역학이라는 아직까지도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은 주제에 빠져서 관련된 책을 마구 샀더니 한 달 내내 과학책만 잔뜩 읽었다. 그러던 중에 이번 달 북클럽 선정 도서가 소설책이라는 것을 알고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2023 제1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지난 한 해 발표된 등단 10년 이내 작가들의 중·단편 소설 중에서 7편을 선정해 시상한 ‘젊은작가상’의 작가들 작품을 모아놨다. 한 편 한 편이 분량은 짧지만 굵직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들이었다. 그중에서 2편의 작품이 나의 공감을 크게 이끌었기에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서수의 <젊은 근희의 행진>은 연락이 되지 않고 사라진 동생 근희의 흔적을 따라가면서 과거의 기억 속 동생의 모습을 그리는 언니 문희의 이야기다. 이 작품에서 나오는 다양한 등장인물들 중 문희와 근희의 모습에서 우리 형제의 모습이 자꾸 겹쳐 보였다. 언니인 문희의 모습에서 내가, 동생인 근희의 모습에서 내 동생이 보였다.


 동생의 삶은 나와는 너무 달랐다. 동생은 공부와 좋은 성적을 중요시했던 부모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건 포기하지 않고 다 했다. 반면 나는 부모님의 말씀을 나름대로 잘 따라갔지만 하고 싶은 것은 절제하면서 살아왔다. 가끔 동생에게 우리를 위해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봐서라도 마음잡고 공부하라며 충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은 동생한테 부러운 감정이 컸던 것 같다. 결과가 어찌 되었든 동생은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다 해보고 후회 없이  뒤돌아섰고 지금 걷는 자신의 길에 확신이 있다. 사기를 당했어도 자신의 몸이 아름답다며 스스로를 칭찬하는 근희처럼 자존감도 높다. 그런 모습을 갖고 싶은 나에게 <젊은 근희의 행진>은 가장 인상 깊은 소설이었다.


 함윤이의 <자개장의 용도>는 삼 대째 내려오는 자개장에 담긴 비밀을 이어받은 '나'의 성장 소설로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자개장 앞에서 느끼는 '나'의 심경변화를 여러 사건들을 통해 드러낸다. 단순히 원하는 곳으로 단숨에 갈 수 있는 효율적인 이동 수단에 그칠 수도 있었지만 대에 걸친 떠남과 돌아옴의 역사를 통해 그 이상의 의미를 보여주고자 했던 것 같다. 처음 알게 된 비밀에 놀라 자개장을 없애고자 했던 증조할머니, 답답한 가부장적인 사회상을 벗어나 할아버지를 무릎 꿇린 교활한 할머니, 서울 곳곳을 쏘다니며 펜팔 친구와 포장마차까지 했다가 시원하게 말아먹은 엄마, 그리고 대학생인 지금의 '나'에 이르기까지 시대마다 다른 여성들이 ‘떠남’을 마주하는 다양한 모습들에서 시대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소설의 마지막은 '무언가 떠나지 않도록 보존하는 것. 자개장에는 그런 용도도 있다.'라는 말로 마무리 지어진다. 여기서 ‘떠남’의 아이콘인 자개장의 모순적인 모습도 보여주는 듯하다. 자개장 사용자들은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났다가도 결국 자개장 앞으로 다시 돌아왔다. 여행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돌아올 곳이 있기 때문에 여행이 즐거운 것이라고. 돌아올 수 있는 ‘집’이 있기에 떠날 용기가 있었고 ‘자개장’ 앞으로 돌아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자개장의 또 하나의 특징은 거리가 먼 곳이라도 떠날 수 있게 해 주지만 그곳에서 돌아오는 건 자신의 힘으로 와야 한다는 것이다. 선택은 한순간이지만 그에 따른 책임이 무거운 것을 알려주는 듯하다.


 이 단편을 읽으면서 전에 읽었던 다른 단편 소설 하나가 생각났다. 테드 창의 『숨(EXHALATION)』,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에서는 평행세계를 다룬다. 우리에게 여러 가지 선택권이 주어지는 상황이 온다고 가정할 때, 결정이라는 행위를 통해 무언가를 선택하게 된 결과로 나머지를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된다. 이 소설에서는 프리즘이라는 도구를 통해 포기했던 선택지를 선택한 또 다른 내가 있는 평행세계로 연락할 수 있다. 살면서 한 번씩 ‘그때 내가 이렇게 결정했으면 미래가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상상을 할 때가 있다.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은 그런 상상을 구체화시켜준 재밌는 SF소설이었다. 하지만 여기서도 프리즘을 이용해 또 다른 나를 만난 행위에 따른 책임은 프리즘을 사용한 자신에게 있다. 지금의 나보다 잘  살고 있는 평행세계의 또 다른 나를 보고 불행해지더라도 말이다.


 이번 단편모음집은 위의 두 작품 외에도 이미상의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 김멜라의 <제 꿈꾸세요>, 성혜령의 <버섯 농장>, 정선임의 <요카타>, 현호정의 <연필 샌드위치>가 실려있다. 명쾌하고 소재가 참신했던 소설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소설도 있었다. 소설의 특징에는 작가의 상상력을 드러내는 허구성도 있지만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진실성도 있다. 7편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을 통해 7가지 이상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작가가 상상력으로 제시한 세계관에서 겪어보지 못한 일에 대한 간접적인 체험도 할 수 있어서 여러모로 보는 맛이 있었던 책이었다.



· 제   목 : 『2023 제1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 작   가 : 이미상 외 6명

· 출판사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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