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30km가 주었던 여유로움

#제주도 #짧은여행 #우도 #전기차 #다들 처음이니까 느리게 가는거겠지

by 신푸름

제주도 Day 3


오늘은 우도로 가는 버스 투어 날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버스 투어 측에서 우도로 갈 수 있는 성산항까지 데려다주고 제주도와 우도 왕복 승선표를 예매해 주는 것이었다. 제주도에서도 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우도. 작은 섬이기에 섬 전체를 한 바퀴 도는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5시간. 성산항에서 우도를 구경하고 다시 우도에서 나와서 성산항에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탑승하기까지 남은 시간이었다.

어제와 동일한 탑승 장소에 도착했다. 눈앞에 정차한 우도행 버스는 어제보다 작은 버스였다. 탑승 인원도 많진 않았다. 신혼부부로 보이는 커플과 단독 여행을 오신 분들 두 명이 계셨다. 오랜만에 배를 타는 것이라 멀미를 할 수도 있겠다 싶어 멀미약을 미리 사서 먹었다. 성산항으로 버스는 출발했고 마음도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성산항에 도착해서는 대합실에서 승선신고서 2장을 작성해야 했다. 하나는 우도로 갈 때, 다른 하나는 우도에서 나올 때 낼 승선티켓 구입 시 필요했다. 버스 기사님께서 투어 승객분들이 쓴 승선신고서를 모두 걷어서 대신 티켓을 구매해주시고 각각에게 다시 나누어주셨다.


성산항 출항 전 바닷가

성산행 배에 탑승해서 맨 위쪽을 올라가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경치를 보기 위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조금씩 흔들거리던 배는 출항을 하면서 바다 물결에 따라 위아래로 요동쳤다. 배가 가르는 바다는 푸르름이 너무 진해서 진흙같이 질퍽거리는 느낌이었다. 배가 파도를 따라 위로 솟구쳤다가 아래로 떨어질 때 부서지는 바닷물이 튀어서 간간히 얼굴에 맺혔다. '이렇게 많이 흔들리면 멀미할 것 같은데….'라고 생각할 때, 우도의 모습이 보이더니 순식간에 항구에 도착해서 흔들거림도 멎었다. 15분 정도 걸렸던 것 같은데 생각보다 이동시간이 빨라서 멀미날 틈도 없었다.


배에서 내리고 우도 입구로 가는데 갑자기 확성기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도에서 근무하시는 경찰관 한 분이 확성기에 대고 큰소리로 배에서 내리는 관광객들을 향해 우도에서 관광할 때 주의사항에 대해 계속 얘기하고 계셨다. 앞서 가던 사람들은 큰 줄로 멈추어 서서 경찰관께서 이야기하시는 내용을 듣다가 길어지는 설명에 집중력을 잃고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사실 나도 뭐라고 하셨는지 제대로 듣진 못했지만 우도에서 일어나는 호객행위를 주의하라는 말은 확실하게 들었다. 어느 순간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가면서 우도 입구 쪽에 잔뜩 있는 전기차 대여 가게가 붐비기 시작했다. 우리는 예약해둔 가게에 바로 가서 오늘 탈 전기차를 확인하고 하루 대여하는 것에 대한 계약서를 작성한 뒤에 사고 흔적이 있는지 사진으로 찍어두고 차에 탔다. 조작법이 자동차라기보단 오토바이 같았다.


우도 전기차 대여. 조작법은 오토바이에 가까웠다.

전기차의 속도는 최대 시속 30km가 최대였다. 엑셀과 브레이크 페달은 핸들 쪽에서 조작을 다 할 수 있어서 그런지 따로 발 밑에 배치되어 있진 않았다. 차는 2인용인데 앞 뒤로 좌석이 배치되어 있어서 차폭은 넓지 않았다. 좁은 길을 원활하게 지나가는 것에 특화된 우도식 전기차였다. 처음 타보는 거라 조작을 해보면서 익숙해지는데 몇 분 소요하고 바로 우도 한 바퀴 여정을 돌기 시작했다. 전기차 자체 최고 속도도 느린데 다른 사람들도 전기차가 처음이라 그런지 조심스레 운전하느라 도로에 전기차가 줄줄이 기차같이 늘어서서 갔다.


서빈백사

서빈백사의 '홍조단괴'


서빈백사에서 바라본 바다

전기차에서 내려 해안가 근처로 오니 다른 해안가와는 조금 다른 모래들이 보였다. 알고 보니 모래가 아니라 홍조단괴라는 홍조류가 뭉쳐 단단해졌다가 부서진 것이란다. 이런 게 이 부근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얼마나, 얼마 동안 부서졌길래 이렇게 넓게 덮을 수 있었을까. 바다에 자리 잡고 있는 검은 현무암도 제주도 것 보다 더 진했다. 바닷바람이 제법 시원했다. 아직은 오전이라 시원함을 즐길 수 있었다.


우도이야기



문어와 뿔소라회 세트. 보말칼국수는 먹는데 집중하느라 찍지 못했다.


어느새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미리 찾아본 가게 중 이왕 제주도 왔으니 신선한 회를 먹을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우도이야기'라는 곳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점심 시간대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도착했더니 사람들이 많이 없었다. 우리는 보말칼국수와 문어 뿔소라회 세트를 시켰다. 문어와 뿔소라가 비리지 않고 탱글탱글하니 질기지 않아 씹는 맛이 일품이었다. 잘 삶아주셨구나, 감탄하면서 거의 다 먹어 갈 때쯤 나온 보말칼국수도 맑은 국물에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깨끗하고 깔끔한 맛이었다. 미식가가 아니라서 맛 평가는 함부로 할 순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정말 맛있게 잘 먹었다는 것이다. 문어와 뿔소라의 쫄깃함은 잊히지 않는다.


답다니 탑망대 근처 언덕


답다니 탑망대가 오른쪽에 있다. 사람들이 줄 서서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사실 지도를 잘못 봤다.) 우도 북쪽에 위치한 답다니 탑망대 근처에 차를 세우고 해변을 바라보다가 탑망대는 이곳이 아니라 저 멀리 사람들이 줄 서서 사진을 찍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같이 온 친구에게 민망했지만 차라리 이곳이 탑망대도 보이고 풀밭 있는 언덕에서 사진을 담기 좋은 곳 같다고 이야기하면서 경치를 구경했다. 검은 현무암 위를 풀밭이 살짝 덮고 있어서 다른 곳과 조금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우도 안에 또 다른 작은 섬 지역 같았다. 제주도는 바다를 향해 어디를 찍던 굴욕 없이 좋은 사진들을 담을 수 있고 좋은 광경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은 것 같다.

검멀레 해수욕장


성산일출봉과 다른 느낌의 우도봉이 바다를 굳건히 바라보고 있다.


검멀레 해수욕장은 사람들이 제트보트를 타고 돌면서 깎아내리는 듯한 절벽과 그 안에 있는 동굴을 바라보면서 감탄하는 후기를 많이 올리는 곳이다. 제트보트까지 타기에는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서 하진 못했지만 여기서 여유를 가지고 바라보는 것도 좋았다. '검멀레'라는 이름이 해안가의 모래가 검은색이라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는데 당시에는 그걸 모르고 우도봉과 바다만 바라보느라 모래 색깔이 어떤지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우도봉으로 가는 길도 있었지만 어제처럼 쉴틈 없이 움직이다가 지칠까 봐 잠시 벤치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밭 318



제주도로 돌아가기 전 편히 쉴 곳을 찾다가 카페 '밭 318'로 왔다. 카페를 들어가서 테라스로 나오게 되면 우도 전경을 카페 잔디밭에 앉아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다. 카페에서 준비해놓은 돗자리와 캠핑용 간이 테이블로 자리를 잡고 한참을 누워있었다. 눈을 뜨고 있으면 잔디와 하늘과 바다와 잘 어우러지는 색감들이, 눈을 감고 있으면 바다 냄새와 시원한 바람이 무채색 같던 일상을 보내던 나에게 생동감 있는 선물을 주었다. 여행 왔으니까 사진 많이 찍어놔야 한다, 많이 보고 다녀야 한다라는 압박감 없는 이런 여유 있는 시간이 진정한 힐링이었다. 우도를 나갈 시간이 이르긴 했지만 뱃시간을 놓칠까봐 미리 천진항에 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우도에서의 짧은 시간을 마무리했다.


우도 버스 투어의 일정은 '오늘은'이라는 녹차 제조 회사에서 제공하는 녹차 족욕으로 마무리했다. 어제와 오늘 제주도 동쪽과 우도 곳곳을 돌아다니느라 고생한 발에게도 힐링이 필요했다. 녹차는 내 체질과 잘 맞아서 녹차를 이용한 족욕 방식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프로그램을 진행해주시는 진행자 설명대로 녹차 입욕제로 발도 깨끗이 닦고 마사지도 하니 피로감이 덜어지는 느낌이었다. 마무리로 오일 에센스로 꼼꼼히 발을 발라주고 후끈 열이 올라온 발에 양말을 신겨서 따뜻함이 오래가도록 했다. 꿈같던 제주도에서의 일정을 이렇게 마무리 지어본다.


제주도에 간 것은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다. 활동 반경이 크지 않아서 가끔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만 갇혀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 안에만 있으니 일상도 비슷하게 보내게 되고 글을 쓰는 입장에서 새로운 글감이 없다는 것이 아쉬울 때가 많았다. 좀 더 새로운 것을, 많은 것을 경험해서 내 생각을 글로 정리해보고 싶었지만 출근하고 일하고 집에 돌아와 피곤함을 풀기 위해 쉬기를 반복하다 보니 그 루틴에 빠져나오질 못했던 것 같다. 이런 시간을 꽤 오랫동안 보냈다. 그런데 이번 경험을 통해 마음 속 갈증이 해소되면서 무언가 해보고 싶은 '원동력'이 생겼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구체적이진 않다. 다만, 쉬고 있었던 글쓰기를 지금 하고 있는 것도 그 원동력이 바탕이 되어서 가능했다. 새로운 것을 해보고 나니 또 다른 것도 하고 싶다. 하나씩, 나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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