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시간

#제주도 #짧은힐링 #여행

by 신푸름

부모님께 비행기를 타본 적이 있다고 들었었는지 기억이 헷갈린다. 아무튼 이번에 제주도를 가게 되면서 타는 비행기는 내 기억상으로는 처음이다. 비행기를 탈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혀 아는 것이 없어서 다른 사람들이 유튜브에 올린 공항 탑승 브이로그를 보면서 머릿속으로 열심히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몇 차례 돌리고 나니(심지어 캐리어를 끌고 보안요원을 만나서 금속 탐지기 검사를 받을 때 팔을 드는 행동도 마임처럼 해봤다.) 이미 수차례 비행기를 타본 사람처럼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친구와 3박 4일 함께할 짐을 목록으로 적어놓고 하나하나 체크했다. 예기치 못한 상황을 계속 생각하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 여행을 계획했을 때 보다 챙겨가는 짐들이 점점 늘어났다. 장기간 여행이라는 것을 가본 적이 언제인가 생각해보니 중학교 때 일본을 일주일 정도 다녀왔었다. 그때는 가족들이 함께 갔었고 부모님이 정해놓은 계획하에 움직였기에 편하게 다녀왔었다. 이번에는 친구와 내가 계획하고 준비해서 가는 것이라 반드시 가져가야 할 것들과 돌발 상황을 대비해서 신경 써야 할 것들을 생각하느라 머리가 아프기도 했다. 그래도 평소 원주에서 거의 벗어나 본 적이 없는 터라 이왕 가는 김에 즐겁게 보내고 오자, 그때 생기는 일은 그때 가서 해결하자, 넘겨보기로 했다.



제주도 Day 1


여행 출발 당일, 제법 무거워진 캐리어를 끌고 원주(횡성) 공항으로 이동했다. 전에 인천 국제공항 갔던 것이 기억나 큰 규모와 수많은 인파로 인해 짐들을 잃어버릴까 혹은 제시간에 탑승 수속을 밟을 수 있을까 걱정을 했었는데 도착하고 나니 원주 버스 터미널 같은 작은 규모의 공항이라 걱정했던 나 자신이 조금 머쓱해졌다. 온라인으로 체크인을 미리 해놓아서 수화물만 맡기고 탑승 시간을 기다렸는데 너무 일찍 와서 공항 내 사람도 우리 외 다른 일행분들 3명 말고는 없었다. 우리는 공항 건너편에 위치한 카페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원주(횡성)공항 탑승 대기장소와 이륙 후 비행기 밖 전경

탑승 시간이 다가와서 공항에 들어가 탑승 수속을 밟았다. 온라인 티켓과 신분증을 보여주고 휴대 수화물 검사를 하고 나오니 탑승 대기 장소에서 비행기 출발 시간까지 기다려야 했다. 기다리는 내내 이런 작은 공항에서 비행기가 어디서 이륙을 할까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셔틀버스로 비행기가 대기하는 곳까지 이동해서 탑승하는 방식이었다. 비행기 이륙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원주에 있는 공군 부대 안의 활주로를 공유해서 사용한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비행기에 탑승하고 나서도 모든 게 처음이라 호기심 가득한 강아지 같이 쉴 새 없이 고개를 돌리면서 주변을 살폈다. 자리에 앉아서 벨트를 매고 잠시 기다리니 승무원들이 비상시 대비 안전교육을 해주었다. 교육이 끝나고 곧 비행기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너무 천천히 움직여서 시내에서 타고 다니는 전기 킥보드가 더 빠르겠다 생각했는데 어느 정도 달리다 보니 엔진 소리가 점점 폭발적으로 커지면서 속도가 붙더니 순식간에 땅에서 멀어졌다. 오래전 타봤던 롤러코스터에서 무중력을 경험했던 것처럼(참고로 나는 놀이기구 타는 것을 무서워한다. 타본 것도 놀이기구를 탄다는 것에 너무 들뜬 타인의 손에 강제적으로 이끌려 간 것일 뿐...) 속 안의 장기가 잠시 붕 뜬 느낌이었다. 땅에서 볼 때는 그렇게 높았던 건물들도 순식간에 작은 점들이 되었다.



원주에서 제주도는 그리 멀지 않았지만 해가 금방 저물었다. 오후 늦게 출발해서 해가 지는 하늘을 바라봤는데 제주도에 도착할 쯤에는 순식간에 어두워지고 땅에는 밝은 불빛들이 별처럼 수놓아져 있었다. 왠지 제주도라는 타이틀이 붙은 건물들이라 더 예쁘고 아름답게 보였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는 사람들에 좌석 위 기내 수화물 보관함에 넣어둔 짐들을 꺼내느라 복잡했다. 잠시 줄을 기다리다가 내려오니 셔틀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비행기가 있는 곳부터 공항까지 거리가 꽤 길고 위험하기도 해서 버스가 꼭 필요해 보였다. 우리는 거의 마지막 순번이라 버스에 사람이 많이 없었다. 버스에서 내려 공항으로 들어오니 빙글빙글 회전초밥처럼 돌아가는 컨테이너 벨트 근처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짐을 찾기 위해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잠시 기다리면서 다른 사람들의 캐리어 디자인을 구경하고 있는 사이 우리 캐리어가 나와서 잽싸게 들고 공항 밖으로 나왔다.


숙소는 택시를 타고 가면 금방이라 택시 타는 곳으로 이동했다. 여행 어플의 정보를 믿고 나름 스마트하다고 나 자신을 칭찬하며 빠르게 택시 탈 수 있는 경로로 이동했는데 알고 보니 택시 탑승 시작 지점으로 안내를 해서 순서를 지키기 위해 사람들이 끝없이 서 있는 대기 줄 끝으로 다시 가야 했다. 늦은 밤이 되어야 택시를 탈 수 있을 것 같아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찾아보니 버스를 타고 가는 게 오히려 대기하는 사람도 훨씬 적고 비용도 저렴했다. 엄청난 인파들에서 벗어나 동문시장 쪽으로 이동하면서 짠내 나는 바다 냄새도 흠뻑 맡고 시원하면서도 습한 바람도 즐겼다. 제주도에 왔다는 것이 서서히 선명해지듯 실감이 났다.



우리가 예약한 숙소는 '동문취향 게스트하우스'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간판 빼고 굉장히 오래되어 보였는데 안에 들어가서 체크인을 하고 방을 보니 침대와 세면도구, 화장실로 이루어진 잠을 자기 위해서 최적화된 숙소였다. 비싼 호텔에 비해 넓지 않고 뭔가 부족해 보였지만 오히려 이게 더 좋았다. 여행을 온 맛이 더 산다고 해야 하나. 숙소는 총 5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2층부터 4층이 숙소, 5층은 세탁도 할 수 있고 간단한 취식도 할 수 있는 식당이 있었다. 새벽 5시부터 오전 11시까지는 조식도 준비되어 있다고 했다. 다른 것 보다도 조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설레었다.


동문공설시장 지하 '모락모락 돌솥밥'


오늘은 숙소로 이동만 했는데도 좀 피곤했다. 저녁도 안 먹어서 빠르게 짐을 정리하고 나와서 찾아본 식당으로 이동했다. 숙소 근처 동문 공설시장 지하는 청년들이 모여서 상업활동을 하는 곳이었다. 그중에서 사람들의 평이 좋았던 '모락모락 돌솥밥'에 갔다. 영업 끝무렵에 간 터라 하마터면 못 먹을 뻔했는데 사장님의 배려로 영양솥밥 정식을 시켜서 배부르면서도 속도 편하게 밥을 해결할 수 있었다. 영양밥이라고 해서 밥에 들어간 재료들의 향이 강할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고 먹는 동안에도 자극적인 맛이 없어서 저녁 마무리로 안성맞춤이었다.


서부두 방파제


배가 부르니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조금 생긴 것 같아 숙소 근처에 있는 서부두 방파제를 산책하다가 들어갔다. 밤이 늦었는데도 방파제 쪽에서는 사람들이 돗자리를 깔고 시원한 맥주 한 캔씩 하고 있었다. 친구랑 옛날이야기를 슬슬 풀어내면서 추억에 잠겼다가 이제 늦었으니 빨리 들어가라는 어느새 차가워진 바닷바람의 숨결에 순응하여 얼른 숙소로 들어왔다. 따뜻한 물에 씻고 보니 노곤 노곤해지면서 빠르게 잠이 들었다. 제주도의 첫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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