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생각하다가

#네번째 글

by 신푸름

어린 시절을 다 보낸 어느 오래된 아파트에서 우리 가족은 조용하지만 열심히 살았다. 아버지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서울로 출·퇴근을 하셨고 나는 가끔씩 아버지께서 출근하러 나가시기 전 구두로 바닥을 탁탁 치시는 소리에 깨어 잠결에 눈을 비비고 일어나 방문을 열고 출근길을 배웅해 드리고는 했다.


아버지는 새벽에 나가셔서 밤 10시 넘어서 오셨기에 어머니랑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그 어릴 때 어머니께서 나와 내 동생에게 가르치신 생활 습관들을 가지고 친구들과 이야기하면 다들 딴 세상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어떤 것들이 있었나 하면 먼저 밖에 나갔다가 집에 들어오면 현관 앞에서 반드시 양말을 벗고 들어와야 했다. 현관 앞에 양말을 벗어 놓는 대야가 있었고 거기에 양말을 벗어서 넣고 들어오는 것이 우리 집의 규칙이었다. 만약 안 벗고 들어가는 것이 어머니 눈에 띄게 되면 우렁찬 고함 소리가 집안에 울려 퍼지게 되고 가슴이 떨리는 상황이 오게 되었었다.


어머니는 외식이나 배달 음식을 무척 싫어하셨다. 바깥 음식은 위생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셔서 집에서 한 음식으로 가족들을 삼시세끼 챙기셨다. (지금은 바뀌셔서 내가 서울에 올라가는 날이면 가족끼리 외식하는 걸 좋아하신다.) 주변 친구들은 햄버거도 먹고 불량식품도 먹는데 나는 용돈도 받지 않아서 배고프면 집으로 달려가는 것 외에는 배고픔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신기하게도 나 또한 외식하자고 조른 적이 없었다. 어머니께서는 요리를 굉장히 잘하셨다. 나도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음식을 가린 적은 없었다. 다만 냉장고를 비우기 위해서 남은 반찬을 다 섞어 만든 비빔밥은 질색이었다. 남은 반찬이 무엇이냐에 따라 비빔밥의 맛은 천지 차이였다.


남들은 많이 다니던 수학, 영어학원 대신 우리 집에서는 학습지로 공부를 했다. 매주 오는 학습지 선생님이 주시는 숙제가 너무 하기 싫어서 중간에 몇 장을 뜯어서 책장 어딘가에 숨기고는 했는데 어느 날 이 사실이 어머니께 알려져 학습지 선생님이 오셔서 하셨던 숙제 채점을 어머니께서 답지를 선생님께 받아서 직접 채점을 하시는 불상사가 생겼다. 덕분에 채점 시간이 줄어든 학습지 선생님은 남들보다 배로 진도를 나가셨고 남들은 1년 걸리는 단계를 우리는 2-3개월 만에 완료했었다. 선생님도 이건 유래가 없는 진도 속도라고 하시면서 어머니의 교육열에 대해 놀라워하셨지만 그만큼 힘든 건 나와 내 동생이었다.


친구들과 노는 것은 학교 시간뿐이었다. 학교 끝나는 시간이 되면 시계만 바라보시던 어머니는 내가 제시간에 오지 않으면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등짝 스매시를 날리면서 내가 집에 오지 않은 시간 동안 하셨던 걱정을 한가득 풀어놓으셨다. 누구는 친구 집에서, 누구는 바깥에서 놀고 생긴 에피소드를 즐겁게 이야기하는데 나는 학교 쉬는 시간 잠깐 노는 걸로 이야기하려니 공통 주제가 많이 없는 것 같아 속이 답답했었다. 그래서 쉬는 시간만큼은 뒷일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놀았다. 한 번은 뛰어다니다가 넘어져 무릎이 찢어졌는데 어머니께 혼날까 봐 밴드를 임시방편으로 붙이고 끙끙거리고 있었다. 어느 날 빨래해야 하니 옷을 벗어서 주라는 어머니 말씀에 생각 없이 옷을 벗다가 다친 곳을 들키게 되었는데 이렇게 다친 걸 이야기 안 했다고 엄청나게 혼나고 나서야 병원에서 상처를 꿰매는 일도 있었다.


이런 어린 시절을 살아오면서 어머니께서 정한 규칙 내에서 살 때는 크게 불편하다고 생각 못했다. 그러나 부모님과 처음 떨어져 살게 된 대학교 기숙사 생활,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부딪히며 살다 보니 ‘내가 다른 친구들보다 자유롭게 살지 못했구나.’라고 생각이 들면서 한시라도 부모님과 떨어져 지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주말에도 과제 핑계대면서 집에 가지 않으려 했다. 어머니는 전화로 서운함을 표현하기도 하셨지만 그 당시 부모님과 떨어져 있다는 물리적, 심리적 거리에서 오는 자유가 너무 짜릿하고 좋았다.


시간이 지나 부모님께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 나이에 나도 나란히 서게 될 때쯤, 부족하지만 나를 키우신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어린 시절 ‘다마고치’라는 작은 기계 안의 디지털 화된 몬스터를 키우는 것이 있었다. 키우다가 마음에 안 들게 성장하면 재시작해서 다시 키울 수 있었다. 처음보다 두 번째 키우는 것이 쉽고, 재시작할수록 경험이 생겨 내 생각대로 키워낼 수 있었다. 우리의 인생도 실수를 하게 될 때 재시작 버튼을 눌러 다시 시작할 수 있으면 더 잘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어머니 본인도 처음 사는 인생이고 아이도 처음 키워보신 것이다. 실수했다고, 잘못했다고 해서 돌이킬 수 없다. 어머니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다. 그렇기에 나라도 잘되게 하기 위해서, 좋은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하신 것이다. 그 노력의 결과물이 ‘지금의 나’이다. 별문제 없이 아픈 곳도 딱히 없이 자랐다. 어긋남 없이 잘 자란 것이 요즘 시기에 더욱 감사하게 다가온다.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고 나도 그 마음을 닮아 물들여져 만들어주신 좋은 습관들로 살아간다. 다른 날보다 더욱더 어머니가 보고픈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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