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가까이 되어서 직장에서의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이 시기에 퇴사하신 분이 계셨는데 직장 쪽에서는 사람을 더 안 뽑겠다고 해서 내가 해야 하는 업무의 강도가 더 높아졌다. 답답함을 풀기 위해서 어디든 가고 싶었고 명절이 그나마 정당하게 어딘가로 갈 수 있는 이유가 될 수 있었기에 빨리 오길 기다렸다.
전에 집에 가면 취업에 관한 이야기와 내 미래에 대한 걱정을 한가득 하셔서 머물러 있기가 불편해서 일찍 나오곤 했다. 이번에는 일자리도 잡혔고 들을 이야기는 더 없다고 생각했는데 설날 당일 밤늦게 어머니께서 나와 내 동생을 모아놓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남성도 갱년기가 있음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나에게 와 닿는 사실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이렇게 찾아올 줄은 몰랐다. 최근 들어서 말수도 많아지시고 이것저것 더 챙겨주려고 하시는 모습이 어머니 모습과 비슷하다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우리 앞에서의 모습과는 달리 평소에는 기력도 좀 없으시고 의욕도 떨어지신 모습이라고 하셨다. 그래서 목표를 두고 성취하는 것으로 의욕을 끌어올리시기 위해 여러 가지 자격증을 준비해볼 계획이라고 하셨다. 방에 있던 유기농업 기능사 자격증 책을 보면서 우리 집에 누가 농업 관련 일을 하지 생각했는데 아 그런 거였구나 이제 이해가 되었다.
아버지와 대화를 시작한 게 대학교 올라와서 조금씩 해본 것 같다. 그전에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살던 지방에서 서울로 새벽부터 밤까지 출퇴근하시느라 얼굴 볼 시간이 없었다. 그때의 아버지는 굉장히 엄하신 분, 중요한 순간에 할 말 하시는 분, 어머니께서 혼내도 바뀌지 않으면 최후의 방법으로 매를 드셨던 강력한 분이셨다. 내가 대학교 와서는 아버지께서 많이 바뀌셨다. 주말에 집에 가면 해외 맥주 하나씩 다 마셔보자 하시면서 이야기하기도 했고 집 근처 작은 동산을 같이 걷기도 했다. 그 이후 다시 함께 있는 시간이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게 어색해져 버렸다. 그 뒤로는 전화하는 것도 어색해서 전화 버튼에 손이 잘 가질 않았다. 아버지께서는 함께 술 한상 즐기던 그 시절이 굉장히 좋으셨던 것 같다. 지금도 아들들 오면 기분 좋게 술 한상 차려서 함께 자리를 하시는 것이 낙이라고 하셨다.
어릴 때 부모님께서 엄격했기 때문에 오고 가는 대화가 되기보다는 잘못한 부분을 지적하시면 그것에 변명하는 식의 대화가 많았었다. 아들이라서 엇나가게 키우면 안 된다는 일념으로 강하게 말씀하셨다고 했지만 그때 느낀 건 그랬었다. 그래서 대화가 기분 좋게 오고 가는 게 아니었다. 물어보시는 것을 아는 것 안에서 답해드리는 내 모습은 기계적인 답변 제조기 같았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요즘에 우리들에게 바라시는 대화의 모습이 익숙해지려면 점차적으로 변화가 필요했다. 이런 변화가 필요함을 빨리 못 느끼고 아버지께서 외로워하셨을 것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했다.
명절 연휴가 끝나고 집에 가려고 짐을 챙기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뭐 두고 간 건 없냐고 물으셨다. 항상 집에 나선 뒤 한두 발자국 내딛고 나서야 두고 온 게 생각나 되돌아오곤 해서 이번에는 꼼꼼히 챙겼다고 말씀드렸는데 갑자기 아버지께서 두고 간 거 있다고 하시면서 품 안에서 손가락 하트를 보여주셨다. 처음에는 당황했는데 그동안 내가 아버지의 마음을 너무 모르고 살았던 것 같아서 죄송한 마음이 확 차올랐다. 꺼내 주신 손가락 하트에 나도 화답해드렸어야 했지만 그때는 바로 하질 못했다. 다음에 집에 가서는 내가 더 표현도 하고 이야기도 먼저 전해드릴 수 있게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