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다시 등산하고 싶다
#열일곱번째 글 #등산
사람들이 등산이 건강에 좋은 것을 알지만 쉽사리 하지 않게 되는 이유는 단순하게 보면 오르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그냥 걷는 것보다 높낮이가 있는 울퉁불퉁한 비탈길을 걷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올라가기 위해 지면을 박차는 다리 힘도 중요하지만 평평하지 않은 길에서 몸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게 상체도 긴장을 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등산을 함으로써 전신운동을 하게 된다. 코로나 동안 꽤 많은 사람들이 사람 없는 곳을 피해 놀러 갈 곳을 찾으면서 SNS에 한동안 등산 인증샷을 올리는 것이 유행을 했었다. 고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에 있는 세상을 내려다보는 맛에 사람의 기술이 더해진 필터의 힘으로 펼쳐진 멋진 경관들은 젊은 등산가들을 끌어 들였다.
같은 하늘의 햇빛이지만 산 속 나무잎새들 사이로 비치는 햇빛은 더욱더 신비롭고 따뜻하다. 중학교 때인지 고등학교 때인지 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주말마다 아버지는 내 손을 끌고 봉화산에 가셨다. 원주에는 치악산이라는 그야말로 '악'소리가 나오는 험준한 산이 있지만 난이도가 높기에 그곳보다 낮고 동네 뒷산 가듯이 가볍게 갈 수 있는 산이 봉화산이었다. 그때는 주말이 되는 것이 무척 싫었다. 아버지께서 아침에 일어나서 웃으면서 거부할 수 없는 등산을 제안하시는 것이 답답한 구속 같았다. 그 당시에는 운동을 너무 싫어해서 스스로 운동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 핑계 저 핑계대면서 안 가려는 나를 아버지는 기어이 차에 태워 봉화산 입구까지 데려가셨다.
우스갯소리로 올라가서 내려올 건데 왜 힘들게 산을 오르냐 하는데 그때 내 마음이 그것이었다. 힘들게 올라가서 바람 한번 쐬다가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내려가는 게 얼마나 고통이던지. 다리만 후들거리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까지도 후들거렸다. 속에서는 힘들어서 욕이 나오고 이곳에 데려온 아버지도 괜히 원망스럽고 집에서 푹 쉬면 좋은데 왕복 2시간이 걸리는 이 길을 왜 가는 것일까, 집에 돌아가면 누구보다 힘껏 쉬어야겠다 등등 별의별 생각을 하면서 내려갔다. 한 번은 산에서 내려가다가 발목이 꺾여서 안 그래도 힘든 하산길이 더 힘들어진 날이 있었다. 그때는 이때다 싶어서 아버지한테 평소보다 큰 소리로 불평불만을 쏟아내면서 다리를 질질 끌고 내려왔던 것 같다. 아버지께서는 업히는 것을 제안하셨지만 그놈의 똥고집 때문에 출구까지 혼자서 내려갔다.
가끔씩 고된 등산의 끝은 돼지국밥이었다. 지하상가에서 뜨끈한 국밥을 말고 한 입 두 입 먹다 보면 몸이 노곤해지면서 몸의 긴장이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등산하면서 들었던 온갖 나쁜 생각들을 뜨거운 국물에 풀어 녹여내고 불타오르는 화도 식혀냈다. 그렇게 되면 불만을 가졌던 아버지께 죄송한 마음이 들어서 조용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갔다. 아버지는 별말은 안 했지만 등산 내내 폭탄 하나를 안고 가셨던 셈이라 굉장히 힘드셨을 것이다.
한창 아버지와 주말마다 등산을 다니던 시기가 지나고 대학교에 입학한 후 기숙사, 자취방에 살면서 아버지와 등산 갈 일이 없어졌다. 주말마다 과제, 모임 핑계를 대면서 집 자체를 별로 가질 않았다. 등산은 나에겐 생소한 단어가 되어갔고 또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30대가 되면서 사회생활이라는 현실과 부딪히면서 나도 모르게 등산을 하고 싶어졌다. 갑자기 봉화산을 가고 싶기도 하고 치악산 비로봉을 정복하고 싶기도 했다. 무엇이 나를 산으로 이끌까 생각해봤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아버지와의 등산에서 나쁜 감정은 정말 잠시었고 힘들어도 어찌 되었든 앞으로 전진하면 정상을 정복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현실에서는 스펙 쌓기 위해 자격증 준비를 하면서 떨어지기도 하고, 직장 지원하면서 수없이 넣은 지원서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도 하고, 면접을 보고 나오는 많은 불합격 문자들을 마주하다 보니 노력해서 결과를 바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싱그러운 풀냄새, 시원한 바람, 아스팔트의 평평함이 아닌 고르지 않은 지면을 밟으면서 느끼는 땅의 감촉, 세상과 단절된 듯한 조용함. 여러 가지가 등산의 매력이지만 나에게 등산은 나도 노력하면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다. 아버지께서 그것을 나에게 심어주기 위해 등산을 하셨던 것은 아니지만 그때의 경험이 남아서 한 번씩 충전이 필요할 때면 등산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본집이 서울로 이사를 가고 나서는 가끔 집에 갈 때마다 아버지와 저녁 먹고 집 앞에 있는 하늘공원으로 산책을 나가자고 먼저 말한다. 이제는 불평 가득한 철부지 아들이 아니라 조금은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고, 아버지 곁을 지키는 든든한 아들이 되어가려고 한다. 쉽지는 않지만 등산처럼 걸어가다 보면 자신감을 채우는 일도, 멋진 아들이 되는 일도 이룰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