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색한 작아짐

작아지신 부모님을 보고 온 뒤의 생각

by 신푸름

"안방에 있는 돌침대 빼려고 하는데 좀 도와줄 수 있니"


설날 연휴 맞이해서 오랜만에 본집에 온 나에게 아버지께서는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안방을 가득 차지하고 있는 침대가 생활하시기에 너무 커서 공간 활용도 안되고 답답하다고 하시면서 이번 기회에 정리를 하고 싶다고 하셨다.


공간을 크게 차지하는 만큼 해체 작업도 상당히 어려웠다. 그리고 해체할수록 해결해야 할 것들이 늘어났다.

돌침대라서 잠자리를 따뜻하게 데우는 장판의 무게가 상당히 무거웠다.

아버지와 끙끙대면서 장판을 들어내보니 합판들을 타카핀으로 잔뜩 고정해서 장판을 지지하고 있던 침대 프레임 안 쪽 실체를 알 수 있었다.


문제는 이 합판을 분리하려면 타카핀을 다 뽑아야 하는데 그렇게 할 전문적인 도구도 없었고 뽑아야 하는 양 자체도 너무 많아서 그냥 부수면서 해체하기로 했다.

다치지 않게 장갑을 꼈지만 막무가내로 잡아 뜯으면서 부수는 바람에 작은 나무조각들이 장갑에 박혔다.

손에 찔려도 부수기 시작한 이상 어쩔 수 없었다. 끝을 보기로 했다.


아버지는 드라이버를 이용해서 겉의 가죽을 뜯어내고 합판을 뜯기 쉽게 작업하려고 타카핀을 뽑아내려고 노력하셨는데 그 과정에서 많이 휘청이셨다. 힘을 많이 써야 하는 작업이라서 뜯어낼 때 반동을 몸이 버티지 못하시는 것 같았다.

해체를 끝낸 돌침대. 해체하고 보니 작아보인다.

정신없이 해체를 하고 나오는 부속품들을 내다 버리면서 주변 정리를 해나가는데 아버지가 굉장히 지쳐하셨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의 다리가 유난히 얇아진 게 눈에 보였다. 아까 휘청이시던 것이 다리 힘이 풀리셔서 더 그러셨던 것 같았다. 아버지 종아리가 저렇게 얇지 않았었는데... 새삼 아버지께서 나이가 드신 것이 체감되었다.



어머니는 어깨가 많이 안 좋아지셨다.

오십견이라고 하셨다.


면역력이 강하거나 몸이 좋은 편이 아니신 어머니는 부지런히 집안일을 하시거나 저녁마다 산책하시는 건강한 생활 습관으로 버티고 계셨었다. 이젠 관리를 하더라도 너무 오래된 부품들은 고장 날 수밖에 없듯이 하나씩 아프시기 시작했다.


오십견에 어깨운동이 좋다고 해서 어머니는 고무 밴드를 사서 어깨운동을 시작하셨다고 했다.

그런데 너무 열심히 하셔서 오히려 어깨 통증이 더 심해졌다고 도대체 얼마나 열심히 한 거냐며 아버지께서 걱정 가득한 말투로 이야기하셨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시면 집중해서 열심히 하시는 어머니는 이런 운동까지도 적당히 하신 게 아니라 평소대로 열심히 하신 거였다.


통증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주무셔서 다음날 아침에 일어난 어머니의 얼굴에는 그늘이 가득했다.

설날에는 여는 병원이 거의 없어서 연휴 끝나고 아버지와 같이 가보기로 했다.


외할머니는 서울에서 경기도 하남으로 집을 옮기시고 나서 청력이 예전보다 더 안 좋아지셨다.

외삼촌이 다니시는 회사에서 지원받아 보청기를 해드리려 했는데 큰돈 나간다면서 한사코 거부하셨다.

지금 쓰고 있는 보청기는 성능이 안 좋은지 큰 소리로 얘기해야 겨우 알아들으시고 답하셨다.


설날에는 외할머니와 단지 하나 차이 거리에 계시는 외삼촌이 주도해서 제사를 지내신다. 우리 가족은 부평에 계신 친가 쪽을 갔다가 제사가 끝날쯤에 외가에 들린다. 외할머니는 외삼촌 집에서 제사를 같이 지내시고 우리 가족이 오길 기다리신다. 우리가 도착하면 삼촌 가족과 서로 최근 근황이나 외할머니 건강 같은 이야기를 어느 정도 나누고 집으로 돌아갈 때 외할머니를 데리고 댁에 모셔드린다.


이번 연휴에는 점심시간보단 이른 시간에 도착했는데 외할머니는 오자마자 밥 먹으라고 계속 재촉하셨다. 친가에서 아침 먹고 와서 괜찮다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는데 괜찮냐고 재차 물어보셨다. 밥 대신 떡 같은 간식을 두고 삼촌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갈 시간이 돼서 외할머니를 데리고 댁에 모셔다 드리기로 했다.

집에 도착한 할머니에게 '저희 갈게요'라고 어머니가 이야기하자 할머니는 밥 안 먹고 가냐면서 또 밥 이야기를 하셨다. 한 끼 먹는 모습 보지 못하신 게 마음에 걸리시는지 '밥 묵고 가라, 밥 묵고 가' 하시는데 목소리에 예전보다 힘이 많이 빠지신 게 느껴졌다.


전에는 밥을 안 먹고 가면 등짝을 치시면서 먹고 가라고 화도 내시고 그랬는데 이젠 간절한 목소리만이 남아 있으셨다. 순간 마음속에서 뭔가 올라와서 울컥해서 고개를 돌렸다.

벌써 10년이 지난 것 같다. 외할머니가 방광염으로 입원하시고 고생하실 때 잠깐 병시중을 든 적이 있다. 아프시니까 도움을 받으시는 건 당연한 건데 자신 때문에 고생하는 손자가 안타까워서 얼굴을 볼 때마다 연신 어깨를 토닥이시면서 미안하다고 하시던 할머니는 그때보다도 더 힘이 없어지셨다.


우리가 엘리베이터에 타서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할머니는 문을 활짝 열고 우리가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셨다. 어머니는 할머니 왜 이렇게 약해지셨냐면서 아버지께서 보실까 봐 몰래 흘리신 눈물을 닦고 차에 타셨다.


소설이나 에세이 속에서 다 큰 자식들이 오랜만에 만난 부모님을 바라보면서 머리가 하얗게 세고 예전보다 작아 보이는 모습에 슬펐다고 하는 말들이 이해가 되어간다.

나도 그렇게 컸고 부모님은 나이가 드셨다. 할머니는 더 그러했다.


작아지는 부모님이 어색했다. 언제나 든든히 내 뒤를 지켜주실 것 같았는데 이젠 반대입장이 되어간다.

부모님 앞에서 더 멋진 자식이 되고 싶은데 아직은 많이 부족한 모습만 보여드리는 것 같다.

항상 기쁜 소식만 전해드리고 싶고 기운나게 맛있는 것만 드시게 하고 싶다.

가족이니까 다 이야기 할 수 있는거라면서 부담가지지 말라고 하시는 부모님 앞에서 아직도 말 못한 이야기들이 많다. 언제쯤 속 시원하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설 연휴 끝내고 내려오는 길이 평소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