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높이기 위해 끄적거려 본 글

#다섯번째 글

by 신푸름

2021년을 기분 좋게 맞이했으면 좋았겠지만 잘 꾸지 않는 악몽을 연속으로 꿀 정도로 마음 아픈 일이 있었다. 그 일이 나로 인해서 발생했다고 생각해서 상대방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 속에서 며칠을 허우적댔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말은 도대체 누가 만든 말일까. 정말 내 상황과 찰떡같이 맞아떨어지는 명언이다. 무기력해지면서 ‘내가 이렇게 남에게 피해를 끼치고 살아있어야 하나’라는 비극적인 드라마 주인공 같은 생각을 하면서 우울해했다. 그러다가 이렇게 있다가는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제자리에서 땅굴만 파다가 미래의 나에게 모든 짐을 넘겨 버릴 것 같아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내 장점을 생각하면서 우울한 감정에서 빠져나갈 마음의 힘을 길러보기로 했다.


나는 문서양식을 만드는 걸 잘한다. 군대에서 의무병으로 일하면서 기존에 부대에 있는 의약품 재고 현황과 환자 명부 양식이 몇 년 전 의무 시스템에 맞춘 것이라 최신과는 맞지 않아서 필요한 항목들을 추가하고 나머지는 과감하게 삭제했다. 익숙했던 행동 습관을 바꾸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지만 일할 때의 답답함이 더 싫기에 마음먹고 파일 양식들을 바꾸었다. 결과적으로는 효과적으로 일 할 수가 있어서 좋았다. 작년 보건소에서 일할 때에도 코로나 사태에 긴급하게 방역 인원만 투입하다 보니 근로한 것에 대한 결과물이나 필요한 서류들을 정리해서 모아둘 양식이 전혀 만들어져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 날 어떤 업무를 했고 어떤 특이사항이 있었는지를 보고드릴 양식과 근로자들이 근무할 때 준비되어야 할 정보들을 파일화 해서 정리해놓았다. 일을 봐주셨던 주사님께서 굉장히 흡족해하시면서 너는 공무원 하면 정말 잘하겠다는 덕담(?)을 해주셨다. 양식을 하나 만들어서 그것을 실제로 쓰다 보면 수정 보완하게 되는데 점점 완벽해져 가는 양식을 보면서 희열을 느낀다. 변태 같은데 아무튼 ‘넌 더 완벽해질 수 있어!’하면서 맞고 쓰러지면서도 성장하는 국가대표 선수를 응원하는 코치 같은 느낌이랄까. 나는 응원하는 대상이 컴퓨터 안의 파일이긴 하지만.


글씨도 제법 잘 쓴다. 어머니께서 궁서체 같은 바른 글씨체를 가지셨는데 그걸 보면서 자란 영향도 큰 것 같다. 항상 글씨를 쓰고 다른 사람에게 보일 기회가 생기면 잘 쓴다는 이야기를 항상 들어왔다. 사실 글씨도 나보다 잘 쓰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어서 자랑할 거라 생각하진 않지만 그래도 꾸준히 20여 년 간을 한결같이 들은 것이면 나름 검증된 것 같아서 조심스럽게 적어본다. 글씨도 비교적 잘 써질 때 쾌감이 대단하다. 글씨가 써지는 종이의 질과 종이에 미끄러지는 펜의 필기감의 궁합이 잘 맞을 때 물 만난 물고기처럼 필기에 집중이 되어서 필기의 세계 외의 다른 건 신경을 못쓴다. 누가 옆에서 뭐라 하든 일이 생기든 별 상관이 없다. 그때의 집중력만큼은 막장드라마를 바라보는 어머님들 뺨친다.


DIY 제품 도면을 이해해서 빠르게 만드는 것도 잘하는 것 같다. 뭔가 자신감이 없어 보이는 ‘잘하는 것 같다’라는 어미를 붙였지만 배달되어 온 DIY 제품의 도면이나 설명서를 한번 보고 완성할 때까지 거의 보지 않고 만드는 걸 보면 나름 만드는 것에 재주가 있는 것 같다. 만들고 난 완제품은 이 제품을 산 사람들이 다 같은 재료로 만든 것이기에 똑같겠지만 나름 특별해 보인다. 노력한 것의 결과물이 당장 눈앞에 보인다는 건 굉장히 성취감이 높아진다.


스마트폰의 머리는 발전해서 성능은 좋아지고 있지만 본체는 발전되지 않고 그대로인 것 같다.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핸드폰을 보면 액정이 깨진 사람들이 정말 많이 보인다. 그런 면에서 나는 핸드폰을 정말 세심하게 다루어서 바꾸기 전까지 깔끔하게 쓴다. 이때까지 사용했던 핸드폰 중에 액정이 깨져서 바꾼 폰은 없다. 폰뿐만 아니라 다른 물건들도 잘 아끼면서 사용하는 편이다. 책이나 노트나 옷 같은 경우도 막 쓰려는 목적으로 산 물건 외에는 새 것 같이 사용한다. 그래서 물건을 꽤 오래 쓰는 편이다. 돈도 아끼고 추억도 쌓고 굉장히 좋은 습관이자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적 어머니께서 해주신 건강식이 가득한 집밥만 먹고 자랐기 때문인지 특별나게 몸이 아픈 곳이 없다. 다른 사람들이 잘 걸리는 감기도 거의 걸리지 않고 다치거나 결리거나 하는 일도 거의 없다. 물론 다칠 정도로 무언가 격렬하게 한 적이 많이 없긴 하지만 힘든 일을 하고 나서 그다음 날 어떤 사람들은 아파서 못 일어나기도 하고 끙끙대는데 나는 잠만 자면 다 낫는다. 신통방통한 능력 같다. 만화 주인공도 아니고 잠자고 일어나면 모든 것이 회복되어 있다. 때로는 아파서 쉬시는 분들이 부럽기도 했다. 나도 아프면 ‘저 오늘 하루 쉬겠습니다’ 하고 쉬면 되는 것을 일어났는데 너무 멀쩡해서 일하러 안 나가기도 양심에 눈치가 보인다. 열이 나는 건 아닌가 머리에 살짝 손을 얹어봐도 양심이 ‘어서 나가서 일하렴’하고 조용히 소곤거린다. 내 마음도 몰라주고. 하지만 코로나가 한창인 요즘 그런 건강을 큰 감사함으로 생각하고 있다.


요즘 들어 가장 아끼는 장점은 꾸준함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아침마다 보내는 좋은 글과 응원의 말도 휴일 빼고 매일 보낸 것이 6개월가량 되었다. 비가 퍼붓거나 아랫도리가 시릴 정도로 추운 날 같은 날씨가 아니면 아침운동과 저녁 운동도 꾸준히 나간 지 반년이 되어간다. 일기 쓰는 것도 빼먹지 않은 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2009년부터 시작해서 10년이 넘어간다. 모여있는 일기들을 보면 10년의 세월의 무게도 느껴지고 나의 꾸준함을 표현하는 가장 멋진 녀석들 같아서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 꾸준함이 내가 못한다고 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일들도 낙숫물에 바위가 뚫리듯이 해결해 나갈 수 있는 힘이라 생각한다. 꾸준함을 갖기 위해 마음먹는 것도 어렵긴 하지만 해낸 결과물들을 바라보면서 힘을 얻는다.


장점을 적으면서 내가 해온 것들을 생각하니까 제법 자존감이 높아진다. 나 자신이 앞에 있다면 낯간지럽지만 잘한다고, 잘해왔다고 꼭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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