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 무대의 주인공

#일곱번째 글

by 신푸름

늦은 나이에 다니는 일자리에서 가장 고민이 되는 건 상사들 간 갈등 속에서 중심을 잡는 일이다. 누구의 편을 들어주기가 참 어렵다. 한쪽 편을 들어주면 다른 편의 사람과 일하기가 껄끄러워진다. 마치 기우뚱거리며 중심을 잡아가는 줄타기와 같다.


그날도 애매한 상황에 놓였다. 오후 늦게까지 다른 부서 일을 도와주다가 사무실로 돌아와 쉬려고 했는데 과장님께서 본인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하시면서 오전에 내가 없는 사이 있었던 일들을 말씀하셨다. 전에도 부서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두고 과장님과 계장님의 시선과 대화의 방식이 너무 달라서 매번 부딪혔는데 이번에도 같은 갈등을 겪고 계셨다. 과장님은 본인의 입장을 이야기하시면서 열변을 토하셨다.


이때의 반응이 굉장히 중요하다. '아, 매번 같은 이야기인 것 같은데'하고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지금 무슨 생각하냐고 말씀하시면서 기분 상하실 수 있기에 적당한 리액션과 함께 경청해서 듣는다. 눈치 보며 피곤하게 산다고 볼 수 있지만 이 분도 얼마나 답답하고 이야기하고 싶었으면 아랫 사람인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을까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1시간가량을 듣고 퇴근 시간이 다 되어서야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셨다.


다음날은 과장님이 휴가 셨기에 사무실에 계장님과 나 2명이서 일하게 되었다. 이번엔 계장님께서 어제 있었던 일을 말씀하시면서 본인의 입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셨다. 두 분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분들이 각자 입장에서 틀린 말은 거의 없다. 단지 문제 해결을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나 다른 것이 문제이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두 분이 똑같이 하는 말씀이 있다.


"그 사람 심성이 나쁜 것이 아닌데... 본래 사람이 그러한 것을 어떻게 하겠어"

나쁜 의도로 그러는 건 아닌데 본래 그런 것 어떻게 하겠냐 하면서 한숨을 쉬신다. 사실 위의 저 말을 단어도 거의 틀리지 않고 두 분이 똑같이 말씀하셨다. 그래서 신기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정말 사람의 본성은 바뀌기 어렵구나.


나의 소심함은 트리플 A형이라고 불릴 정도로 심하다. 심심풀이로 보는 혈액형별 성격 특징을 보면 A형의 특징은 다 내 이야기이다. 민망할 정도로 똑같아서 통계학적으로 ‘이 사람은 A형이니까 이렇겠구먼’하면서 측정이 가능한 사람처럼 느껴진다. 특별한 사람 취급하는 건 별로지만 괜히 신비함을 잃어버린 것 같아 싫다. 이런 성격을 고치기 위해서 정말 많은 노력을 예전부터 해왔다. 자기 계발 관련 책도 읽어보고, 성격 바꾸어서 팔자 고쳤다는 강연도 들어보고, 거울 속 웃음이 어색한 나를 보면서 웃으면서 ‘나는 할 수 있어!’라고 마음속으로 외치기도 했다. 하지만 성격을 바뀌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20여 년을 그렇게 살아왔는데 한순간에 바뀌는 건 어려운 것이 당연했다.


어렵긴 하지만 바뀌는 것도 성격이다. 확고한 목표가 있어서 혹은 차원 높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야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찰나의 깨달음으로도 주변 환경의 변화로도 바뀔 수 있다. 세상에서 성공한 여러 사람들을 보아도 어릴 적의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사는 사람은 많이 없다. 어렵게 시작해서 성공한 사람들의 일화들 가운데서 가끔 뜻하지 않은 상황 가운데에 큰 변화를 맞이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은가. 나도 뜻하지 않게 내 성격의 변화를 맞이할 수 있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숨어 있던 성격을 찾은 것이다. 숨바꼭질 놀이에서 어딘가 깊숙이 꼭꼭 숨어서 불러도 안 나오던 친구를 찾으려고 부산스럽게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눈 마주쳐서 찾게 된 느낌이랄까.


나는 관심받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강제로 끌려나간 장기자랑 자리에서 머리가 하얘져 춤이 아닌 율동을 하고 있는 나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공포 그 자체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정말 마음 한쪽 작은 귀퉁이에서 행복감을 느끼는 또 다른 나를 발견했다. 그 이후에도 무대 앞에 나갈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무대에서 즐거워하는 내가 너무 거리감이 느껴져서 '이건 내가 아니야, 정신 나간 거 같아'라며 부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모습도 나였다. 소심한 나, 꼼꼼한 나, 무대에서 즐거워하는 나, 질투심 많은 나... 수많은 나의 모습 그 자체가 '나'였다. 숨어있던 나의 모습이 어느 순간 하나둘씩 고개를 들고 나를 봐달라는 듯이 쳐다볼 때에는 소심한 내가 강했기에 나머지의 '나'를 누르려고 했지만 이젠 모든 '나'를 사랑하려고 한다. 내가 아니면 누가 모든 '나'를 사랑할까. 이걸 깨닫고 나서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이 튀어나와도 놀라워하지 않는다. 소심한 '나'는 마음속 무대 중앙에서 잠시 물러나 또 다른 나를 관람한다.


"저 녀석 참 신기하구먼. 어디서 튀어나온 거야?"


손뼉 치면서 낄낄거린다. 이런 걸 보면 성격이 바뀐다기보다는 여러 성격의 녀석들이 존재하지만 내 마음의 무대에 어떤 녀석이 주인공이 되는지에 따라 표출되는 모습이 달라진다고 본다. 드라마도 등장인물들이 새로 나올 때 극 중 전개의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지 않는가.


과장님과 계장님의 살아오신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런 변화의 계기가 없었기에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살아오신 것 같다. 사실 그런 계기가 생기기에는 일상이 무척이나 단조롭고 다를 것이 없다. 그것이 나쁘다고 말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그저 다른 ‘나’의 모습이 무대 위에 올라갈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나 역시도 이런 일상 속에서 마음속 무대에 오르기 위해 몸 풀며 준비하는 또 다른 '나'의 녀석들이 지치지 않고 잘 버텨주길 바란다. 올해도 잘 부탁한다 얘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