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성숙하지 못한 어른
#열네번째 글 #성숙 #아이
보험 가입을 위한 제출 서류를 준비하던 중에 재작년 심전도 검사에 대한 의사 소견서를 검사했던 병원에 가서 받아야 했었다. 검사받았던 병원 운영 시간과 근무 시간이 겹치기도 했고 병원에 갔다 오려면 1시간 정도를 여유롭게 잡아야 했는데 지금 다니고 있는 병원 일이 바쁜 것을 알고 있기에 1시간의 개인 시간을 요청드리기가 곤란했었다. 상황을 보다가 그나마 덜 바쁜 시간대를 잡아 과장님께 말씀드리고 재빨리 다녀왔다.
그렇게 눈치 보면서 조심스럽게 다녀온 결과, 심전도 검사를 받고 2년 후가 되는 올해 후반기에 재검사를 하여 이상이 없을 시 원하는 소견서를 발급하겠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빈손으로 돌아오긴 했다. 무언가 애써서 다녀왔는데 별 소득이 없어서 괜스레 짜증이 났다.
퇴근하고 저녁에 부모님께 이 부분을 말씀을 드렸는데 부모님은 '무슨 병원이 1시간도 시간을 못 내냐, 너무 빡빡하다.'는 반응이셨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순간 욱하는 마음에 하루에 8시간 일하는데 1시간을 개인적인 일로 쓰는 게 마음이 편하겠냐고 맞받아쳤다. 어머니께서는 본인이 회사 다닐 때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면서 웃으셨는데 나는 마음이 확 상했다. 그 뒤에도 이야기는 계속했지만 답답한 감정이 계속 남아 좋진 않았다.
전화를 끊고 바로 후회했다. 감정적으로 부모님께 쏘아붙이듯이 이야기했는데 그것도 다 변명하듯이 이야기해서 내뱉고도 기분이 이상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나는 잘못한 게 없다고 도둑이 제 발 저리듯이 떼쓰는 모습이었다. 나쁜 일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
왜 욱했을까, 왜 마음이 상했을까 전화할 때의 상황을 복기했다.
이번 보험 가입은 스스로 찾아서 한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께서 시간을 내주셔서 여러 상품들을 비교해서 합리적인 금액으로 제안하신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서 하게 된 것이었다. 가입하기 전에 보험 관련돼서 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용어가 어려워서 사실 반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때부터 나는 어린아이가 되었다. 세상에는 아직도 모르는 게 많구나, 너무 어렵다고 생각하니 '나는 어리니까, 경험한게 적으니까 모르는 게 당연해' 하면서 넘어가려고 했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실제는 서른 살이 훨씬 넘어 겉으로는 아저씨 소리도 듣는 나인데 속은 어린 아이니 그 차이를 인정하기 싫어하는 아이러니한 마음이었다.
어머니의 웃음에 마음이 상한 것은 내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 같다는 것을 놀리시는 것 같아서 그랬다. 부모님 마음에는 자식이 커서도 항상 아이 같다는 말도 있지만 아이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실제로는 큰 아버지 정장을 입고 '나는 이런 옷을 입고 있으니 어른이야!'라고 생각하는 아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전화 뒤에 바로 후회한 것도 내 모습이 바로 보여서 그랬다. 명철하고 듬직한 아들이 되고 싶은데 언제까지 철없는 아이일 것인지 씁쓸하면서도 어이없는 웃음도 나왔다. 언제 나는 어른이 될까. 올해는 마음이 단단해지고 어른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