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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푸름 Apr 12. 2023

시, 우리 친해져 볼래?

중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 담당 과목은 국어였다.


처음 입는 교복이 어색할 때 만난 그 선생님의 수업 방식은 굉장히 독특했다.

수업을 위해 꼭 '두꺼운 스프링 노트'를 준비하라고 하셨다. 노트를 쓰는 방식 때문에 스프링 노트가 필요했는데 일반적으로 앞쪽부터 쓰는 것이 아니라 앞 뒤를 동시에 사용하셨다. 노트 앞쪽에는 수업 요약을 적게 했고 뒤쪽에는 수업에서 생각할 주제를 던져주고 개인적인 생각을 적으라고 하셨다. 자신의 생각은 짧아도 좋으니 일단 써보라고 하셨는데 내 생각을 쓴다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다.


다행히 발표까지는 시키지 않으셨고 대신 수업이 끝나면 노트를 걷게 해서 우리가 쓴 글에 간단한 코멘트를 달아주셨다. 바쁘실 때는 확인 정도만 하신 것이 느껴지는 사인만 덩그러니 있었지만 멘트를 달아주실 때는 생각을 확장시킬 수 있도록 질문을 하나씩 달아놓으시면서 이런 생각은 어떤지 물어보셨다. 추가 질문에 일일이 생각해 봤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생각을 글로 써보는 첫 경험을 해본 것이 지금 에세이를 쓰게 만든 계기 중 하나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선생님은 간단한 시 정도는 몇 개 외워두면 좋다고 하셨다. 그때 외운 시 중 하나가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이다. 3행 구조에 2문장으로 된 간단한 시지만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는지 묻는 질문에 큰 울림을 받았다. 인생을 얼마 살지 않은 중학교 1학년이었지만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선생님께서 알려주시는 시만이라도 마음에 새겨보자 노력했다.


학년이 올라가고 담임 선생님이 바뀌고 국어 담당 선생님도 바뀌었다. 1학년때 담임선생님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하셨다. 그 이후 소식을 듣기 어려워졌다. 이때부터는 교과서와 보충교재 등으로 열심히 암기하는 전형적인 대한민국 교육을 받았다. 6년간 감성 없이 메마른 중·고등학교를 다니다 보니 시를 보고 가졌던 따뜻한 마음도 사라져 갔다. 수능을 위해서 고전문학, 현대문학의 내용과 구조를 정해진 답대로 외웠다. 화자의 심정, 단어에 담긴 의미, 동시대 작품의 특징 등을 외우면서 내 생각을 표현할 기회는 없었다. 이런 지겨운 공부를 언제까지 해야 하나 싶었는데 어느새 30대가 훌쩍 지난 지금을 맞이했다. 그동안 내 마음을 표현하기가 더욱 서툴러지고 힘들어졌지만 에세이 쓰기라는 방법을 통해 한층 더 성장해가고 있다.


에세이를 쓰면서 만나게 된 작가님이 '포토에세이 만들기'에 이어 '시 창작 교실' 인원 모집 광고를 보내주시면서 참여를 권하셨다. 너무 오랜만에 보는 '시'라는 단어. 여러 가지 종류의 책을 읽는 것을 좋아했지만 시라는 장르는 거리감이 있었다. 아예 안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몇 권의 시집 중에서 그 시의 감성에 공감한 건 1~2권 정도다. 나머지는 '시를 쓴 분이 이렇게 표현한 이유가 있을 텐데 왜 이렇게 어렵게 표현했을까?' 하는 의문이 커지고 답이 나오지 않으니 답답한 느낌이었다. '이 시에서 나오는 단어의 의미'같이 답이 이미 나와있는 수능 문제가 아니었다. 결국 시를 이해하는 건 쉽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책장에 꽂아둔 시집이 끝까지 읽은 시집보다 더 많다. 시에 대해서 가진 생각이 그러했기에 이번 시 창작 교실은 내 생각의 틀을 깨부수는 기회가 될 것 같았다. 처음 무언가를 배우는데 모르는 사람들과 만난다는 건 겁쟁이 같은 내 성향상 늘 두려움을 동반한다. 그래도 해보기로 했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 시간들을 보내고 나면 또 한 번 성장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2주에 한 번 열리는 교실이었다. 수업 인도자는 조 시인님이셨다. 부끄럽지만 처음 들어보는 시인님이셔서 몇 개의 시를 찾아보긴 했으나 이번에도 어렵다고 느끼기는 마찬가지였다. 잘하려고 가는 것이 아니라 배우러 간다는 마음으로 참석하여 시인님의 이야기를 들었다.


작은 체구지만 무시 못할 기운이 느껴지는 분이셨다. 내 느낌이 맞았는지 본인을 소개하시면서 시인이라는 사람들은 호락호락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강하다고 말씀하시면서 시가 내 안에 있으면 여유와 힘이 있다고 하셨다. 무슨 힘일까. 시를 쓰다 보면 '어떻게 나한테서 이런 문장이 나왔지?' 하는 문구가 있을 것이라 하셨다. 그것이 촌철살인의 문구일 수도 있고 무의식을 깨우는 문구일 수도 있다. 그 문구가 나침반 같이 평생의 삶을 좌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은 시인님의 말씀에 나는 문득 안도현의 시를 떠올렸다.


'맞아, 나에게도 저렇게 마음에 남아있는 시가 있네'


이 시가 내 인생의 방향을 정했다는 생각은 과장일 수 있지만 적어도 어느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자 하는 마음은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어떠한 영향이 분명히 있었기에 내가 어긋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던 것이 아닐까. 시인님은 이 주제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마무리하셨다.


"내 안의 아름답고 절묘한 구절,

힘든일을 겪더라도 헤쳐 나올 수 있는 동아줄 같은 구절을

한 두 개라도 쓰길 바랍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시인들은 강했다. 일제강점기 시대를 살았던 이육사, 윤동주 시인은 무장시위를 한 것은 아니지만 펜을 들고 끊임없는 참회와 성찰로 저항했던 인물들이다. 많은 문인들이 절필하거나 친일파로 변절했지만 그들은 옥에 갇히면서도 조국에 대한 마음은 절대 변하지 않았다. 수많은 고문과 핍박 속에서도 마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시인이기에, 마음 속에 누구보다도 가득했던 시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일까. 조은 시인님이 이야기하신 마음의 힘을 그들에게서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내 안에 어떤 시가 채워질지 모르겠지만 확신이 생긴다.

왜 그런지 모르게 느꼈던 성장의 느낌이 이것 때문이었나 보다.

마음의 강함. 내가 추구하는 삶의 태도이기에 앞으로 시 창작을 배우면서 강해질 내 모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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