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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푸름 Apr 25. 2023

힘든 날을 이겨내기 위해 쓴 글

저번주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여자친구와 연락이 거의 닿질 않았다.

목요일 이후 되어서야 조금씩 연락이 되었다.


주말에 서울을 같이 다녀왔고 일정을 마치고 원주에 도착했을 때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해서 피곤한가보다 생각했다. 여자친구는 체력을 기르기 위해 지난 몇 주간의 러닝을 꾸준히 했다. 열심히 하는 건 좋았는데 근육과 관절이 많이 아프다고 했다. 이로 인한 피곤함이 누적되어 체력적인 문제가 터진 것 같았다.


하지만 목요일에 여자친구와 이야기해 보니 체력적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나갈 미래가 갑갑하고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에 현타가 왔다고 했다. 어떻게 계획을 세워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감이 잡히지 않는다고 했다. 현실적이고 문제에 대한 확실한 대책이 있어야 하는 여자친구에게 이러한 고민은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다음날이 되었다.

오늘도 여자친구에게 모닝콜을 하고 점심때 연락했다. 여자친구는 여전히 힘이 없었고 연락을 계속할 에너지가 없어 보였다. 생각하는 것도 있고 병원일도 힘드니까, 피곤하니까.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아니, 이해해야 했다.


어찌 보면 연락이 안 되던 월요일부터 내 속은 타들어 갔던 것 같다.

점심에도 연락이 안 되었고 퇴근하고 나서도 연락할 수 없었다. 나중에 연락이 와서 피곤해서 잔다고 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여자친구는 힘이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편히 잘 쉴 수 있도록 내가 너무 연락에 집착하지 않아야 했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모습에 나는 조바심이 났다. 몸이 피곤한 것은 표면적인 이유고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속은 계속 까맣게 타들어갔고 일상의 의욕도 없어졌다. 그리고 그 이유를 목요일이 되어서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잠깐 내 상황을 이야기하면 직장에서 번아웃이 왔다.


내가 없으면 안 되는지 사소한 일도 다 나를 찾는 것 같았다. 윗사람들은 사무실에 대뜸 방문해서 판매 중인 약품 박스 포장을 바꿔야 한다면서 전에는 이렇게 했는데 왜 지금은 그렇게 안 하냐고 지적을 했다. 그 뒤로도 한참 뭐라고 이야기했는데 그 다음부터는 목소리도 듣기 싫었는지 귀를 막아버렸다. 왜 우리 과에서 약품 박스 포장 관련 업무를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불합리한 업무 지시였는데 실장님은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위에서 하라는 대로 하는 모습도 답답해 보였다.


이번 한 번의 일이 아니었다. 우리 부서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전부터 했으니까 그냥 해라는 식의 업무는 부서를 총괄해서 관리하는 본인의 업무에 소홀한 거 아닌가 싶었다. 총무과에서 해야 할 일을 우리가 하는데 그런 부분은 아무 말도 안 하고 조금이라도 불편한 무언가가 생기면 상하관계를 이용해서 바꾸려고 한다. '절대복종' 그것이 이 조직의 기본 업무 기조이다.


휴가도 마음대로 못 간다. 부서 상황 때문에 내가 쉬고 싶을 때 쉬지 못하고 눈치 보고 쉬어야 한다. 복지 따윈 개나 줘버린 것 같다. 최근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2달간 휴가를 가지 못했다. 보통 때라면 2달 정도 못 가는 건 참았을 것 같은데 번아웃이 온 상태라 버티기가 힘들었다. 이런 상황에 놓이다 보니 항상 화가 속에 가득해졌다. 정당하게 지시하는 업무조차도 짜증이 났다.




이런 상황에서 여자친구는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쳐있었다. 내가 힘을 줘야 하는데 해줄 수 있는 게 '우린 잘해나갈 거야'라는 이상적인 말 밖에 없는 것이 슬펐다. 입구 끝까지 손으로 꾹꾹 밀어내는 거의 다 쓴 치약 같이 나도 짜내봤지만 그런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여자친구의 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하려면 내 직장이 정규직 같이 안정적이어야 하고 결혼 준비, 집 등 앞으로 해결해야 하는 숙제에 드는 비용을 준비해야 한다.


부모님들과의 만남도 속히 진행되어야 했다. 재작년 말에 뵙고 이후에 약속을 잡질 않았다. 불안정한 내 직장 환경 때문에 우리의 미래를 쉽사리 그리기가 어려운 탓이었다. 어디로 직장을 옮길지, 어떤 일을 할지 확실치 않았고 서로의 부모님이 가지시는 기대를 만족시킬 수 있을지 걱정되었다.


만약 부모님께서 여러 가지 궁금한 것들을 여쭤보셨을 때 납득할 수 있게 대답하고 싶은데 자신이 없다. 당당하게 여자친구 부모님 앞에서 '저는 앞으로 이런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잘 살아보겠습니다!' 외치고 싶은데 말이다. 결국 '나 때문에, 내가 아니었으면, 내가 좀 더 잘했으면...'이라는 말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그래서 최근에 마음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속이 아프고 타들어가니 육체적으로도 힘이 없었다. 의욕이 없이 공격성만 늘어서 짜증이 가득하다.

때마침 아침에 매일 듣던 라디오의 진행자 장성규님이 마지막 방송을 했다. 끝부분에 장성규님의 가족들 음성메시지가 나오자 장성규님이 눈물을 흘리셨는데 그 핑계로 덩달아 나도 펑펑 울고 싶었다.


나는 힘들다. 본디 내 감정에 둔하기에 힘든지도 모르고 그냥 달려왔지만 이젠 인정해줘야 한다.

인정해주기 위해서 이런 글을 적어 정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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