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상담 일기(12)
1. 꼭 답이 2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상담사님 : OOO님이 부모님이 정하신대로 살아갔어도, 당시에 내가 내 인생을 살아가야지라고 하면서 다른 길을 갔어도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어떤 삶을 살던지 따라왔을 질문들이에요.
그렇다면, 그 질문은 중요한 질문일까요? 중요하지 않은 질문일까요?
나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따라오는 질문이면 답을 반드시 내려야 하는 질문이기에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였다. 만약 A를 선택했을 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 B를 선택하면 할 수 없다고 생각이 든다면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는 결정은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두 선택에 모두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나온다면 그 질문은 선택에 영향을 주는 질문이 아니게 된다. 어떤 선택을 하던지 기본적으로 하게 될 질문이니 말이다. 결국 고려할 필요가 없는 무의미한 질문이 된다는 것이다.
그 질문을 제쳐두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질문을 했을 때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보기로 했다. 팽팽했던 줄다리기의 끝이 보이는 듯, 두 선택 중 어느 한쪽의 힘이 스르르 빠지는 듯했다. 내 능력에 대한 불신을 제외하니 답이 명확하게 나왔다. 나는 두 번째,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새로운 길을 갈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첫 번째 부모님이 정한 목표를 두고 최선을 다하는 건 지금 내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변화를 좋아하지 않고 하고 있는 것 그대로 하는 안주하는 느낌. 이 모습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변화가 필요한 상황에서 나는 회피하거나 움직이지 않았다. 두 번째 선택을 통해 변화된 나를 느끼고 싶었다. 능동적인 결정을 내리는 과정을 통해 내 삶에 적극적으로 관여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정적이고 변화하는데 상당한 에너지를 쓸 뿐만 아니라 힘들어하니까 그런 부분을 완화시켜 주기를 기대했다.
상담사님은 내 대답이 재밌는 부분이 있다고 하셨다. 두 번째 방향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것 중 어떤 곳에 있어도 살아남을 수 있는 '적응력'을 이야기했었다. 보통 사람들은 2가지 선택지가 주어지면 한 가지를 선택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나는 한 가지를 선택했는데도 다른 것도 버리지 않고 밸런스를 맞춰가는 삶을 살아가는 방향을 얘기한 것은 나만의 '적응력'에 대해서 정의를 내리고 창의적으로 생각한 것이라 하셨다.
2.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일 vs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일
현재로 돌아와서 보면 지금 나에게 주어진 삶의 가장 큰 과제는 이직이다. 그러면 어느 곳으로 가면 내가 더 행복할 수 있는 '두 번째 방향'이 될까? 여기서 나는 또 다른 문제에 부딪혔다. 어디로 가고 싶은지, 어디에서 일을 해보고 싶은지 그런 부분을 충분히 찾아보질 않았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눈앞에서 찾은 것이 전부였다. 30대 초반이라 아직 어디던지 쓰임 받지 않을까 하는 자신이 과거에는 있었지만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 지 오래였다. 갓 대학 졸업한 청년들도 취업하기 쉽지 않은데 사기업에서 이직 자리를 찾는 것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였다.
결국 나이를 보지 않고 정량적인 스펙과 시험을 통해 지원가능한 공기업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 외의 길을 찾을 여유가 없었다. 경제적 안정감 대한 불안감과 지금 만나고 있는 여자친구와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머릿속이 가득 찬 나에게 '진짜 하고 싶은 무언가'를 찾기 위한 시간은 낭비였다.
상담 중에 상담사님께서 HRD 쪽으로 일해보는 것도 성향상 좋을 것 같다고 하신 적이 있다. 그 얘기를 듣고 나서야 이런 길로도 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몰랐다기보다 관심이 없었다. 내가 갈 길이 아니니까 관심이 가지 않는 건 당연했고 그 분야를 볼 시간도 없었다. 보통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어려워하는 편인데 이번에 상담사님의 말을 듣고는 '이런 길도 있었구나'하는 생각이 컸다. 부끄럽지만 아는 분야가 별로 없어서 길을 모르는 것이 내 현실이었다. 만일 아는 길이 많았으면 지금과는 다른 선택을 했을 수도 있다.
상담사님은 지난 상담들을 통해 지금 나의 생각을 읽고 계셨다. 나의 환경을 위한 경제적인 안정성을 위해서, 결혼까지도 생각을 하니 이직에 대한 마음이 급하다는 것을 파악하셨다. '내가 안정적인 직업을 가져야 여자친구의 결혼 상대자로 떳떳해질 수 있다'라는 생각을 하는 거 아니냐는 말씀에 뜨끔했다. 되도록 나를 중심에 두고 나를 위한 이직을 생각하려 했는데 은연중에 그 중심이 타인에게로 옮겨진 생각이 드러난 것 같았다.
상담사님 : 그런 상태에서 이직을 하게 되면 나는 계속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계속 충족시키고 누군가가 만든 어떤 이상에 의해 구축되는 사람으로 계속 살아야 되거든요. 그게 나쁜 건 아니에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그렇게 덤덤하게 이렇게 살아가겠지만 '내가 과연 이걸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계속 쫓아올 거예요. 또 좌절을 느끼고 할 수 있을까 되뇌고... 그런 인생을 살아갈 거란 말이에요.
그런데 아까 두 번째 방향 이야기 할 때 OOO님은 정말 딴 사람이었거든요.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따라오긴 했지만 그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살기 위한 방법을 찾을 거라고 이야기하는 건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었어요.
어떤 선택을 하던지 어차피 같은 질문이 따라온다면 마음이 뜨거워지는 선택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시면서 여러 가지 진로에 대한 이야기들을 해주셨다. 이과 쪽이니까 IT 계열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배울 수 있는 6개월짜리 직업 훈련 과정을 이수한다던지, HR 쪽 대학원에 가서 관련 업무를 해본다던지, 기업 안에서 인사 노무 관련 분쟁 해결에 관심이 있으면 노무사 공부를 해서 자격증을 딴다던지, 상담 심리사가 되기 위해 심리상담 대학원에 간다던지 등등 다양한 분야에 몸 담을 기회가 많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셨다.
상담사님도 본인의 직업이 심리 상담사라고 해서 그것에만 머물러 있을 생각이 없다고 했다. 앞으로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 너무 궁금하다면서 지금 관심 있는 분야가 일러스트 쪽인데 이번에 온라인 교육 과정을 신청했다고 했다. 그림에는 잼병이지만 그리는 게 재밌으니까 상관없다고 하셨다. 그걸로 힐링에 관한 캐릭터를 만들어 스마트 스토어를 개설해 상품을 만들고 독립출판사를 차려서 책도 출판할까 생각하셨다. 자신은 한 직업을 갖고 있다고 해서 자신의 커리어가 그걸로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강조하시면서.
3. 배는 한 곳으로만 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상담사님 : OOO님이 타고 있는 배(나의 삶)는요, 서울에만 가지 않아요. 캐나다도 가고 미국도 가고 브라질도 갈 거예요. 여러 나라를 갈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커리어나 직업에 대한 발전계획을 한 가지로 딱 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끊임없이 하고 싶은 일에 대한 호기심, 무엇을 하면 내가 더 재미있게 즐겁게 살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은 삶의 의욕을 불러일으킨다. 내가 두 번째 선택을 생각한 것만으로도 신났던 것처럼 말이다. 먹고사는 거 걱정돼서 그거를 쫓아간다고 내 직업이 더 나아지거나 좋아지거나 하진 않는다며 내가 흥미와 재미를 느끼고 날개를 펼칠 수 있는 분야를 생각해서 검색해 본 결과를 가지고 다음에 이야기해 보기로 하고 상담을 마무리했다.
상담 후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했다.
- 내가 흥미를 느끼는 분야가 무엇이더라?
- 어릴 적 꿈꿨던 미래 중에 지금도 가슴 한 켠에 품고 있는 것이 있을까?
- 무엇이 나를 가슴 뛰게 만드는 일일까?
- 지금 내가 무엇에 흥미 있는지 몰라도 일단 해보고 알아가면 되지 않을까?
인생의 방향을 고정하면 편할 줄 알았는데 방향이 틀어지지 않도록 방향키를 잡고 버티고 애쓰다보니 많은 힘이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나의 고집이 가득 담긴 항해에도 불구하고 내 삶의 방향키는 언제든지, 어디로 가든지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암초를 만나면 유연하게 피해 가면 되고 그 과정에서 만난 새로운 길이 또 다른 목표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이제야 조금씩 와닿는다. 배가 이상 없이 잘 움직여서 가고 싶은 대로 갈 수 있도록, 기름도 가득 채우고 내부 관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상담을 통해 배의 설계도를 명확히 알아가면서 배의 구조를 이해하고 문제점을 보완해나가고 있다. 나는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함으로 다가오는 기분 좋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