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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석 Jun 10. 2019

선생님과 매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두어 달이 지나 중간고사 시험을 보게 되었다. 아이들은 모두 시험감독 선생님을 알고 싶어 안달을 했다. 교무실만 가면 알 수 있는 것을 왜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인가는 생각지도 않고 그러면 내가 한번 알아보지 뭐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교무실로 갔다. 학년, 반별로 칠판에 적혀있는 감독 선생님 명단을 적고 있는데 갑자기 한 선생님이 ‘야, 거기 있는 두 놈 이리 온나’ 하는 것이었다. 2학년 선배 한 사람도 옆에서 명단을 적고 있었던 것이다. 

 “너들 거서 뭐하고 있었노?” 

 2학년 선배가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겁도 없이 내가 선생님께 대답을 했다.

 “시험 감독선생님 명단 적고 있었는데요.”

 “그래? 감독선생님 명단은 적어서 뭐 할라꼬?”

 “그냥 친구들이 궁금하다 캐서요.”

 “야 그기 말이 되나? 감독 선생님 명단은 컨닝구 할라꼬 적은 기지?” 

 “아입니다. 전 입학한지 얼마 안 되가 선생님 이름도 잘 모르는데요.”

 “거짓말하지 말고 이따 시험 끝나고 체육실로 온나. 알았지?” 그리고는 가슴에 붙은 명찰을 확 잡아 뜯는 것이었다. 체육선생이구나 죽었다 싶었다.

 불안 속에 시험을 어떻게 끝내는지도 모르게 끝내고 잔뜩 겁에 질려 체육실로 갔다. 체육실에는 짝꿍 친구가 따라 가 주었다. 

 “다시 한 번 묻는데 솔직히 말하만 내 용서할끼다. 감독 선생님 명단을 적은 거는 컨닝구 할라꼬 그런 거 맞지?” 

 선배와 내가 동시에 아니라고 하자 선생님은 선배부터 엎드리게 하고는 들고 있던 몽둥이로 엉덩짝을 사정없이 치는 것이었다. 온 몸을 비틀며 끙끙거리는 선배의 엉덩짝을 다섯 대나 치고 나서 선생님은 다시 물었다. 

 “컨닝구 할라꼬 한 거 맞지?” 

선배는 머뭇거리며 그렇다고 말했다. 

 “그래 솔직해야지. 사람은 솔직해야 하는 기야. 넌 옆에서 기다리고 있그라. 니 여 와 엎드리라.”

선생님은 내게도 똑같이 엉덩짝 다섯 대를 치고는 물었다. 

 ‘컨닝구 할라꼬 적은 거 맞지?’ 

 “아입니다. 전 1학년이라 선생님 이름도 잘 모릅니다. 다른 아이들이 궁금하다 케서요.” 

 “그라만 다른 놈들은 와 선생님 이름을 알라 켔겠노? 가들도 선생님 이름을 모를 낀데 ” 

 “중학교에서 동일계 진학한 아이들은 선생님 이름을 알지 않겠습니까?”

 “이 놈이 아직 정신을 덜 차맀구나. 다시 엎드리라.”

선생님은 또 엉덩짝을 사정보지 않고 팼다. 그러곤 컨닝 하려고 한 거 맞지 하고 물었고 난 아니라고 했다. 이러기를 몇 차례, 이제는 진실이 문제가 아니었다. 서로간의 자존심 싸움이었다. 

 ‘내가 컨닝 할라 칸 기 아이라는 걸 이 선생도 알 끼다. 내한테 지기 싫어가 이러는 기다. 정직하라꼬 가르쳐야 할 선생이 학생한테 거짓말을 시켜서라도 이기야 한다고 생각하는 기다.’ 이런 선생한테는 끝까지 오기로라도 버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선생은 옆에서 떨며 지켜보고 있는 선배를 가도 좋다고 했다. 사인일 것이었다. 

‘거짓말이라도 제발 그랬다 케라 임마야. 그래야 나도 널 그만 때리지 이 미련한 놈아.’ 이런 생각을 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기를 몇 차례. 더는 엉덩이에 떨어지는 매를 견딜 수가 없었다. 마침내 컨닝 하려고 그랬다고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진작 그랬어야지 임마. 사람은 솔직해야 하는 기다. 알겠나?”

 거짓말을 그토록 강요하고는 솔직 하라니? 체육실 문을 열고 나오는데 북받치는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너무 억울하고 너무 서럽고 너무 분했다.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엉엉 울었다. 맞은 자리가 아파서가 아니었다. 매 맞은 자리는 정작 아프지도 않았다. 매에 이기지 못한 자신이 너무 비겁하고 너무 초라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자신이 너무 미웠다. 체육실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는 친구 얼굴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내 책가방을 받아 준 친구보기가 너무 창피하고 너무 부끄러웠다. 

 장미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정원 옆 벤치에 앉아서 어깨를 들썩이며 한참을 울었다. 울면서도 정원에 무더기로 피어 있는 붉은 장미꽃이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로 내 컨닝 할라꼬 그런거 아이데이. 내가 선생 이름도 잘 모르는데.” 

 “나도 안다. 선생이 니 한테 안 질라꼬 그랬을 끼다.”

 집에 가서 옷을 벗는데 바지가 엉덩이에 붙어 떨어지지를 않았다. 팬티는 물론 바지에까지 검게 피가 엉겨 붙어 있었다. 그때까지 모르고 있던 엉덩이가 뜨끔거리고 쑤시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약국에 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약은 많이 비쌀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설움이, 서러움이 몰아쳤지만 그래도 울음을 꾹꾹 눌러 참았다.  

   

 키가 작은 수학 선생님이 있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매로 악명을 떨치던 선생님이었다. 그 선생님 시간에는 모두 매 여섯 대는 각오해야 했다. 선생님은 무작위로 질문을 해 한 명이라도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같은 줄에 앉은 아이들 모두의 손바닥을 가지고 다니는 매로 여섯 대씩 때렸다. 그 줄은 가로가 되기도 하고 세로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대각선이 되기도 했다.  

 “야 이놈들아 이래 가지고 ○○여고 허 창자가 너들을 좋다 카겠나?”

하며 선생님은 웃지도 않고 손바닥을 때렸다.  

 집이 몹시 어려웠던, 성적이 특별하게 뛰어나지는 않았던 한 친구가 2학년 기말고사에서 학년 일등을 했다. 누구든 노력을 하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선생님들마다 칭찬을 하며 우리를 독려했다.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 친구가 사전에 시험지를 훔쳐보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발각될 때까지는 선생님들의 그 친구 칭찬은 계속되었다. 

 그 친구는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갈 수밖에 없었다. 집이 가난해 전학 갈 돈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 수학선생님이 그 친구의 전학비용 일체를 대주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소문은 나중에 아이들 사이에서는 기정사실이 되었다. 아이들은 그 선생님이 진정한 교육자라고 수군댔다. 그러나 아무도 그 선생님 앞에서는 그 말을 하지 못했다. 그러면 선생님은 분명 ‘야 임마 누가 그런 헛소리를 지껄이드노?’ 하며 손바닥 여섯 대를 때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후에도 선생님의 손바닥 여섯 대는 계속되었지만 아이들은 더 이상 그 선생님을 비난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다. 그 선생님은 이후에 모교 교장선생님이 되셨지만 한 번도 찾아뵙지를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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