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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석 Sep 20. 2019

위문품 창고를 털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 오면 위문편지와 위문품이 쇄도한다. 위문편지는 고등학생 편지도 있지만 코흘리개 국민학생들 것이 대부분이었다. 위문편지를 쓰고 싶은 마음이 없지만 선생님이 쓰라고 해 어쩔 수 없이 편지를 쓴다고 솔직한 심정을 적은 위문 아닌 위문편지를 보낸 중학생들도 있었다. 쓸 말이 없어 대중가요 가사를 적어 보낸다는 학생도 상당수였다. 고등학생들은 그마저도 쓰기 싫은지 여고생들 편지는 찾기가 쉽지 않았다. 위문편지가 워낙 많이 오다 보니 병사들은 남학생들 편지는 읽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학교 다닐 때 쓰기 싫은 위문편지를 매년 써야 했던 것을 뒤늦게 후회하기도 했다.

 그래도 국민학생 편지는 진솔하고 귀여운 면이 있었다. 위문편지를 보낸 서울의 한 국민학교 여학생에게 답장을 보냈다가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진정성이 보이는 편지에 답장을 보냈는데 의외로 또 답장을 받게 되면서였다. 몇 차례 편지를 주고받다가 사진까지 주고받는 사이로 발전을 하게 되어 휴가를 나가 대학 교정에서 친구들과 찍은 사진 가운데 나 혼자만 찍힌 사진을 보냈다. 공군 아저씨들이 멋있는데 아저씨는 공군이 아닌 것 같은데도 멋있다는 답장이 왔다. 대학 다니는 언니가 아주 깍쟁이라며 언니 흉을 자주 보기도 했다. 휴가를 가면서 서울 작은 집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는데 휴가 귀대하는 날 귀대 준비를 하고 있던 중에 그 아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부대로 가는 차 시간이 촉박할 거 같아 전화를 전해주는 작은 어머니께 순간적으로 없다고 하라고 했다. 그 이후로 그 아이한테서는 소식이 끊어졌다. 수화기를 통해 없다고 해달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어린 마음에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까 많이 미안하고 많이 마음 아팠다. 변명을 하는 편지를 쓰기도 염치없는 짓 같아 그만두었다.

 철책근무자들에게 오는 크리스마스 위문품은 아주 푸짐했고 종류도 다양했다. 대개 위문품은 비누나 치약 칫솔 등 군에서 부족하지 않게 나오는 실망스러운 것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사탕이나 과자 같은 아주 반갑고 환영을 받는 것들도 적지 않았다. 우리 부대는 부산시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어서 부산시가 보낸 위문품을 매년 받았는데 부산시 위문품은 양도 많았고 종류도 다양해 병사들의 큰 환영을 받았다.

 페바 부대에서 근무를 하고 있던 때였다. 부산시로부터 받은 크리스마스 위문품을 다 써 갈 무렵 대대 사역병으로 차출되었던 한 병사가 대대 창고에 위문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더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은 행정반 누군가가 대대 창고를 털자고 농담 비슷한 말을 꺼냈다. 그러자 기다렸던 듯 진짜로 창고를 털자고 누군가가 말을 거들었다. 창고를 턴다는 게 겁도 나고 들키면 모두가 영창을 갈 일이었지만 그만두자는 말은 누구도 꺼내지 못하는 분위기로 점차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농담이려니 생각했던 것이 진짜가 되고만 것이다. 정말 창고를 턴다는 데 이르자 겁이 났지만 고참으로서 빠지겠다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창고 문 자물쇠를 어떻게 따느냐고 그만두었으면 하는 마음을 에둘러 말했지만 한 병사가 창고 문 따는 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5초도 걸리지 않고 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창고를 따다가 걸리거나 사후 창고가 털린 걸 알게 되면 범인 색출에 혈안이 될 텐데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이냐고 하자 창고가 털려도 절대 문제 삼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이었다. 창고에 위문품 자루가 가득 쌓여 있다면 몇 개를 가지고 나와도 표시도 나지 않을 것이고 설령 도둑맞은 것을 발견했다고 해도 병사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할 것을 나눠주지 않고 착복했다는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 쉬쉬 하면서 덮을 것이라는 거였다. 

 거사 날을 잡고 모두 잠든 자정 무렵을 거사 시간으로 정했다. 졸병들은 빠지고 고참 셋이서 거사를 단행하기로 했다. 문 따는 건 걱정하지 말라던 병사가 자물쇠를 순식간에 열었다. 감탄할 시간도 없이 조용하게 창고 문을 닫고 플래시로 창고 안을 비추자 창고 가득 위문품 자루가 보였다. 위문품 자루를 잔뜩 들고 나와도 표시도 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들킬 것에 대비해 자루를 몇 개만 들고 조용히 빠져나왔다.

 창고를 털고 불안한 며칠을 보냈지만 부대는 조용하기만 했다. 위문품과 관련해서는 어떠한 소문도 들리지 않았다. 창고에 도둑이 들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것 같았다. 그들이 정말 몰랐을까 아니면 알고도 시끄러워질까 모른 체했을까? 장난으로만 치부하기에는 너무 큰 도둑질이었지만 아무런 일도 없이 넘어가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그래도 거사에 참여한 행정반 어느 누구도 제대할 때까지 창고 턴 사실은 한 마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도둑질이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 결실에 비해 뒤 끝이 너무 크다는 사실을 모두 크게 절감했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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