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크골프를 아십니까?"
시장 시절 어떤 분이 불쑥 찾아와 물은 말입니다. 고양시에 파크골프장을 만들어 보지 않겠느냐며 찾아온 분이었습니다. 클럽 하나와 공 하나만 가지고 잔디밭에서 하는 운동이라면서 골프처럼 큰돈이 드는 운동도 아니고 아이들이나 노인, 장애인들도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는 운동이라고 하면서 한번 만들어 보지 않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들어보는 운동이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 손녀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운동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했습니다. 지체장애인까지 무리 없이 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말에는 다소 과장이 섞였다고 생각하기도 했었지요.
일본에 파크골프가 번성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관련 과장들과 직원 몇 명을 데리고 일본을 찾기로 했습니다. 몇 군데 파크골프장을 방문해 운영 실태를 알아보고 파크골프가 실제 지자체와 주민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경기 규칙은 골프와 비슷했습니다. 18홀이 기준이지만 9홀이 가능한 것도 골프와 같았습니다. 한 개의 클럽과 공, 신발만 갖추면 준비는 끝이었습니다. 클럽이나 공 등 용품은 골프장에서 빌릴 수도 있었습니다. 공은 야구공보다 조금 작은 크기로 재질은 플라스틱인 것 같았습니다. 캐주얼한 복장과 모자 외에는 달리 준비할 것도 없었습니다.
티 박스에서 친 공을 그린에 올린 다음 홀에 집어넣는 것도 골프와 같습니다. 공이 큰 만큼 홀은 골프보다 훨씬 커 홀에 공을 집어넣기는 골프보다는 쉬을 것 같았습니다.
일본의 파크골프장 운영자들은 △삼대가 함께 할 수 있어 할아버지와 손자가 쉽게 친해질 수 있다. △장애인도 어려움 없이 운동을 할 수 있다 △노인들의 건강이 좋아져 지자체가 지원하는 의료지원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을 하면서 많은 노인들이 도시락을 싸들고 와 하루 종일 파크골프장에서 시간을 보내며 논다는 말도 빠뜨리지 않았습니다. 눈이 많은 북해도에서는 겨울에는 다진 눈 위에서까지 파크골프를 즐길 정도로 재미있는 운동이라고도 했습니다. 넓은 땅을 필요로 하지도 않고 공원 잔디밭에도 설치할 수 있기 때문에 만들기가 아주 쉬워 일본에는 전국에 수천 개의 파크골프장이 운영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파크골프장을 방문하는 곳마다 골프장 측에서는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면서 꼭 실제 경기를 해볼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경기를 하고 있는 노인 분들께 양해를 구하고 기다리지 않고 바로 운동을 할 수 있게 배려를 해주기까지 하면서 돈도 받지 않더라고요.
파크골프를 하면서 경기에 재미를 더하기 위해 직원들과 돈내기를 하자고 했지요. 마지못해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경기를 하라는 뜻이었지요. 골프를 한 번도 쳐보지 않은 직원들이 오랫동안 골프를 친 나를 당할 수가 있나요. 돈을 많이 잃을 수밖에요. 돈을 잃고는 얼굴이 벌게지는 직원도 있더라고요. 아무리 돈에 궁해도 시장이 직원들 돈을 따먹을 수야 있나요. 마지막 날 돈을 다 돌려주자 얼굴색이 환해지더라고요. 내가 돈을 돌려주리라 기대를 하지 않았던가 봅니다.
귀국하자 우선 파크골프장을 쉽게 만들 수 있는 공원부터 파크골프장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화정동 공원과 정발산 배수지, 중산공원 등에 아쉽긴 하지만 비슷하게 흉내를 내서 우선 9홀짜리 파크골프장을 만들었답니다. 그냥 공원의 잔디에 홀을 만들고 깃발을 꽂고 홀 간 경계표시를 하니까 끝이었습니다. 금세 어르신들이 규칙을 배우고 회원을 모집하며 마니아를 늘려가는 것이었습니다. 어르신들이 참 좋아했습니다.
파크골프 회원들이 늘어나는 모습을 보면서 일산 대화동 자연녹지 구역에 제대로 된 18홀짜리 파크골프장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자연녹지 지역이라 운동시설을 지으려면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했는데 의회 승인과정에 브레이크가 걸렸습니다. 대화동 지역 시의원이 반대 의견을 고집하면ㅅ 다른 지역 시의원까지 동조를 한 것이었습니다. 시의원의 파크골프장 반대 이유는 일본 좋은 일만 시킨다는 것이었습니다. 파크골프가 그렇게 재미있다면 시민들이 파크골프장을 곳곳에 지어 달라고 아우성일 테고 그러면 파크골프 종주국이자 파크골프 산업이 가장 발달해 있을 일본으로부터 파크골프 용품을 전부 수입해야 할 테니 일본 좋은 일만 한다 뭐 그런 논리였습니다. ‘축구 발상지는 영국이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영국에서 축구 용품을 사 오느냐? 오히려 우리나라 축구 관련 제품이 국제시장을 석권하고 있지 않느냐’는 논리로 반박을 했지만 시의원들의 반대를 극복하지는 못했습니다.
이후 지방선거에서 그 시의원이 낙선을 하여 파크 골프장 건설은 별 어려움 없이 추진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대화동 야구장 옆에 만들어진 파크골프장이 그것입니다. 이 파크골프장은 전국의 파크골프 마니아들로부터 국내 최고 골프장이라는 찬사를 듣습니다. 고양시 파크골프 동호인들은 정규 파크골프장을 몇 군데 더 가졌으면 하는 소망을 떨치지 못하지만 장소 확보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전국대회가 가끔 열리는 이곳에서는 대회가 없을 때는 선수들뿐 아니라 일반 파크골프 마니아들의 명소가 되고 있습니다. 휠체어를 타고도 늘 언더파를 치는 장애인이 경기도 대표선수로 뽑히지 못해 안타까워하던데 지금쯤은 대표선수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다음번에는 꼭 대표가 되겠다고 밝게 웃으며 굳게 약속을 했었는데...
파크골프는 아직까지도 이름조차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일 정도로 아주 생소한 운동입니다. 파크골프장이 많이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국 곳곳의 유휴지나 빈 땅에 파크골프장이 많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보지만 아직은 마음뿐입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아들, 딸들과 때로는 손자, 손녀들과 정겹게 필드를 거닐고 장애인들이, 때로는 비장애인들과 어울려 왁자하게 떠들며 골프채를 휘두르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흐뭇하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