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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석 Jan 30. 2020

나라 잃은 백성의 설움을 알까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아버지의 당숙 되시는 어른이 일본에 사셨다고 합니다. 어느 해 일본에 아주 큰 지진이 일어나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쳐 민심이 몹시 흉흉해졌다고 합니다. 그러자 일본은 민심수습책으로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풀어 사람을 죽이려 한다고 소문을 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이에 격분한 일본 사람들은 우르르 몰려다니며 조선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고 거리에 나갔던 그 어른은 일본 사람들에게 쫓기기 시작했답니다. 도망을 가다가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자 저수지에 뛰어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갈대를 꺾어 입에 물고 물속에 꼼짝하지 않고 밤새 숨어 있었다고 합니다. 일본 사람들이 가지 않고 계속 저수지 주변을 맴돌며 찾고 있어 물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날이 밝을 무렵 찾는 걸 포기한 일본 사람들이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을 물속에 그대로 있다가 물 밖으로 나왔다고 합니다. 물에서 나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온 몸에 거머리가 닥지닥지 붙어 피를 빨아먹고 있었다고 합니다. 

몸에 붙은 거머리를 다 떼어내고 그 길로 도망을 쳐 밀항선을 타고 천신만고 끝에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고향에 돌아오자마자 자리에 누워 시름시름 앓다가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거머리에게 피를 너무 많이 빨렸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어른들이 말했다고 합니다.

식민지민의 아픈 가족사입니다. 아마 관동대지진 때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할머니가 한 말씀을 거들었습니다.

“왜정 말기 때는 순사들이 동네 집집을 다 뒤지고 다녔단다. 놋그릇 감춰 놓은 걸 찾아다녔던 거지. 양푼은 물론이고 숟가락, 젓가락까지 놋쇠로 만든 거는 다 빼앗아 갔단다. 동네 사람들은 놋그릇을 뺏기지 않기 위해 땅 속에 묻어놓았다가 제삿날에만 꺼내서 썼단다. 제사가 끝나면 또 땅에다 묻어야 했지.” 

할머니나 아버지가 특별히 민족의식이 있어서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집집이 다니며 숟가락, 젓가락까지 빼앗고 제사까지 눈치를 보며 지내게 만든 일본에 대한 분노의 표시였을 것입니다.

일제시대 이 땅의 백성들은 이름마저 일본에게 빼앗겨야 했습니다. 일제를 경험하지 않은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일본 이름으로 이름을 고친 사람들을 친일파라고 공격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당시 상황을 잘 알지 못하고 하는 억지입니다. 어릴 때 우리 마을에는 일본 이름을 가진 어른들이 몇 사람 있었습니다. 일본 이름을 가진 그 사람들만 창씨개명을 했고 우리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들은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집은 일제시대 때 창씨개명을 하지 않고 어떻게 버틸 수 있었느냐'고 형님께 물은 적이 있습니다. 무슨 소리냐면서 당시는 모두가 창씨개명을 했다고 했습니다. '창씨개명을 하지 않고는 국민학교를 입학할 수가 없었는데 어떻게 창씨개명을 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겠느냐'면서 해방이 되고 나서 일본 이름을 쓰지 않고 우리 이름을 쓰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우리집도 당연히 창씨개명을 했던 것입니다.

일본은 과거 침략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선 침략을 조선을 보호하기 위함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일본의 지배로 조선이 크게 발전할 수 있었다고 생색을 내기까지 합니다. 일제 때 수많은 우리 백성들이 일본으로 끌려가 전장에서 총알받이가 되고 징용으로 끌려가 엄청난 고초를 겪기도 했습니다. 꽃다운 아가씨들이 일본군의 성노리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엄연한 사실을 일본은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기록이 있고 누구나 아는 역사적 사실인데도 일본은 부인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개개인은 좋은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예의 바르고 배려심 많고 결코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런 착한 사람들이 집단으로 모이면 아주 이상하게 변하는 것 같습니다. 이웃을 괴롭히고 고통을 주면서도 그것을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수천 년 동안 일본은 우리나라를 괴롭히기만 했습니다. 오죽하면 신라 문무왕께서 동해 바다에 당신의 무덤을 만들어 달라고 까지 했겠습니까. 죽어서라도 동해의 용이 되어 왜구들을 물리치겠다고 까지 했겠습니까. 임진왜란이 아니라도, 일제가 이 나라를 강제로 송두리째 빼앗은 것이 아니라도 이미 오랜 옛날부터 왜구들은 수없이 우리 땅으로 쳐들어와 우리 백성들을 죽이고 재물을 빼앗고는 했던 것입니다. 자신들에게 앞선 문화를 가르쳐 주고 높은 문명을 전수해 준 고마운 나라, 은인의 나라 백성들을 말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남을 괴롭히는 행위가 상대를 얼마나 힘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일본은 다른 나라를 괴롭히기만 했지 다른 나라로부터 괴로움이나 고통을 크게 당해 보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미국으로부터 원자폭탄의 공격을 받았다고 하지만 그것은 자신들이 가만히 있는 미국을 선제공격했기 때문에 받은 징벌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언제까지나 일본을 원수로 여기고 으르렁거리며 살 수는 없습니다. 지금 일본은 우리에게 아주 필요한 나라입니다. 일본 또한 우리나라를 아주 필요로 합니다. 무엇보다 국가 안보 면에서 그러합니다. 일본이 밉다고 무작정 일본을 적대시했다가는 우리 안보가 크게 위태로워질 수 있습니다. 핵으로 무장한 북한이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 또한 우리가 약해지면 우리를 언제 어떻게 할지 알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엄연한 우리 땅, 우리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고 자기네들이 과거 분명히 우리 조선 땅이라고 인정했던 독도까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고 있지만 현실은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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