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현석 Jan 13. 2020

경의선을 타고 가면서

집을 나와 개나리, 목련이 피기 시작한 길을 10여분 걸으면 풍산역이다. 이내 도착한 전철을 타고 스마트 폰 검색을 하다가 눈을 들어 바깥을 보니  눈앞에 가득 전개되는 풍경, 아 봄이다! 버드나무는 연두색 빛을 더하고 개나리와 목련이 화사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봄볕을 견디지 못했는지 매화는 꽃망울을 진작 터뜨렸고 벚꽃도 하나 둘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저 멀리 북한산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며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전철에서 바깥경치를 바라보는 것이 이렇게 눈을 시원하게 하고 가슴을 뻥 뚫리게 할 줄이야! 바깥을 볼 수 없는 지하철은 얼마나 갑갑하고 건너편 낯선 사람의 눈길은 얼마나 부담스러웠던가! 경의선변 시원하고 아름다운 바깥 경치를 바라보며 경의선을 지상으로 건설하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시민들은 경의선 복선화 사업은 반드시 지하로 건설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경의선지하화대책위를 만들어 현수막을 걸고 농성용 컨테이너를 설치했다. 수시로 시청을 쳐들어오고 시장실을 점거하기까지 했다. 경의선을 지상으로 건설하면 기차소리에 시끄러워 살 수가 없고 수시로 지나가는 기차 때문에 도로가 막히고 도시가 양분될 거라고 했다. 언제부터 경의선 복선이 지하로 건설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는지는 잘 모른다. 2002년 시장에 취임했을 때는 이미 경의선 복선 지하화는 절대 물러설 수 없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양보할 수 없는 마지막 선으로 시민의 공감대가 완벽하게 형성되어 있었다. 난감했다. 지하건설을 계속 주장하다가는 경의선 복선 건설은 물 건너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경의선은 여객수송만을 위한 철도가 아니었다. 군수물자도 실어 날라야 하고 언젠가는 유라시아 철도와도 연결되어야 하는 철도였다. 

여객과 화물을 겸용해야 할 철도가 지하로 건설된 사례는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고양시민들이 경의선 지상 건설을 반대하는 데모를 한다고 철도를 지하로 건설해 준다면 철도가 지나가는 모든 도시는 다 지하화 해 달라는 데모를 할 것이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감당할 수가 없기 때문에 정부는 철도를 지하로 건설할 수 없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므로 경의선 지상화를 반대하면 그 피해는 고양시민들이 볼 수밖에 없게 된다. 언제까지나 정부는 미적거리며 경의선 복선공사를 착공조차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민대책위와 회의를 하다가 격한 입씨름이 벌어졌다. ‘안 되는 것을 계속 주장을 하면 시민만 피해를 입는다. 여객, 화물 겸용 열차가 지하로 이루어진 사례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다. 우리 시가 농성하고 데모한다고 정부가 지하로 건설해 주겠는가?’ 고 한 내 말이 발단이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시민단체 대표 한 사람이 일어서더니 삿대질을 해대기 시작했다. ‘시장 공부 좀 해요 공부. 세계 어느 도시에도 건설된 사례가 없다고? 없긴 왜 없어. 공부도 하지 않고 있는 걸 없다고 해요? 안되긴 왜 안돼요. 그런 생각으로 하니 될 일도 안 되지.’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화물 여객 겸용 철도가 건설된 도시라면서 몇 개 도시를 주워섬기는데 뜨끔했다. 저렇게 큰 소리를 칠 때는 분명히 건설된 도시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여객, 화물 겸용 철도가 지하로 건설된 도시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 데 있다고 주장하니 다시 조사해보고 그런 도시가 있다면 정중히 사과하겠다’고 약속하고 회의를 끝냈다. 조사 결과 여객과 화물을 겸용하는 철도가 지하로 건설된 사례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것이 확실했다. 화가 치밀었다. 시민단체 대표의 도덕성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인가? 시민대책위에 그 사람을 빼지 않으면 대책위를 상대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이후 그 사람은 한 번도 만날 일이 없었다.

일본 동경은 곳곳에 철도건널목이 있었다. ‘철도건널목 때문에 불편하지 않느냐, 시민들이 철도를 지하로 건설해달라고 하지 않느냐’고 안내자에게 물으니 ‘철도가 지상으로 가는 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철도를 지하로 건설할  돈으로 다른 유용한 곳에 쓰는 게 맞을 것 같은데요.’라는 답변이었다. 북해도 삿포로에서는 이른 아침인데도 기차가 거의 2분 간격으로 다니고 있었다. 일본 국민들은 기차소리를 생활의 일부로 여기고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는 것이 인상 깊었다.

오랜 기간 고심을 하다가 건설교통부 장관과 담판을 짓기로 하고 장관을 찾아 경의선의 지상 건설로 발생되는 문제점을 해결해주면 지상 건설을 수용하겠다고 했다. 장관은 야당 시장으로서 결심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결단을 해 주어 고맙다며 우리가 가지고 간 대안을 검토하여 빠른 시일 내에 가부를 통보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이 내용은 절대 보안에 부쳐졌다. 나중 인천공항공사 사장을 맡아 인천공항을 건립한 강동석 장관이었다. 

보름쯤 후에 건교부로부터 답신이 왔다. 우리 시가 지상 건설을 수용하면서 해결해 달라고 요구했던 것들은 ①경의선 복선은 2007년 말까지 개통 ②일산역 철로를 인공 터널로 덮고 그 위에 나무를 식재 ③건널목 15곳에 지하차도나 고가차도 건설 ④방음벽을 아파트 단지가 인접한 곳마다 세우고 철로변에 소음을 차단할 수 있도록 조경수를 울창하게 심어야 하며 ⑤경사도로 인해 반 지하 건설이 불가피한 구간은 그 위에 육교를 만들고 나무를 충분히 심어 달라는 내용이었다. 이 내용 중 건교부는 지하차도를 일부 줄여 건설하자는 것 말고는 모두 고양시의 제안을 수용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이에 우리 시는 지하차도 문제는 계속 협의하자고 답신을 하고 기자회견을 열어 경의선을 지상으로 건설하겠다고 발표를 했다. 기자회견을 마치자마자 인터넷에 난리가 났다. 시장을 비난하는 글이 폭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것은 이미 각오한 바였다. 경의선 복선 지상화 발표를 결심할 때 한 달 정도는 집에 들어가지 않을 각오까지 했었던 것이다. 

 다음날 경의선지하화대책위에서 연락이 왔다. 점심식사를 같이 하자는 것이었다. 점심 모임에는 대책위 간부들이 거의 다 나왔다. 밤새 경의선과 인접한 5개 아파트 단지가 주민투표를 실시했다고 했다. 그 결과 79.8%의 주민들이 지상화에 찬성한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대책위는 즉시 해산하고 컨테이너는 철거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지하화대책위는 지상화건설대책위로 전환하여 경의선의 지상 건설을 적극 지원하고 돕기로 결정했다고도 했다. 대신 경의선이 제대로 건설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 달라면서 경의선 건설에 주민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주민대표를 협의체에 참여시켜 달라는 요구를  했다. 이 요구는 흔쾌히 수용했다.

 이후 주민들은 경의선 복선화 지상 건설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건교부도 고양시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주었다. 그러나 문제는 예산이었다. 우리 고양시와 건교부가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일산역의 터널 건설은 실현되지 못했다. 철도시설공단이 일산역에 터널을 짓겠다는 홍보물까지 만들어 가가호호에 배포까지 했지만 이루어지지 못했다. 완공도 1년 반이나 지연되었다. 지하차도는 아직까지도 일부 구간에서는 건설되지 못하고 있다.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고양시 출신 당시 여당 국회의원들의 힘을 빌리고자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우리 지역 출신 국회의원으로 당시 국무총리였던 분을 만나기 위해 온갖 경로를 통해 면담을 요청했지만 만날 수가 없었다.  총리는 고양지역 관변단체장들은 총리 공관으로 불러 만찬까지 제공하면서도 시장은 끝내 만나주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총리실로 지휘서신까지 보냈지만 답장조차 없었다. 야당 출신 시장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총리를 그만둔 그분을 한 모임에서 만났을 때 왜 그렇게 만나자고 했는데도 만나주지 않았느냐, 지휘서신은 보았느냐고 따지듯 물었지만 웃기만 할 뿐이었다. 반면에 건교부 강동석 장관은 만날 때마다 고마워했고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 미안해했다. KTX 행신역 증차에 강 장관은 결정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다. KTX 행신역 증차를 철도청에서 들어주지 않아 강 장관을 찾아 가자 강 장관은 그 자리에서 철도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호통까지 쳐가며 증차를 지시했고 몇 달 후 행신역 출발 편과 도착 편이 여러 편 증차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경의선 복선은 완공되었다. 2009년 7월 1일이었다. 파주 문산에서 가좌까지 미완의 완공이긴 했지만 기뻤다. 개통식이 있는 날 아침 뿌듯한 마음으로 개통식장인 행신역을 찾았다. 많은 시민들이 반겨주었다. 개통식에는 아쉽게도 경의선 복선화에 기여를 한 사람들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대신 경의선이 왜 지상으로 건설되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대거 나와 생색을 내고 있었다. 경의선이 건설될 수 있도록 갖은 노력을 다했던 건교부와 고양시 공무원과 철도시설공단 직원들은 모조리 찬밥이었다. 새로운 장관과 철도공사 사장, 지역 국회의원들만 축사를 하며 생색을 내고 있었다. 참 많이 씁쓸했다. 

 경의선 하면 특히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경의선 복선화 과정에서 건교부의 약속을 어떻게든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건교부 공무원이었다. 경의선 복선화 사업에 대한 문제점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경의선 고양시 구간 전체를 수없이 왔다 갔다 걸어 다닌 사람이었다. 구두가 다 닳았다고 투정 아닌 투정을 부려 구두까지 사주기도 했던 사람이다. 약속을 끝내 지키지 못한 데 책임을 지겠다면서 사표를 던지고 그는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다. 김용상 건교부 전 사무관이 그 사람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경의선은 서울시 구간까지 다 개통되고 이제는 중앙선과 양평 용문까지 연결이 되어 많은 직장인들이 편리하게 이용하는 전철이 되었다. 이 노선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경의선 복선 건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땀과 노고가 있었는 지는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경의선을 탈 때마다 가슴 뿌듯한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경의선 복선 건설을 위해 온갖 노력을 하면서 오랫동안 고생한 고양시, 철도시설공단, 건교부, 철도공사 관계자들과 주민대책위원들 모두가 가슴 뿌듯한 보람을 느낄 것이다. 건설사 관계자들도 완공의 기쁨으로 그간의 오랜 고생을 충분히 보상 받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경의선 지상 건설이라는 원치 않은 결정을 하고 밀어붙였는데도 이를 마다하지 않고 받아주신 고양시민들이 있었기에 경의선은 완공될 수 있었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골프장을 꼭 여기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