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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석 Dec 31. 2019

골프장을 꼭 여기에?

   서어나무 군락지가 있는 우리나라의 몇 안 되는 극상림 지역인 계명산에 골프장을 짓겠다고 하네요. 의회에서는 이미 골프장 건설을 촉구하는 결의문까지 채택한 상황이었고요. 

  2002년 지방선거 한나라당 시장 후보 경선에서 후보자들은 골프장 건설을 모두 반대하고 있었지요. 환경단체가 극렬하게 반대를 하고 있고 귀족 스포츠인 골프에 대한 시민정서도 감안하여 반대하는 것이 득표에 유리할 것이라는 고려가 있었겠지요. 

 ‘미국은 골프장이 1만 5천 개 정도 되고 일본은 1천5백 개 정도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골프장이 150 개 가량 밖에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 골프장이 너무 적다는 의미다. 때문에 골프가 귀족 스포츠가 되었고 이 재미있는 운동이 일부 부유층의 전유물이 되고 말았다. 우리나라에는 골프장을 더 많이 지을 필요가 있다. 그래야 서민들도 재미있는 골프를 싼값에 많이 즐길 수 있게 된다. 그렇지만 계명산은 골프장을 지어서는 안 되는 산이다. 환경적으로 꼭 보전해야 할 극상림 지역인 데다 산이 경사가 심해 골프장으로 적합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로 시장선거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전에서 계명산 골프장 건설을 반대하는 토론을 했지요. 

  시장에 취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계명산에 골프장을 건설하는 것에 대해 시장의 생각은 어떠냐는 의견을 물어왔습니다. 건설교통부에서였지요. 계명산에 골프장 건설은 안 된다는 의견을 올렸고 골프장 건설은 중단되고 말았지요. 

  그러나 그 이후에도 골프장 건설을 위한 업체의 노력과 로비활동은 계속되었습니다. 저하고 친한 분들을 용하게 찾아내더라고요. 예전 제가 모시던 분이나 친한 선배, 지인들이 집무실을 찾거나 오랜만에 식사나 하자고 해 나가면 골프장 얘기를 하는 겁니다. 이 분들은 골프장을 건설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시장이 무턱대고 고집을 부리며 안 된다고 하는 걸로 아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마다 골프장 건설이 안 되는 이유를 자세히 설명을 해야 했지요. 납득을 하고 순순히 물러나는 분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아예 민원을 안 들어주는 놈으로 낙인을 찍으며 서운해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당 사무총장이 밥 좀 사라며 사무처 국장들 몇몇과 함께 찾아온 적이 있었답니다. 저녁식사를 겸한 술자리에서 주흥이 무르익어갈 때쯤 예의 골프장 얘기를 꺼내는 것이었습니다. 참 난감했습니다. 골프장 건설이 안 되는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야 했지요. 사무총장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웃으며 헤어지기는 했지만 뒤끝이 영 개운치 않았지요. 모두 떠나고 친하게 지내던 후배 국장 한 사람만 남게 되자 그는 ‘선배는 어떻게 그렇게 꽉 막혔느냐’는 질책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안 될 때 안 되더라도 힘들지만 다시 한번 검토해보겠다는 그 말을 왜 못 하느냐’ 는 것이었습니다. ‘국장들이 가득 있는 자리에서 총장 체면이 뭐가 되느냐’는 말도 하면서 말이지요. ‘그러고 나서 나중에 검토를 해봤는데 법적인 문제도 있고 시민단체의 반발과 환경적인 우수성, 산사태 등등으로 도저히 안 될 것 같다’고 하면 될 것이라는 거였지요. 그것이 난세를 살아가는 처세술이라는 거겠지요. 그러나 제 생각은 달랐습니다. 안 되는 것을 희망을 주거나 여지를 남기면 비용과 시간만 더 들게 할 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지요. 안 되는 것은 확실히 안 된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이 사업자의 피해를 줄여주고 사업자를 돕는 길이라는 생각이었지요. 

  나중 그 사무총장은 선거가 있을 때마다 저를 지원하고 돕는 연설을 해주곤 했답니다. 저에게 민원을 부탁했다가 거절당한 사례까지 들면서 ‘꼭 막혔다 싶을 정도로 원칙을 지키는 이런 사람만 있으면 세월호 같은 사고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까지 하더라고요. 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지요. 

  시정을 보다 보면 부탁을 들어주지 못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답니다. 본인에게는 절박한 일이지만 공익에 부합하지 않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일 같은 것이 많았지요. 잘 알거나 친한 사람이 찾아와 부탁을 할 때면 참 난처하기 짝이 없답니다. 아는 사람이라고,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고 안 되는 일을 되게 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대부분이 이해를 하고 웃으며 헤어지지만 가끔 서운하다면서 떠나는 사람들도 있답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이해를 하는 것 같더라고요. 소문은 금세 퍼지는 것이어서 민원을 절대 안 들어주는 놈이라고 아주 정평이 났었답니다. 안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못 들어주는 것이었는데도 말이지요. 들어줘도 별 문제가 없는 것은 들어주기 위한 노력도 많이 했었는데도 말이지요. 때문에 힘든 일이 많기도 했지만 악성 민원으로 시달릴 일은 그렇게 많지 않게 되더라고요.

  민원 청탁을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대신 아주 친절하게 대해주었지요. 가급적 만나주려고 노력을 하고 만나면 웃으며 친절하게 대해 주었지요. 안 되는 사유를 성의를 다해 설명을 하고 문밖 배웅은 기본이고 필요할 때는 주차장까지 따라 나가는 성의를 보였지요. 소개를 한 분들이 민원처리는 안 되었지만 도와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민원인이 고마워하더라는 말을 전하며 자신의 체면을 세워주어 고맙다는 인사까지 하는 분들이 많았답니다. 그런데도 만나주지 않는다, 대통령 만나기보다 더 힘들다고까지 하면서 불평하는 사람들이 많았답니다. 그럴 수밖에요. 100만 시민들을 상대해야 하는 입장에서 시간 내기가 쉬웠겠습니까? 최선을 다해 시간을 만들고 만나고 하지만 늘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지요.

  퇴폐업소를 대대적으로 단속을 할 때였습니다. 이미 고양시는 러브호텔 문제로 엄청난 몸살을 앓은 적이 있어 퇴폐업소는 어떻게든 퇴출시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시민들 사이에 형성되어 있을 때였지요. 그런데도 퇴폐업소들은 법망을 교묘하게 피해 번성하고 있었지요. 안마시술소도 그중 하나였답니다. 안마시술소는 맹인들만 설립을 하고 운영을 할 수 있는 특수 업종이었지만 실제는 맹인이 아닌 사람이 운영을 하면서 불건전한 영업을 하는 사례가 많았지요. 때문에 우리 시에서는 신도시 등에는 조례로 안마시술소 설립을 막고 있었답니다. 그러한 때에 여러 사람들이 공동으로 상가 건물을 짓다가 완공 무렵에 그 건물을 안마시술소로 운영하겠다고 하면서 안마시술소 영업허가를 내달라는 민원이 접수된 겁니다. 그들 가운데는 맹인이 몇 사람 끼어 있었지요. 안마시술소는 허가가 금지된 업종이라 안 된다고 했지만 막무가내였습니다. 하다 하다 안되니까 전국의 맹인들이 총동원됐는지 엄청난 수의 맹인들이 시청으로 쳐들어왔답니다. 맹인들은 잠근 정문을 넘어 시청 마당으로 마구잡이로 뛰어내리는 겁니다.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어 정문을 열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지요. 

  대표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그중 한 분이 지갑에서 어린 딸의 사진을 꺼내 울먹이며 ‘이 어린 딸아이를 위해서라도 제발 안마시술소를 허가해 달라’고 읍소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리를 같이 한 다른 맹인들도 하나같이 눈물을 흘리며 제발 살려달라고 호소를 하는 겁니다. 안마시술소에 전 재산을 다 바치다시피 했는데 허가를 해주지 않으면 다 죽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눈물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냉혈한이 얼마나 될까요? 그러나 냉정해야 했습니다. 인정에 허물어지면 그동안 힘들게 쌓은 원칙이 모조리 무너질 수밖에 없게 되니까요. 가슴은 아프지만 그 아픔을 꾹꾹 눌러 참아야 했지요. 

  안마시술소를 맹인들에게 허가를 내주면 얼마간 운영을 하다가 대부분이 맹인이 아닌 사람들에게 대여를 하고 맹인들은 이름만 올려놓고 영업을 하는 사례가 많았을 때였지요. 그러한 업소가 건전하게 운영되는 사례는 보기 힘들었고요. 오랫동안 그 사진 속의 선한 어린아이의 눈망울이 떠올라 참 힘들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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