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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석 Dec 20. 2019

산을 잘라 아파트를 짓는다고?

 시장에 취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주 머리 아픈 일이 있었답니다. 결심하기 쉽지 않은 일이었지요. 고양시청 뒤편에 있는 작은 공원과 뒷산을 연결하는 산책로에 아파트를 짓겠다고 허가를 해달라는 겁니다. 아파트를 짓겠다는 곳은 이미 1970년대에 시가화예정지로 고시가 되어 있었고 전임 시장 때 주택조합 결성 인가가 난 곳이었습니다. 주택조합에서는 당연히 아파트 허가가 나리라 믿고 이곳에 땅을 사서 아파트 허가를 신청한 것이었지요. 난감했습니다. 아파트 신청지는 산허리를 잘라내야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지요. 그곳에 아파트를 지으면 녹지가 훼손되는 것은 물론 원당 지역 주민들의 휴식처이자 운동공간인 산책로가 완전히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파트 허가신청을 반려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수백 세대에 이르는 주택조합원들이 길거리로 내몰리게 되는 형편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아파트 부지 하나가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내 집을 마련한다고, 내 아파트를 가질 수 있게 될 거라고 꿈에 부풀어 있을 사람들일 것입니다. 저도 처음 내 집을 주택조합을 통해 가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그 심정과 기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요. 

 공무원들은 시장으로서의 경험이 없는 저에게 모든 결정을 떠넘겼습니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주변 마을 주민들 의견을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지역 통장들에게 물어보았지만 뾰족한 답을 얻을 수 없어 통장들을 통해 지역민들의 의견을 취합해 보기로 했습니다. 아파트 허가를 내주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과 허가를 내주는 것이 옳다는 의견이 거의 반반으로 갈려 더욱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녹지나 주민들의 산책로, 쉼터는 파괴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자산입니다. 그러나 개인의 재산권 또한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녹지나 쉼터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조합원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을 재산 또한 지켜주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개인의 재산을 날릴 권한은 시청이나 시장은 가지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내 아파트 신축 허가를 내주었고 아파트는 지어졌습니다. 허가 결재를 하면서 담당 국장과 과장 등 관련 공무원들에게 앞으로 산을 잘라 아파트를 지을 생각은 절대 하지 말라고 당부를 했습니다. 월례조회 시간에 전 직원들에게 그간의 마음고생을 이야기하면서 후 세대를 위해서 앞으로 산지는 반드시 보전하겠다는 자세로 임해 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습니다. 언젠가는 없는 산도 만들어야 할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는 말과 함께.

 다행스럽게도 마을 주민들은 산이 잘려 나가고 자신들의 산책로가 없어졌는데도 크게 반발하거나 항의하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분들의 형편을 이해해 주신 거겠지요. 이해심 많은 시민들이 참 고마웠습니다. 

 이후 고양시 공무원들의 의식은 많이 달라져 송포에 있는 자그마한 야산을 시가 송두리째 사서 보전하기도 했습니다. 한강이 범람해 고양시 전역이 온통 물에 잠겼을 때 인근 주민들이 피난하기도 했던 산입니다. 그 산에 주택을 짓겠다는 허가 신청이 계속 들어와 산을 지키기 위해 아예 시에서 산을 통째로 사버린 것입니다. 산지 보존과 환경보호에 대한 고양시의 의지를 보인 것이지요.  

 고양동과 1군단 사령부 사이 산허리에 아파트를 짓겠다는 계획이 있었습니다. 시장에 취임하고 첫 업무보고에서 이 보고가 있었지만 당시는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때였기 때문에 그냥 넘겼습니다. 그러나 이후 원당지역에 산허리를 잘라내고 아파트를 짓게 되었을 때 이 계획을 중단하라는 지시를 했습니다. 공무원 입장에서는 중단이 쉽지 않았던지 잊을 만하면 그 계획 보고를 반복했지만 그럴 때마다 추진하지 말라는 지시를 계속했습니다.  어느 중진 국회의원이 좋은 사람을 한 사람 소개할 테니 만나보라는 전화를 했습니다. 거절하기 힘든 잘 아는 국회의원이었습니다. 그분은 소개받고 1년 여가 지날 때까지 특별한 부탁 한 번 하지 않다가 어느 날 아주 놀라운 말씀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고양동에 산을 사서 아파트를 지을 계획을 했다가 그동안 시장을 여러 차례 만나면서 환경보전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확인하고 그 뜻이 또한 옳은 것 같아 아파트 지을 계획을 포기하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이미 아파트를 지으려고 산 땅은 다 팔았다고 했습니다. 그분을 소개해준 국회의원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올바른 시정을 펼쳐주어  고맙다는 치하 전화였습니다. 무척 기분 좋은 전화였습니다. 그러나 그 땅에는 지금 한창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습니다. 시장이 바뀌자 시정철학도 달라지게 된 것이겠지요.

 고봉산 기슭에 토지공사가 아파트를 지으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당연히(?) 지역주민과 환경단체들이 심하게 반발을 했습니다. 그러자 토지공사는 아파트 짓기를 포기하고 그곳에 단독주택을 짓기로 계획을 변경했습니다. 그러나 주민들은 그것마저 거부하고 주민 성금으로 땅 한 평씩 사자는 운동을 벌이면서 이 부지를 시에서 사서 보전하라는 압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민들의 반대 명분은 습지 보존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바로 뒤편에 있는 작은 습지를 살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산골 출신인 제가 보기에 그 주장은 좀 옹색해 보였습니다. 산기슭에 있는 논을 몇 년 정도 농사를 짓지 않고 묵히면 그 땅은 대부분 습지로 변하게 됩니다.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이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습지 또한 오랫동안 농사를 짓지 않고 방치해 두어서 만들어진 습지로 보였던 것입니다. 습지보존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산을 주택이 가로막게 되면 근처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이 갑갑하게 될 것이고 경관도 해칠 테니까 반대하는 거 같았습니다. 주민들과 환경단체들은 수시로 시위를 하면서 시를 압박하다가 주민 대표 몇 사람과 시장이 현장에서 만나자는 제의를 해 왔습니다. 몹시 추운 겨울 늦은 시각이었습니다. 약속대로 담당 직원 몇 사람과 현장 가까이 갔을 때 마을 주민들이 약속을 어기고 수백 명이 모여 있다고 하면서 가지 않는 게 좋겠다고 직원들이 만남을 만류했습니다. 주민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지만 공직자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현장을 찾아가자 주민들은 맹렬히 우리를 비난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장이 시민 편은 들지 않고 토지공사 편만 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TV에서 낯익은 유명 여자 탤런트가 유독 맹렬히 덤볐습니다. 고봉산 자락의 단독 주택단지는 예산상 시에서 사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한편 환경단체에 따끔한 일침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환경단체의 환경을 지키려는 노력은 높이 사지만 정작 꼭 지켜야 할 곳은 외면하고 환경단체가 필요한 곳이나 이해관계가 있는 곳에 적극 나서는  사례를 꼬집은 것입니다. 

 어느덧 겨울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고 날이 어두워지고 있을 때 환경단체 대표 한 사람이 마이크를 갑자기 뺏더니 ‘방금 들은 대로 시장이 이 땅을 사서 보존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은 반드시 지키리라 믿는다. 결단을 내려준 시장에게 박수를 보내자’고 하는 것입니다. 황당했지요. 바로 마이크를 빼앗았습니다. ‘어떻게 모두가 다 듣고 있는데 하지도 않은 약속을 했다고 하느냐. 그런 거짓말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했지요. 그러자 여기저기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지’ 하는 소리도 들렸지만 그런 말은 금방 저를 비난하는 소리에 묻혔습니다. 욕설까지 들렸지만 못 들은 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미 주위는 깜깜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플래시 불빛으로 제 주변은 환했지만요. 어느 때부터인가 주민들이 점점 제 주변으로 다가오기 시작했습니다. 직원들은 불안한지 그만 가자고 했습니다. 금방이라도 불상사가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였거든요. 주민대표들도 그만 가시는 게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를 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겁을 먹고 도망갔다는 말을 만들어 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주민들이 코앞까지 다가와 저를 겹겹이 에워 쌓습니다. 무력시위를 하는 거겠지요. 제게 겁을 주기 위한 시위임이 분명했습니다. 그 분위기를 감지한 주민 대표들이 제 주변을 감싸면서 ‘이젠 가셔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만 가시지요.’ 하며 떠날 것을 강권했습니다. 주민들에게 이제는 가도 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주민들은 가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주민들은 단독주택단지 예정부지 앞을 지나게 되는 도로는 차가 빨리 달리지 못하게 아스팔트 포장 대신 돌을 촘촘히 박는 공법을 쓰라는 요구를 하면서 시에서 땅을 사서 보존하라는 압박을 지속적으로 가했습니다. 주민들의 요구가 거듭되자 가격이 크게 비싸지 않다면 사는 것도 한 방법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가 필요할 때 쓸 수 있는 시유지 땅이 거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때 땅을 매입해 두었다가 미술관이나 박물관, 또는 청소년 관련 시설을 지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토지공사는 시가 필요해서 사겠다면 250억 원에 팔겠다고 했습니다. 토지공사 사장을 찾아갔습니다. 여러 가지 해결해야 할 현안들도 있었지만 내심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지요. 다른 문제들에 대한 논의를 끝내고 마지막으로 고봉산 단독주택 부지 매입 문제를 꺼냈습니다. 토지공사 실무자들은 강경했습니다. 250억 원에서 단 한 푼도 깎을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토지공사가 우리 고양시에 일산신도시를 만드는 등 좋은 일을 많이 해 늘 고맙게 생각한다. 지금껏 토지공사에서 많은 일을 했지만 앞으로 고양시에서 해야 할 일은 더 많다. 삼송지구, 지축지구, 향동지구, 덕은지구 등 개발도 있지만 수도권 최고, 최대 개발지가 될 JDS지구도 있다. 긴 말 하지 않겠다. 우리 고양시와 계속 사업을 하고 싶다면 이 땅을 150억 원에 팔아라. 그것도 분할로 팔아라.’ 

 그렇게 하여 이 땅을 100억 원을 깎아 150억 원에 분할로 사게 되었습니다. 이 땅은 아직 고봉산 자락에 빈 땅으로 남아 있습니다. 앞으로 고양시는 이 땅을 아주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주민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거주지나 주변을 개발해달라고 요구합니다. 개발은 곧 생활의 편의와 재산증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일부 지역 주민들은 쾌적한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개발보다는 보전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개발이냐 보존이냐고 할 때 결정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선 개발이 편리하기는 하지만 뒤 세대를 위해서나 쾌적한 생활환경을 위해서는 개발을 뒤로 미루거나 보전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개발과 보존을 6 : 4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보존도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결국은 인간을 위한 것 아니겠습니까? 필요한 곳은 개발을 하되 후손들의 쾌적한 삶을 위해서나 현재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필요한 곳은 보존하고 잘 가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개발이 좋고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잘 가꾸어진 녹지나 숲을 훼손해서는 안 되지 않겠습니까.

 이후 아파트 단지를 조성할 때 지상에 녹지를 많이 조성할 수 있도록 주차장은 반드시 지하로 넣도록 하여 쾌적한 생활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새로 만들어진 아파트 단지에 주차장이 지하로 들어가면서 지상 공간을 공원이나 광장으로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무로 둘러싸인 꽃이 만발한 아파트 단지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주민들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큰 보람이자 참 유쾌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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