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vs 우울
우울
약물이나 의학 처치가 없는 상태에서
2주 이상 심각하게 우울한 기분과 무가치하다는 느낌 그리고 대부분의 활동에서 관심이나 즐거움이 감소된 것을 경험하게 되는 기분 장애.
- 마이어스의 심리학 '심리장애 편'
몇 년 전, 개인적으로 경험한 강력한 우울은 불안보다 나의 삶을 더욱 심각하게 위협했다.
나에게 불안이 생존을 위한 좋은 전략 중 하나가 되어 있을 때 나의 삶에 큰 사건이 생겼었다.
나에게 아주 큰 영향을 미칠만한 사람이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었다. 다행히도 현재까지 건강하게 잘 살고 있지만, 정말 크나 큰 충격의 순간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당시 큰 충격에 휩싸여 두렵고 공포스러운 감정이 드는 것을 온몸으로 체험했지만,
그 사이 나에게 스며든 ‘우울, 무기력’이라는 감정은 미처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홀로 매장에 앉아 멍하니 창문 밖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세상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치 무중력의 상태에 내가 놓여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고,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아무것도 할 의욕이 들지 않았다.
‘내’가 내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
아니, ‘나’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 굳이 남아 있을 필요가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은 정말 낯선 느낌이었다.
마치 마취제를 맞은 것과 같이 나의 모든 감각이 무감각해졌었고, 감정조차도 느끼지 못하고 나는 그저 공기 중 하나인 것만 같았다.
그대로 밖으로 나가서 죽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그 감정과 상태를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아무것도 의식이 되지 않았고, 그 어떤 두려움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것은 해방감도 아니었으며, 단지 나는 ‘무언가’가 되고자 하는 어떤 의지도 없는 상태였다.
나는 그저 공기처럼 아무도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그런 존재 같았다.
그대로 나는 죽어야겠다는 생각이
무심코 들었다.
그 당시 나의 두 딸은 3살, 7살이었다.
두 아이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의지를 다지며 사업을 하루하루 잘 버텨나갔었는데,
그 아이들조차도 나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참 미안한 말이지만, ‘우울’과 ‘자살’은 정말 극단적인 ‘이기심’을 가진 상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경험한 우울은 정말 나 밖에 생각하지 않은 상태였다. 누구도 의식되지 않고, 누구의 말도 들리지 않았었다. ‘우울’과 ‘이타심’ 간의 연구를 꼭 해 보고 싶다.
그때 순간 내 머릿속에 한 줄 문장이 희미하게 지나갔다.
‘자살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셔.’
이 말이 마음에서 울리는 것이 아니라 정말 종이 위에 글을 써 놓은 것처럼 그저 슥 지나갔었다.
정말 눈에 영혼조차 없는 것 같은 상태에서 멍하게 무심하게 한 마디 툭. 내뱉었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정말 무미건조하게 책 읽듯이 한 마디 던졌다.
그리고 차를 몰고 집으로 갔다.
40여분 간 운전을 해서 집으로 가는 도중에 이대로 죽을까? 죽어도 괜찮은데.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었다.
그러다가 집으로 도착.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섰는데, 꺄르륵 꺄르륵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나는 몸을 부르르 떨며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마치 무언가 봉인되어 있다가 해제가 된 것처럼.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월요일 아침 바로 병원을 찾았다.
사실 앞서 말한 내 가까운 그 사람이 심상치 않아서 몇 달 전에 직접 모시고 내가 공황장애를 치료할 때 다닌 병원에 간 적이 있었다.
그 후 그 사건 직 후 나는 병원을 찾아 나의 상태를 상담받고는 두어 달이 지난 후 방문한 것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깜짝 놀라시며 물으셨다.
“일단, 잘 오셨어요.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혹시 최근에 생각하면 기분이 좋거나 행복하다고 느낄 만한 것이 있나요? 아무것이라도 상관없으니 생각해 보세요.”
“음… 저는 딱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이 있어요. 모든 것이 의미가 없는데 딱 한 장면이 떠올라요. 저는 피아노 학원을 마치고 저의 매장으로 들어서는 딸의 모습이 떠올라요. 작은 몸으로 무거운 문을 당기며 ‘엄마!’하고 부르면서 환하게 웃으며 들어서는 것을 볼 때, 딱 그 순간만큼은 너무 행복해요.”라고 말했다.
나의 입꼬리는 올라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나의 볼에는 눈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좋아요. 다행이네요. 지금 그 느낌을 꼭 기억하세요. 약은 특별히 드리지 않을게요. 사실 지금 환자 분 상태는 굉장히 위험한 상태는 맞습니다. 만약 한 번 더 그 생각이 든다면, 절대로 그 순간 결정하지 마시고 바로 병원에 오세요. 그리고 입원하셔야 해요. 그러나 지금 저에게 말씀하신 그 상황을 꼭 기억하세요. 그러면 괜찮아질 거예요. 꼭 기억하세요. 한 번 더 그런 상황이 온다면 입원하셔야 합니다.”
선생님은 나에게 ‘그 사건’은 평생 트라우마가 될 것이라고 하셨었다.
꼭 하루에 한 가지씩 행복한 기억이 있는지 생각해 보라고도하셨었다.
다행히 나는 그날 이후로 차차 좋아져서 다시 그런 일로 병원에 가는 일은 없었다.
미소도 눈물도 없는 상태.
의욕도 희망도 없는 상태.
존재의 의미 자체가 없는 상태.
그 어떤 두려움조차 느껴지지 않고 고통조차도 사라진 상태.
내가 경험한 우울은 그것이었다.
그것은 불안보다 강력하게 내 생명을 위협했고,
불안보다 강력하게 이기적이었다.
사람들은 우울이 감기 같은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감기가 독감이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물론 면역력이 좋은 사람은 독감도 약이 없이 견뎌내고 이겨낸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 고통을 견뎌내기 어렵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약을 먹는다.
우울도 불안도 같다. 견뎌낼 만한 고통이고 상태인지 병원에서 확인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자가진단으로 괜찮다고 생각하다 보며 언젠가는 나도 모르게 바이러스처럼 내 정신과 영혼을 갉아먹어 원치 않는 선택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병적인 우울, 불안..
결코 나약하기 때문에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강인하다고 생각해서
너무 버티다가 가지게 되는 것.
때론 내려놓고 좀 내버려두고 살아도 괜찮다.
결코 잘못되지 않는다.
잘못되면 어때?
다시하면 되지.
‘다시’라는 것은 일단 건강하고, 살아 있어야
쓸모있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