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내가 자란 할머니 댁 문은 창호지로 만들어져 있었다.
문고리에 숟가락 하나 툭 걸어 놓으면,
문이 잠긴 것이 되는 흙 기와집.
겨울이면 뜨거운 아랫목에
작은 내 몸을 짓누르는 무거운 솜이불을 덮고 잠을 잤었다. 외풍이 드는 방, 기관지가 약했던 나는 아침마다 누런 코를 한 주먹 풀어내야 했지만, 나에게는 외풍보다 무서운 것이 있었다.
바로 창호지 너머 일렁이는 그림자들.
컴컴하고 고요한 방 안에서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면서 쉬이 잠들지 못한 나는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치곤 했다.
일어나지 않을 그 어두운 상상에 홀로 갇혀 두려워하다 잠이 드는 날이 수 없이 많았다.
어른이 되면 두려움이 조금 작아질까.
어른이 된 나는 여전히 가끔 실체가 없고,
일어날지 아닐지 모르는 두려움에 커다란 눈만 껌뻑이다 눈물 한 줄 주룩 흘릴 때가 있다.
세상 강인하지만,
한 편 그 강인함이 다져지기까지 흘린 수 없이 많은 눈물을 누가 알까?
깊은 밤,
어딘가 익숙한 차가운 공기 한 줌이 내 콧가에 스친다.
그리고 익숙한 뜨거운 무언가가 내 뺨을 적신다.
어릴 적 한 방에 가족이 함께 있어도 두려움은 나만 알았던 것처럼,
함께 있어도 늘 홀로 감당해야 하고 혼자인 것이 내가 지금 가려고 선택한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