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사잇길 8길 코스_청초천 길]
속초 문화관광재단의 올해 인문학 프로그램 제1탄은 '설악, 산의 인문학'이다.
'자연과 인문을 연계한 인문학적 관점에서 산과 사람의 관계를 이해한다'라는 부제답게 산에 더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도 다니지 않는 길이지만 호기심 100%로 강의를 신청했다.
PART 1. 우리 산림, 자연과 인문의 결합체
PART 2. 산과 함께한 우리 민족의 삶
PART 3. 영원한 판단 중지, 산의 자세
PART 4. 백두대간과 설악산
집에서 국립 산악박물관까지는 도보로 1시간이 좀 넘게 걸린다. 물론, 버스를 타고 중간에 내려 걸어갈 수는 있지만 걷기로 했다. 걷는 길은 오르막길인 직진 코스다. 걷다 보니 '속초 사잇길'리본도 있다.
여기도 사잇길인가. 30분 정도 남은 길은 오르막이 더 심하다. 매번 차로 지나친 길이 오르막인걸 처음 알았다. 첫 수강인만큼 일찍 도착해 산악 박물관도 관람하고 시립박물관까지 이어주는 노리 숲길도 걸었다. 숲 박물관 표지판을 따라갔더니 노리 숲길이다.
노리 숲길은 '숲 속 마켓'도 열리는 곳으로 넓은 나무테크도 있어 쉴 수 있는 공간들이 많다.
30분이면 걸을 수 있다. 안쪽으로 조금 들어왔을 뿐인데 깊은 숲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빼곡한 나무들, 새소리, 그리고 땅속에서 올라오는 흙냄새는 나의 오감을 충분히 자극시켰다.
가볍게 책 한 권 들고 올걸. 갑자기 여기서 쉬고 싶어졌다.
박물관 영상실에서 시작한 인문학 강의는 장소도 쾌적했고 교수님의 웃는 첫인상에 딱딱함보다는 '산 이야기'의 주머니가 궁금해졌다. '광범위한 산을 어떻게 다가갈까'했는데 최종 목적지는 산이지만 그전에 산림의 생태계를 알아야 했다. 그중에 먼저 모든 생명을 지탱하는 분자인 물을 알아야 한다.
물의 특성은 지구 생명체를 보호하는 것으로 대기를 안정적 온도로 유지시킨다.
또, 세계 기후와 토양에 대한 설명, 각국의 산에 대한 지형도에 대해서도 포괄적인 설명을 들었다.
단순히 설악산만 생각했는데 첫 시간에 세계여행을 하듯 세계지도를 얼마나 봤는지 모른다.
들으면 들을수록 전문적인 강의다.
두 번째 강의부터는 본격적인 산, 숲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살고 있는 가까운 곳의 나무, 산, 강도 숲길이고 산이라고 하듯 내가 걸어온 오늘의 길도 의미 없는 길이 아니었다. '나무가 있고 꽃이 있고 풀이 있으면 다 숲길이다'라는 말처럼 나와 우리와 더불어 살아온 이 공간들이 산이고 숲길이 었다.
마지막 시간은, 백두대간과 설악산에 대한 이야기다.
백두대간이란 백두산에서 지리산으로 꽃봉오리처럼 봉우리와 골짜기가 계속 이어지는 밝은 산줄기라는 뜻이다. 초기는 지맥 흐름에 대한 설명으로 조선시대에는 산계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모든 산줄기는 백두산과 통한다는 개념을 갖고 있다. 우리 선조들의 오랜 세월과 검증, 고증을 거치며 발전시켜온 전통 지리관이다.
현재 관점으로 보는 백두대간은 한 줄기로 이어진 우리나라 지형의 중심으로 야생동식물의 핵심 서식지, 생태연결통로, 생물다양성의 공급원의 의미가 크나 1970년대 이후로는 각종 개발로 인한 심각한 훼손으로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는 강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왜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 안 되는 걸까?
무엇이든 욕심을 부리면 탈이 나기 마련이다.
점점 더 뜨거워지는 지구 온난화는 매년 논의되는 문제지만 별다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다.
백두대간을 따라 내려오면 설악산의 위치는 중간으로 지리학적, 기후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위, 아래 지역을 아우르는 나무들이, 야생초가 자라고 있는 곳이 설악산으로 산을 연구하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고 했다.
설악산의 식생은 신갈나무, 개박달나무, 복장나무, 소나무, 갈매나무, 피나무, 신나무, 들메나무 등 처음 듣는 나무들이 많다. 산에 가면 각양각색의 나무들만 내 눈에 보일뿐인데 정말 다양했다.
네 번의 강의만으로는 산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내 머릿속은 아직 정리가 되지 못했지만 그래도 조금은 나무의 마음을 배울 수 있어 좋았다.
나무는 자신의 생명이 끝나도 다른 나무에게 수액을 옮겨주고 조직을 하늘 높이 올려준다. 또한 자기를 과시하며 혼자만 높이 자라지 않고 양분을 나눠주며 커간다고 하니 한 자리에서 묵묵히 그곳을 지키는 나무가 달리 보였다. 답답할 만도 한데 그 자리에서 스스로 깨우쳤다니 다시 보고 또 보게 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나며 매일이 평범한 듯 하지만 비바람과 눈, 햇볕으로 그 옷을 한 겹 한 겹 벗기도 하고 입기도 하며 아마 세상 이치를 깨달았겠지.
나도 나무처럼 살고 싶다.
장대비 쏟아지는 날에는 우산을 함께 쓰고
해가 짱짱한 날 땀이 쏟아질 때는 시원한 물도 함께 마시며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에는 서로 토닥이며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눈이 펑펑 내리는 날에는 꼭 안아주며 견뎌보자며
그 자리에 함께 있고 싶다.
아니 그곳에서 한평생 함께 하고 싶다.
그 어느 날 내가 산에서 죽게 되면 자일로 맺어진 오랜 친구 자네에게 이 유언을 남겨두겠네
우리 어머니를 만나서 전해주게. 내가 행복하게 죽어갔다고.
내 마음은 언제나 어머니 곁에 있었기에 조금도 괴롭지 않았다고.
아버지께 전해주게. 나는 어엿한 사나이였다고.
아우에게 전해주게. 이제 바통을 넘긴다고.
아내에게 전해주게. 내가 아내 없이 산에서 살아왔듯이 내가 없어도 꿋꿋하게 살아가라고.
자식들한테 전해주게. 에탕송 계곡의 암벽에서 언젠가는 내 손톱자국을 발견하게 될 거라고.
그리고 나의 벗 자네에게도 부탁이 있네. 내 피켈을 거두어주게.
이 피켈이 치욕스럽게 썩는 걸 바라지 않네.
등산로에서 멀리 떨어진 인적 없고 전망 좋은 비탈에 가져가서
오직 이 피켈만을 위하여 작은 돌무덤을 쌓고 그 위에 피켈을 꽂아주게.
빙하 위에 빛나는 새벽의 빛을
능선 위에 붉은 저녁 햇빛을
나의 귀여운 피켈이 되쏘아 비칠 수 있도록 나의 친구 그대에게 전할 선물 나의 해머를 받아주게.
그리고 화강암에 피톤을 받아줄 것을 그것은 모서리 칠 만큼 나의 육체를 흔들었나니 암벽과 능선에 한껏 그 소리가 울리게 하여 주게.
아아, 친구여 나는 그대와 함께 항상 있나니
국립 산악 박물관에 갈 때마다 내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시로, 강의를 듣고 다시 올라가 마음속에 담았다.
속초는 지금 '문화도시'를 향해 돛대를 달고 앞으로 순항 중이다.
지역 스스로 도시의 문화 환경을 기획, 실현하고 도시 브랜드를 창출할 수 있도록 정부가 예산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주민들이 직접 참여한다. 물론, 스스로 지역의 문화적 가치를 재발견해 지역 고유의 문화 발전과 지역 공동체 회복을 목표로 한다. 올해는 2번째 도전으로 다양한 볼거리, 즐길거리 등에서 더 나아가 지역에 필요한 인문학 강의도 단발성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내용의 연결고리를 이어 기획하고 강의한다.
그중에 첫 번째인 '설악, 산의 인문학'은 내용이 광범위해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속초에 살면 어디든 설악산이 보이듯 그 하나만으로도 존재감은 확실하다. 네가 있어야 내가 있기에 현재 난개발로 여기저기 몸살을 앓고 있는 속초가 이제는 잠시 멈추고 산, 바다, 그리고 마을의 어우러짐을, 그 멋스러움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