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의 숨은 보물, 싸리재길

[속초 8경_청대산]

by 지금도바다

속초 살이 6년 차로 속초 8 경과 사잇길을 찾아 걸어 다니곤 했는데 마지막 남은 곳이 '청대산'이었다. 평소 오르막에 익숙지 않아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벌써 6년이 지났다. 청대산은 230M로 가파르지 않은 산이지만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정말이지. '오늘 시간 괜찮아요?'라는 급 번개 문자로 속초 토박이 선생님과 산에 오르게 됐다.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듯 발걸음 가볍게 생수 2병을 들고 선생님을 만났다.



산을 오를때는 언제나 경건한 마음이 든다


청대산은 동네분들이 운동을 다닐 만큼 친숙한 공간이다. 진입로가 여러 곳으로 편하게 오르면 된다.

혼자 걷는 길도 좋지만 가끔씩은 담소를 나누며 천천히 오르는 것도 좋다. 오랜만에 발을 맞춰 걷는다.

산을 좋아하는 선생님은 발걸음이 가볍다. 부담 갖지 말고 걸을 수 있는 만큼 오르면 된다고 했는데 그래도 긴장된다. 중간중간에 숨도 고르고 그동안 쌓였던 얘기도 했다.

얼마나 올랐을까, 의자가 있는 작은 전망대가 보인다. 속초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정말 멋진 곳이다.

사진작가로도 활동하시는 선생님도 셔터를 계속 누르셨다. 어제 내린 비로 속초 날씨는 화창하다.

파란 하늘에 구름도 있고 새들도 지저 기고 흙냄새도 향긋하게 올라오는 기분 좋은 날이다.



흙길은 언제 밟아도 푹신하고 냄새가 좋다



청대산은 청룡암, 신라 샘으로 갈 수 있는 갈래길도 있어 어디로 내려가도 좋다.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정상에서 내려와 오늘의 목적지인 '싸리재길'을 걷기로 했다.

누구한테도 얘기해 주고 싶지 않은 '보물의 공간'이라는 말에 너무나 와보고 싶었다.

특히,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 바람 부는 날, 특정한 날에는 더 아름답다는 길, 빨리 걷고 싶다.



높이 솟은 빌딩들의 모습이 낯설다. 속초다.



싸리재는 3KM가 넘는 길로 도문동과 노학동을 잇는다. '사리재''구불구불 한 고개'라는 옛 고어로 '싸리재'로 바뀌었다. 송림이 가득한 길로 소나무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아름다운 길이다. 그 향기까지 이 글에 퍼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데.



소나무들이 주인인 공간



담양 삼나무 길이 생각날 만큼 송림 싸리재길이 여기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깨가 으쓱해진다.

속초도 걸을 수 있는 길은 많지만 이렇게 운치 있는 길을 만나긴 어렵다.

걸어도 좋고 차를 타도 좋지만 이 길은 걸어야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오르락내리락하며 주위도 둘러보고 또 뒤돌아 다시 걸어야 이 길을 비로소 걸었다 할 수 있다.

사람도 앞뒤가 다르듯 길도 그렇다. 앞에는 해가 쨍쨍하게 비췄다면 뒤로는 바람이 불 수도 있기에 나는 뒤돌아 가는 길을 놓치지 않는다. 함께 걷는 선생님과 '길을 보는 시선'이 일치해 걷는 내내 무엇보다 마음이 편했다. 다시 걸어가는 길에는 햇볕이 소나무 사이사이로 스며들며 푸르빛이 반짝 반짝였다.



걷다보니 그 짧은 시간에도 날씨가 시시각각 변한다



싸리재의 어원으로는 다른 설도 있다.

원래는 '살인재'라는 고개 이름으로 산적들이 지나다니는 상인이나 행인을 습격해 물품을 빼앗고 살인을 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나중에는 전쟁 시 왜군이 이곳을 지나다 많이 죽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많은 사람이 죽어 원한을 가진 귀신들이 나왔다는 소리도 있어 한동안 사람들이 다니지 않았다고도 하니 사연의 길이기도 하다. 지금도 상례는 지나지 않는다는 자료도 있듯 수많은 설들이 존재한다.


속초 토박이에게는 여러 애환이 있는 길이기도 하고 재미있는 무용담도 있고 추억도 있는 길이다.

누군가는 이 고개에서 호랑이를 만나 맞짱을 떴다는 얘기도 있다. 정말 이곳에 호랑이가 살았을까.

우거진 숲길과 산으로 이어지는 지형을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예전 좁은 고갯길을 넘어 초등학교를 다녔다고 하니 신뢰성은 있다.

가끔은 친구들과 휴일에 닭서리를 했다는 추억 얘기도 있다. 지금은 옥수수 서리도 하면 안 되지만 그때 동네 인심이 그랬다. 서리하다 걸리면 경찰서보다는 일을 하게 하거나 값을 지불했다. 서리 한 닭은 청대산으로 올라가 소변으로 진흙을 대신에 흙을 덮는다. 구워지면 털도 자연스레 정리돼 꼬들꼬들한 닭이 구워진다고 하니 듣는 내내 생생한 사실적 묘사에 상상하고 말았다.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선명한 건 좋은 추억이 더 많기에 웃으면서 얘기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현재는 여러 전설들이 묻힐 만큼 하늘 높이 솟은 소나무들의 늠름함과 꼿꼿함에 무서움보다는 곧은 절개를 느낄 수 있는 길이다. 길을 걷는 내내 묵직함이 다가온 건 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였으리라.

결코 가볍지만은 않는 길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엄마 가슴처럼 포근한 길로 은은한 향기를 머금고 있는 혼자 간직하고 픈 공간이다. 왜 '보물의 길'인지 걸어봐야 알 수 있다.




속초는 어디를 걸어도 설악산이 보이고, 울산바위가 보인다



속초에 살며 외롭다고 느껴질 때 다가온 사람들, 그중 조용하고 마음씨 좋은 한 분과 함께 걸으며 시원한 냉면도 한 그릇 먹고 커피도 한잔 하며 아직도 내가 여기 살고 있다는 게 나쁘지 않았다. 자꾸 내 마음이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하는데 아직 머물고 있는 이유일까. 나는 속초를 떠날 수 있을까.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이라고 하지만, 이 얽히고설킨 전깃줄처럼 아직 내 속마음도 엉켜진 실타래처럼 복잡하다



싸리재길은 어디서는 '명품 길'이라도 하지만 어떤 수식어보다 '숨을 쉬며 걸을 수 있는 길'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잠시 모든 걸 내려놓고 이 길을 걷는다면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기에 나는 지금도 걷는 이 순간을 미룰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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