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길의 만남, 해파랑길 46코스

[바다를 보며 걷는다_15KM]

by 지금도바다

어제 내린 비로 오늘은 아침부터 날씨가 맑다.

바닷길이 이쁘다는 해파랑길 46코스를 걷기 위해 가벼운 차림으로 나왔다.

시작점은 속초 '장사항'으로 집에서 10분 거리다. 걷다 보면 바람은 잦아들겠지 했지만 웬일인지, 바람은 점점 세게 분다. 일기예보를 확인하니 올해 '첫 한파'란다. 가는 날이 장날이다.

강원도는 한번 바람이 불면 내 몸이 날아갈 듯 무서울 때가 있는데 바로 오늘이 그날인가. '어떡하지'하는 생각을 잠시 하며 걸을 수 있는 만큼만 걷자 했다.



20191115_074548 - 복사본.jpg 매일 바다를 보며 하루를 시작한다



해파랑길은 바다를 좋아해 대부분의 길을 중간중간 걸었고 완주도 했는데 기록을 남기기 위해 이날은 부지런히 시작했다. 장사항은 너무도 익숙한 곳이라 해파랑길을 인증하고 46코스 첫출발지점을 통과했다.

켄싱턴호텔까지는 도보길이 잘 되어 있고 걷는 동안 달리는 차들의 소음이 있다. 또한 '국토종주 동해안 자전거길'로 정비가 완성된 길이다. 속초에서 고성으로 넘어가기 전에 '속초 해양경찰충혼탑'이 보인다.

버스로 지나갈 때마다 궁금했는데 걷다 보니 충혼탑을 가까이 볼 수 있어 잠시 올라 숨을 고르고 멋진 바다를 만났다. 높이 올라갈수록 경치가 좋으니 바다를 좋아한다면 가 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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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이기도 하고 속초사잇길인 '장사영랑해변길'이기도 하다



50분 남짓 걸었을까, 켄싱턴 리조트에 도착해 바다를 보며 걸었다. 문득 걷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남쪽에는 땅끝마을이 있듯 북쪽으로 길게 뻗은 바닷길을 걸으면 끝은 어디일까.

그날이 온다면 누구보다 먼저 길을 가고 싶다.

바람이 많이 불어 머리까지 지끈지끈 시려오지만 가슴은 뻥 뚫려 기분은 기대 이상이다.

가끔씩 바람 불 때나 비가 올 때 걷다 보면 몸은 힘들어도 가슴이 후련할 때가 있지 않는가.

지금은 오롯이 이 기분에 따라 걷는 게 행복하기에 즐기고 또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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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도에 따라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다



해파랑길은 처음 구간에는 안내표지가 잘 보이지만 중간부터는 잘 찾아야 길을 헤매지 않을 수 있다.

잠시 다른 곳을 갔다 그 길을 찾으려면 자꾸 다른 샛길로 빠지기에 '방향표시'에 연연하기보다는 한 방향으로 걷다 보면 펄럭이는 해파랑길 리본도 만나고 표지판이 보이기에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쭉쭉 걸어가면 된다. 더군다나 이 길들은 나한테는 익숙한 길이라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속초로 이사온지 6년째로 여기저기 걷다 보니 어느덧 동네길이 됐다.



KakaoTalk_20211217_105731671_09.jpg 내가 걷는 길이 때론 앞이 보이지 않아도 멈추지 않고 걷다 보면 어느새 길이 다가와 있다



가끔 바다를 보러 온 봉포를 지나 청간정에 갔는데 공사 중이라 올라갈 수가 없었다. 위에서 보는 바다가 예술이라 한번 보고 싶었는데 아쉽긴 하다. 하지만, 그 아래로 내려와 보니 바다 빛이 참 파랗고 예뻤다.

바람은 세차게 불지만 소란하지 않고 차분하게 올라오는 파도를 보니 걷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에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다며 지금의 바다를 만나지 못했을 테니까.

스무 살 청춘 때 만난 바다는 나에게 정말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지금의 감정도 있지만 오래 묵혀두었던 조각들을 합치기도 날려버리기도 하고 내일을, 더 앞날을 기다리며 나를 다독이기도 한다. 무엇보다 바다를 보면 잡생각이 나지 않고 마음이 편안하다 못해 깨끗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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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간정은 '여기가 무릉도원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만큼 머물고 싶은 공간이다



어느덧, 아야진 해변에 도착하니 기분이 더 상쾌했다. 제주도 이호해변의 무지개 도로를 몇 번이나 갔었는데 여기도 무지개 도로가 펼쳐져있다. 더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다른 곳을 찾아다녔다니, 다음에 다시 한번 와서 알록달록한 길을 걸어야겠다. 무엇보다 바둑판 길과 해변길이 너무 멋지다.

잠시 따뜻한 차 한잔 마시고 싶었지만 헝클어진 머리와 모래바람을 맞은 탓에 내가 봐도 너무 지저분했다. 그래서 멈추지 않고 다시 걸었다.

오르막길로 갈 때는 바람이 세차게 불어와 잠시 주춤했지만 완주를 위해 계속 앞으로 나갔다.

도착한 천학정은 계단을 오르면 작은 정자가 있다. 볼거리가 많은 곳은 아니지만 풍광만큼은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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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 깡총깡총 뛰고 싶다



해파랑길은 도로, 바다, 마을길을 지나는데 걷는 내내 다음은 '이 길이 보일 거야' 하는 기대감이 있다.

하지만 전혀 다른 길, 막다른 길이 나올 수도 있는 기대 이상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걸어보지 않는 사람은 걷는 사람의 감정을 잘 알지 못한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 번쯤 걸어본 사람은 충분히 공감하며 걸을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이 묵묵한 걷기는 걷는 내내 이 시간을 집중하기에 다른 생각 할 틈이 없다. 그래서 그때만큼은 머리를 비우고 깨끗한 자신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다. 가끔 속 시끄러우면 속을 비우듯 '걷기'도 같다. 넘침보다는 부족한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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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길을 걷는다는 것, 내 심장이 함께 움직인다



올해 첫 한파인 바람이 많이 부는 날, 체력은 점점 바닥나고 걸음은 점점 느려지지만 이번 길에서 꼭 보고 싶은 곳이 '능파대'라 마지막 힘을 냈다.

멋진 파도가 치는 능파대에 올라 센 바람의 기운을 느끼고 싶었다. 기암 암석도 보며 걸어온 길을 보상받고 싶었다. 걷기만 해도 좋지만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여행다운 기분도 맛볼 수 있는 1석 2조다.

사진으로 봤던 암석은 더 웅장하고 위, 아래로 넓게 펼쳐져 곳곳이 사진 스폿이다. 날씨만 좋았다면 도시락도 까먹고 맥주도 한잔 하고픈 곳이다. 잠시 앉아 암석과 모레, 저 멀리 보이는 다리를 보며 조금의 이질적인 모습을 눈에 담았다. 큰 도시도 아닌데 갑자기 내가 있는 이곳이 넓어 보였다.

아마도 걷는 동안 내 마음의 넉넉함이 생겨 더 느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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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파대는, 직접 보아야 더 웅장하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 몸은 지치고 머리는 삐죽삐죽 서고 시려오지만 걷기를 잘했다.

차가운 기운이 내 맘속으로 들어오며 오히려 따뜻해졌다.




KakaoTalk_20211217_104729144_21.jpg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듯 길도 걷다 보면 끝이 보이기에 우리들의 인생과도 닮았다




해파랑길이란?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이르는 동해안의 해변길, 숲길, 마을길 등을 잇는 750Km의 장거리 걷기 여행길이다. 동해안의 상징인'떠오르는 해'와 푸르른 바다색인 '파랑', '~와 함께'하는 조사 '랑'을 조합한 합성어로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보며 파도소리를 벗 삼아 함께 걷는 길"이라는 뜻이다.

[ 46코스 안내 : 장사항 - 켄싱턴 리조트 - 봉포항 - 청간정 - 천학정 - 능파대 - 백도항 - 삼포해변 ]


능파대란? 육계도(land-tied island)를 이루는 암석해안 상에 발달한 대규모 타포니(tafoni) 군락이다.

‘파도를 능가하는 돌섬’이라는 능파대의 이름은 파도가 몰아쳐 바위를 때리는 광경을 빗대어 붙여졌다. 육계도는 모래더미가 쌓여 육지와 연결된 섬을 말하며, 타포니는 암석의 측면(암벽)에 벌집처럼 집단적으로 파인 구멍들을 가리킨다. <출처 : 강원 평화지역 국가지질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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