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 이야기의 시작, 40계단 마을

[1세대 실향민들이 살고 있는 뒷이야기]

by 지금도바다

'오케이 속초' 소식지 모임에서 '사이렌 마을'의 위치를 묻는 말로 이야기는 시작됐다.

'속초 사잇길 3코스'는 '수복탑에서 중앙시장을 지나 40계단 마을'로 끝난다.

다른 코스는 다 걸었는데 40계단만 아직이다.

속초 토박이들이 아니었다면 무심코 지나쳤을 작은 길이다.

명태 마을로도 불리는 '40계단'은 속초에서 보존의 가치가 있는 장소로 실향민의 마음 앓이가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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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계단 시작이다



중앙시장 공용 주차장에서 좀 더 위로 오르면 무심코 지나치는 작은 계단이 보인다.

사잇길이라는 표지판은 있지만 선 듯 내키지가 않았다. 이날은 시장에 들렀다 맘먹고 올라갔다.

이 계단이 그토록 얘기했던 그 명태를 말렸던 곳인가.

누군가에게는 추억이 서린 곳,

누군가에게는 숨기고 싶었던 곳,

철 손잡이에 직접 명태를 걸기도 하고 실로 엮어 나무로 매달기도 했던 어디를 가도, 명태 철에는 걸 수 있는 모든 곳이 덕장이었다.



20220609_174157.jpg 그 많은 명태들이 지금은 다 어디 갔을까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는 1.4 후퇴 후 피난민들이 이곳에 판잣집을 짓고 살았던 터로 처음에는 흙으로 된 무늬만 계단이었는데 집들이 계속 늘어 정식 계단이 들어섰다. 지금은 그 시절의 흔적이 세월에 묻혀 남아있는 빈집도 많지만 한 번쯤 속초에 있다면 이 길은 꼭 걸어봐야 한다.

우리들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리고 부모님이 살았던 곳이다.

나도 이북에서 다섯 명의 어린 아들들의 손을 잡고 넘어온 친할머니가 계셨다.

그렇기에 이 길이 낯설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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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 고추, 파를 심었다



꼬불한 골목길을 걸으며 어린 시절 살았던 신촌 철길 '땡땡 거리'가 생각났다. 그곳도 철길을 중심으로 옹기종기 마을이 형성됐고 작은 여러 길을 걷다 보면 재미가 있다. 이 길도 옛 철길을 깃점으로 모여 살며 다시 이북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아마도 견디며 살지 않았을까. 높은 산동네에 집을 지은 것도 그 당시 가장 접근이 쉬운 땅이었기에 가능했겠지만 높은 곳에서 멀리 보이는 고향을 그리워하지 않았을까.

아련한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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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수퍼, 오랜만이다



40계단 마을에 오르면 첫 시선은 전혀 생각지도 못 한 미니 슈퍼와 맞닿는다. 아직도 영업 중인 구멍가게다.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정다운 가게인데, 궁금했지만 쑥스러워 들어가질 못 했다. 다음에 가면 초코파이 하나, 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어야지. 당 충전에는 찰떡궁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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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날, 걷다가



슈퍼를 지나는데 주민 두 명이 비료포대를 들고 내려간다.

무거운지 중간에 잠깐 쉬고 말없이 다시 들고 간다.

이런 마음으로 형, 아우 하며 여기서 사셨겠지.

정이 스며져 있는 곳, 이곳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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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곳, 나와 가까이 있다.



사는 곳이 불편해도 여기 살 수밖에 없었던 피난민들이 있었다면 지금은 이곳이 고향이라 생각하고 살겠지. 여기저기로 뻗어 있는 오르막길, 내리막길을 걷다 보면 설악산 울산바위도 보이고 바다도 보이는 명당이다. 저 멀리 보이는 바다를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금은 사이사이로 비집고 들어선 높은 건물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나도 나이가 든 걸까.

속에서 울컥하는 마음에 지난 세월이 쓸쓸하고 덧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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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킨 전깃줄 사이로 울산바위가 보인다



현재 속초는 여기저기 난개발로 골치를 앓고 있다. 또한, 이곳도 재개발로 예외는 아니다.

다른 지역도 오래된 곳을 정비하며 흔적을 지우고 깔끔한 건물이 들어서듯 여기도 변할 수는 있다.

하지만, 오래된 마을과 공존하며 상생하는 도시도 많다.

서울의 문래동 예술촌은 철강으로 생업을 했지만 시대의 흐름으로 이제는 저마다의 색깔을 지닌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사진동호회들이 주말에는 줄지어 찍을 만큼 명소로 변했다.

종로 익선동도 골목골목 다니다 보면 옛 추억을 만날 수도, 현재를 만날 수도 있다.

다른 지역 어디보다 속초의 이 공간들은 서울과 닮았다.

부산의 감천문화마을 역시 전쟁으로 피난민들이 갈 곳이 없어 산비탈로 올라가 집을 짓고 마을을 형성했고 시간이 지나 재개발구역으로 사라질 위기였지만 이유야 어찌 됐든 도시재생 사업으로 살아남았다.

역시, 두 공간도 역사적인 가치로 닮아있다.


강원도는 현재 도시재생 사업이 한창이다. 그 재생사업을 부러 다른 곳에 투자하지 말고 보존할 수 있는 곳, 역사적 가치가 있는 곳에 투자를 하면 좋으련만. 무엇보다 속초의 중앙시장 뒤쪽에 있는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곳에 우리들의 한이 남아있고 그리움이 서려있는 공간이 사라지는 게 아쉽다.

문화도시는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발굴하고 보존하고 시민들과 함께 상생하는 데 있다.

늦지 않게,

후회하지 않게,

오랫동안 그 모습을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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