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_소도시여행_그리움에 자꾸 생각나는 전차 여행]
도쿄 날씨는 너무 덥다. 가을이 여름인 듯 낮에는 반팔을 입고 다녀도 될 만큼 날씨가 좋다.
그런데 내일은 비가 온다니 그날의 날씨에 장단을 맞추기가 어렵다.
도착한 다음날 바로 가마쿠라, 에노시마섬으로 가는 열차에 탔다.
첫날은 아사쿠사를 가볍게 산책하려고 했는데 하루 건너 비예보가 있어 일정을 앞 당겼다.
신주쿠역 오다큐 라인 창구로 가서 프리패스를 사고 한국 팸플릿을 요청하니 없다며 영문판을 건네주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하며 챙겼다. 이미 가방 속에는 5년도 더 지난 팸플릿이 들어있다.
여행을 하면 한글로 된 안내서를 받을 수 있는데 한 번 보고 버리기에는 많이 아깝다. 한국에서 발행한 여행책자보다는 현지 정보가 훨씬 정확하기에 나는 대부분 챙겨 놓는다. 특히, 우에노역에 있는 관광 정보센터는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직원도 상주하고 있어 여행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4년 만에 온 도쿄는 지역적으로 세분화된 책자들이 많았고 관람료도 20~35%는 인상됐다.
우리나라 물가만 오른 게 아니다.
마스크도 우리나라만 쓴다고 연일 떠들지만 일본도 100% 착용이다.
아시아 사람들은 어딘지 모르게 닮았다.
오전의 오다큐 라인도 사람들로 넘쳐 30분을 넘게 서서 갔다. 일찍 출발했는데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지. 시내로 들어오는 방향도 아닌데 궁금하긴 하다. 다 어딜 가는 걸까.
오늘 오길 잘했다.
도쿄 도착 한 다음날이라 부담스러웠는데 걸어 다니기 딱 좋은 날이다.
그리고 저 멀리 에노덴을 보는 순간 너무 반가웠다. 처음 가마쿠라 여행에서 만났던 에노덴 전차는 내 감성에 딱이었다. 좁은 선로로 마을을 지나 덜컹거리며 달리는 전차 안에서 보이는 소박한 시선들이 나의 감정을 자극시켰다.
제일 먼저 슬램덩크로 유명해진 코코마에 역에 내려 인증숏을 남겼다. 전차가 지나가야 하는데 바다도 예쁘니까 배경에 만족한다. 시간이 되면 한 시간 정도 여유롭게 걷는 것도 좋겠다. 다시 에노덴을 타고 마지막 종착역인 가마쿠라 역에 내렸다. 고마치도리를 걸으며 보이는 곳을 들어갔다. 안내 표지판도 잘 돼있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첫 번째 내 시선에 들어 온건 여행책자에도 없는 무덤이 있는 곳이다. 잠깐 들렀지만 일본 사람들은 제법 와서 경치도 보고 잠시 머물러 묵례도 한다.
어린아이들부터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소풍날이기도 한 날, 어딜 가도 사람들이 많다.
제니아라이벤자이텐, 츠루가오카하치만구를 지나 역에서 30분 정도 걸어가면 만날 수 있는 조그만 절, 1332년에 건립된 호코쿠지로 갔다. 절보다는 본당 뒤편에 조성된 대나무 정원이 있는 곳,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로 가마쿠라에 다시 온 이유다.
어디를 가도 '대나무'하면 이곳이 생각날 정도로 빽빽한 초록색의 향연이 매력적이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햇빛이 내리쬐면 그 빛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멋스러운 곳으로 한 번 보면 잊을 수가 없다.
한 바퀴 돌고,
두 바퀴,
세 바퀴를 돌고서야 말차 한잔 마시는 작은 카페에 앉았다.
옆에는 일본 할머니 두 분이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데 갑자기 드르륵 소리를 내며 연속 촬영이 시작됐다.
깜짝 놀라시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나도 모르게 크게 웃었다. 서로 눈이 마주쳐 함께 웃었다.
무심코 옆 자리에 앉아 데면데면했는데 소리 하나로 웃고 사진도 찍고 잠깐이지만 유쾌했다.
짙은 초록색의 말차를 마시며 잠시 눈을 감았다.
말차 특유의 풋풋한 맛이 목에 아직 남아있다. 천천히 음미하며 좀 더 앉아있었다.
가마쿠라는 신주쿠에서 오전 8시 전에 출발해도 하루 시간이 부족할 만큼 볼거리가 많다.
이제는 속도를 더 내야겠다. 에노덴을 다시 타고 하세 역으로 가서 하세데라와 코토쿠인을 찾았다.
하세데라는 721년에 세워진 오래된 절로 입구부터 정원이 눈에 띈다. 계단을 올라가 본당인 관음당으로 가면 '하세칸논'이라 불리는 높이 9.18M의 11면 관세음보살상을 모신곳으로 금박으로 화려한 멋을 뽐내기로 유명하다.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가마쿠라의 전망대'이기도 하다. 시진을 찍을 수 없어 화려함을 남길 수는 없었지만 그래서 더 한 번 찾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코토쿠인은 2.35M의 '큰 바위 얼굴'을 가진 11M의 대불이 있다. 다른 볼거리가 없는 없고 가운데 덩그러니 큰 대불만 있지만 그 크기에 놀라 셔터를 누르게 된다. 나올 때는 본전이 생각나는 곳이다.
그래도 또 찾아가는 것이 여행이기에 또 언제 올지 알 수 없으니 오늘도 다시 한번 왔다.
이제 에노시마섬으로 가기 위해 마지막 에노덴에 올랐다.
운 좋게 제일 앞자리에 앉아 경적을 올리며 마을 사이로 길을 지나간다.
마지막, 전차의 운치를 한껏 느끼며 에노덴과 내가 함께 달려간다.
이 길은 이제 쉽게 잊히지 않겠다.
그리움이 한 겹, 두 겹 싸이며 나는 또 에노덴과 함께 달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여행이란
그때 첫걸음을 잊지 못해 다시 찾아오는 것, 그리고 다시 그리움을 남기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