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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도바다 Jan 20. 2023

에노시마(江の島), 환상의 불꽃놀이

[일본_소도시여행_바다에서 피어오르는 불꽃 축제]

오후 4시가 넘은 시간 마지막으로 가마쿠라에서 에노덴을 탔다. 

왜 이렇게 어둡지. 

벌써부터 날이 어둑해졌다. 


아침부터 출발해 몸은 지쳤는데 강행군으로 쉴 수가 없다. 커피 한 잔 하고 싶은데 갈길이 바쁘다. 

에노시마 역에 내려 20분을 걸어야 섬 입구에 도착한다. 정말이지, 벌써부터 깜깜하다. 

한국과 시차도 없는데 해가 일찍 진다. 기분 탓인가. 어두워지면 괜히 기운도 의욕도 떨어진다. 

그래도 에노시마에 왔으니 사무엘 코킹 식물원은 가봐야겠지. 

전망대에서 본 바다와 전경은 지금도 가끔 그 바다가 생각날 정도로 멋진 곳이다. 

섬을 연결하는 600M의 긴 다리를 직진하면 초입부터 음식점과 호텔,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입구까지 즐비하게 이어진다.

에노시마 맥주가 참 맛있었는데 이번에도 마실 수 있을까. 





에노시마 캔들까지는 걸어갈 수도 있고 에스컬레이터를 탈 수도 있지만 너무 깜깜해서 걷기는 힘들다. 

그리고 비탈길의 경사가 꽤 있어 될 수 있으면 만능 입장권을 구매하고 기계를 이용하는 게 좋다. 

크리스마스 준비로 식물원은 벌써부터 반짝반짝 인다. 

1883년 영국인 무역상 사무엘 코킹이 이곳에 정원을 꾸미기 시작한 게 식물원의 유래가 됐고 소철, 야자 등 아열대 식물 750여 종이 자라고 있다. 





낮보다는 밤에 오면 곳곳의 알록달록한 불빛에 반하는데 겨울에 오니 운치가 더 깊다. 

반갑게도 불빛을 환하게 켜놓고 멀리서 온 나에게 인사를 하는 걸까. 

환상적인 환대에 피곤함이 눈 녹듯 사라졌다. 

통합교통패스로 오기는 했는데 고민이 많았다. 지난번에 봤으니 '그냥 갈까'했는데 오길 잘했다. 

잠시 흔들린 마음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작은 함성을 질렀다. 

마치, 내가 섬의 공주가 된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상상의 날개가 하늘을 향해 펼쳐지고 있다. 

가본 곳이라고 해서 지나친다면 계속 새로운 곳만 찾게 된다. 하지만, 이미 봤다고 해도 계절, 날씨에, 감정에 따라 전혀 새로운 곳일 수도 있고 아니면 다시 온 추억의 장소가 될 수도 있다. 





오늘은 전혀 새로운 곳이다. 지난번보다 크리스마스로 한껏 화려하게 치장한 모습에 내 얼굴은 웃음꽃을 피우며 구석구석을 걷고 있었다. 쓸데없이 불빛들이 그리울 때가 있다. 

서울에 살 때는 그 모습이 당연해 생각지도 않았는데 속초에 살다 보니 불빛들에도 마음을 주게 된다. 

밤이 되면 더 으슥해지는 속초는 불빛을 찾기가 어렵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더 화려함을 쫒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이의 앞자리가 바뀔 때마다 나의 몸은 점점 오그라드는데 세상은 왜 점점 좋아질까. 

과거보다 현재가 그리고 미래가 더 빛날 수밖에 없으니 할머니들이 왜 오래 살고 싶어 하는지 이해가 간다. 

그만큼  정든 세상을 떠나기 싫어진다. 

시원하게 전망대까지 찍고서야 돌아 내려왔다. 

다리를 다시 건너 역으로 가려는데 수십 명의 사람들이 목을 내밀어 바다를 보고 있었다. 

6시가 되려면 4분이 남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도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일본에서 소도시 여행을 다니다 보면 불꽃놀이를 하는 시기가 있다. 바로, 지금인가 하는 나의 직감을 믿으며 기다렸다. 





저녁 6시 정각, 

저 멀리 보이는 방파제에서 '펑펑'하며 첫소리가 울려 퍼졌다.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그것도 살면서 내가 몇 번 밖에 보지 못했던 불꽃놀이를 여행을 시작하는 첫날, 

에노시마에서 만났다. 

5분도 채 되지 않았던 그 짧은 찰나의 시간들은 앞으로 3주 동안 내내 기억될 것이다. 

이 멋진 날, 내가 여기 있었다. 

나를 이 시간에 여기에 있게 해 준 여행, 여행이란 게 이렇다. 

떠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그 우연한 재미에 푹 빠질 수밖에 없다. 





나에게 여행이란 

내 심장이 터질 듯 한 불꽃놀이를 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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