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도시 여행_시즈오카현_고요한 감정이 올라온다]
도쿄의 단풍은 11월 말이 절정으로 늦은 가을 떠나는 여행에 기대감이 컸다. 속초에서 살면서 설악산 가기도 빠듯한데 낯선 곳에서 만나는 가을은 어떨까. 도쿄 시내를 걸어 다녀도 울긋불긋함에 기분이 들떴는데 슈젠지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아침 일찍 숙소에서 나와 슈젠지로 가는 하코네 열차를 탔다. 학생들의 시험기간으로 열차 안은 학구열로 불을 지폈다. 한 문제라도 더 보려고 버스 안에서 나도 책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몰랐지만 제일 편했던 시절이었다. 이들도 모르겠지. 공부할 때가 만사형통이란 걸.
버스를 타고 슈젠지에 내려 걷다 보니 저 멀리 벌써 붉은빛들이 보인다. 이즈 반도에서 가장 유서 깊은 온천 마을로 가츠라 강을 중심으로 마을, 료칸과 카페, 상점들이 있다. '작은 교토'라 불리는 만큼 기대감이 컸던 곳으로 어디를 가도 아기자기한 모습이다. 더군다나 한 시간 내로 다 주위를 돌아볼 만큼 작은 마을로 천천히 산책하며 만끽하면 된다. 나는 좀 더 멀리도 가고 간 곳을 또 걸어 세 바퀴를 돌았다. 그래도 너무 즐거웠다. '슈젠지'의 이름은 절에서 유래했다. 마을 중간에 위치한 '슈젠지 절'은 130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어 가치로도 매우 높지만 비극적인 사랑의 이야기를 다룬 가부키 '슈젠지 모노가타리'의 배경으로 더욱 유명해졌다.
슈젠지가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역시 단풍철로 11~12월에 만날 수 있는 절경은 와서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 운 좋게도 내가 처음 온 계절이 가을이라 행복했다. 눈에 들어오는 순간 그 멋스러움에 환호성을 질렀다. 골목길을 돌자마자 사람들의 놀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만큼 보이는 모든 곳이 아름다은 곳이다. 어느 누가와도 여기서 쉼의 시간을 갖는다면 만병통치약이 필요 없을 만큼 분위기는 갑이다.
절에 흠뻑 빠졌다 나오면 앞에 가츠라가와 강이 흐르고 5개의 붉은 다리가 놓여 있다. 가장 유명한 다리는 가츠라바시로 인연을 이어준다는 이야기가 있어 연인들에게는 좋은 기운이 있는 곳이다. 굳이 지도를 보지 않아 괜찮다. 다리 사이로 모든 볼거리들이 모여있다. 돗코노유를 지나 다리를 건너면 대나무가 400M 길게 뻗은 초록색 숲길을 만난다. 중간에 평상도 있어 잠시 앉아 높이 솟은 대나무와 그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꼭 봐야 한다. 집중하다 보면 바람소리에 흔들리는 대나무 잎은 풍경 소리보다 더 청초하게 들린다.
잠시 앉아 소리를 들었다. 유독 가을바람소리는 내 마음을 더 설레게 한다. '싸악, 휘익' 하는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몸짓은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자연의 숨소리다.
마지막, 멈췄던 곳,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었던 빨간 다리 앞, 장관이다. 가을이 이렇게 멋졌던가.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왔다 갔다를 반복하며 또 보고 다시 봤다.
영상도 찍고 사진을 찍었던 곳, 내 눈 속 저장소에도 다 담질 못 했다.
사람들이 왜 가을에 빠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 풍경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매년 다시 찾아올 수밖에 없다.
나도 내년에 또 오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때는 이즈반도에만 머무르며 바다도 보고 온천욕도 하며 여유롭게 즐겨야지. 아직 시즈오카 시내로 들어가질 못 했지만 이곳이 너무 맘에 든다. 바다도, 산도, 온천도,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단풍을 간직한 곳에 오래오래 머물고 싶다.
나에게 여행이란,
지금에 감사하는 것, 그리고 아낌없이 감정을 표현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