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도시 여행_시즈오카현_하늘에서 만난 후지산]
슈젠지를 걷다 날씨가 너무 좋아 어제 비가 내려 지나친 로프웨이를 갑자기 타고 싶어졌다.
화창한 날, 후지산은 어떤 모습일까. 너무 궁금한 마음에 4시간을 부지런히 걷다 보니 발끝에 엔진이 가동됐다. 날씨가 흐렸다면 밥도 먹고 쉬려 했는데 정말이지, 너무 짱짱하다. 여행은 날씨가 반이라는 말도 있듯 이때를 놓치지 않아야 '진정한 여행자'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내 몸의 엔도르핀이 여행이래 최상이다.
이즈 하코네 열차를 타고 세 정거장만 가면 이즈나가오카 역이다. 생소한 이름이라 몇 번을 확인했다. 하루씩 두 번의 숙소를 이동하며 오고 싶었던 곳이기에 마음이 급해졌다. 겨울 날씨로 5시면 깜깜해지고 저녁에는 다시 시즈오카행 열차를 타야 해서 복잡한 일정이지만 좀 늦어져도 괜찮다. 혼자니까. 외롭다고 느낄 때도 있었지만 눈치 보지 않고 결정할 수 있어 편하다.
역에 내려 역장한테 물어보니 버스 번호 '1번'을 알려주셨다. 30분을 기다려야 한다. 화장실도 다녀오고 주위를 둘러보니 여행자센터(i)가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오는 곳인가. 역도 제법 규모가 컸는데 버스 도착 5분 전에 발견했다. 냅다 뛰어 로프웨이 버스 번호를 다시 확인하고 정류장 이름을 발음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랬더니 찰떡같이 알아듣고 지도를 한 장 꺼내 영어로 써주셨다. 그러면서, 빨리 뛰라고 손을 크게 움직이셨다. 저 버스를 놓치면 또 30분을 기다려야 하니 힘껏 뛰었다.
일본 버스들의 시간은 정확하다. 노선이 짧아 가능한 게 아닐까. 소도시 여행을 하다 보면 더 느껴진다. 길게는 1시간 이상을 달리기도 하지만 마을 안을 도는 버스는 20~30분 만에 종점인 짧은 노선들도 많다. 15분 이상 달렸을까. 정류장에 내려 기사분이 손짓해 준 곳으로 길을 건넜다. 앞으로 걸으니 로프웨이 줄이 보였다. 매표소 안으로 들어가 표를 끊고 숨 고를 사이도 없이 바로 탔다. 혼자 그 넓은 공간 안으로 들어갔다. 혼자 로프웨이를 처음 탄다. 그것도 외국에서 텅 빈 공간에서의 짜릿함이란, 도전해 볼만하다. 무섭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덜컹거리는 소리, 바람소리에 몸을 맡기며 점점 더 높이 올라갔다. 정상까지는 10분 정도 오른다. 흔들리는 몸체에 몸이 움직이며 겁은 먹었지만 오랜만에 느껴보는 긴장감으로 정신이 바짝 들었다.
산 정상에 오르자마자 빠른 걸음으로 나오니 내가 어떤 걸 상상했던 기대 이상의 파노라마가 펼쳐졌다. 하늘과 가까이 오르다 보면 이곳은 어디인가, 천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는데 저 멀리 보이는 장관에 내 마음도 붕붕 날아오른다. 새소리와 물소리, 바람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곳, 사람들의 움직임들을 보며 너무 평온했다. 각기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지만 스스럼없이 즐기는 모습들을 보며 내 마음은 더 그랬다. 이곳은 전혀 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후지산은 구름에 가려 완전히 보이질 않았다. 그래도 높이 올라 후지산뿐만 아니라, 스루가만, 하코네, 아마기산 등을 보며 다른 이즈의 풍경을 볼 수 있어 색다른 시선을 즐길 수 있었다. 일본 답게 후지산을 보며 족욕을 할 수 있는 곳도 있어 잠시 발을 담갔다. 이번 여행에서 온천과 족욕을 두루 다녔지만 여기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그것도 산 정상에서 후지산을 보며 족욕이라니, 얼마나 낭만적인가. 낭만 한 스푼, 두 스푼이 아니라 저 앞에 보이는 바다만큼 푹 빠져 버렸다.
중간에 올라오면 얇은 물길이 있다.
너무 놀랐다.
산에 웬 연못인가.
사람들이 몸의 반을 누워 카메라를 물 가까이 두고 후지산을 찍기에 나도 똑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물 위에 사람들이 서 있거나, 걷는 동작이 너무 멋지게 나왔다. 물과 후지산, 그리고 사람 이것이 삼위일체가 되어 자연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 되었다.
나도 인생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거리감이 있어 누구한테 부탁도 못했다. 그래도 찍고 싶은 마음보다 풍경이 99%라 아쉽지는 않다. 지지 않을 만큼 사진을 찍고 후지산과 닮은 음료 한 잔 마시며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렸다.
1시간을 넘게 앉아 있었는데 시간이 멈춘 듯 전혀 느끼질 못 했다. 구름은 아직도 후지산을 가리고 있다.
흰 구름아,
너는 매일 볼 텐데 지금도 그리운 거니?
나한테 양보라도 해 주면 좋으련만.
아쉽지만 갈 길이 바빠 기다리지 못하고 내려왔다. 이번 여행에서 오롯한 후지산을 만날 수 있을까.
아직 시간이 많으니까. 다시 하코네 열차를 타고 미시마로 왔다. 짐을 챙겨 이제 시즈오카로 출발할 시간이다. 아쉬울 때 떠나야 하는 게 여행의 맛이다. 오늘은 그 맛을 배터지 게 먹었다.
나에게 여행이란,
그 자리를 돌아설 때 아쉬움이 남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