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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도바다 Sep 09. 2023

시즈오카 현립미술관(静岡県立美術館)

[일본 소도시 여행_시즈오카_소도시 미술관, 사색의 길]

아침부터 비가 내려 로댕작품으로 소문난 현립미술관으로 향했다. 매 시간 23분마다 다니는 버스는 내리고 보니 종점이었다. 처음부터 말해주지. 그랬다면 내 가슴을 콩닥이며 안내 방송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텐데. 10분도 채 달리지 않는 노선이 짧은 버스였다.

표를 끊고 들어간 입구에서 이어지는 본관은 일본작가들의 현대 미술 전시가 있고 로댕관에는 지옥의 문을 포함한 32개의 조각 작품이 있다.





일본 작가의 회화작품은 사진을 찍을 수가 없어 자료가 없다. 여행에서 사진이란 내 머릿속의 기억을 소환하기도 하고 글 쓰는 데 있어 재료가 되기도 한다. 예술의 창작작품은 더군다나 시간이 지나면 무엇을 봤는지 더더욱 생각이 나질 않는다. 분명 밝은 그림들이 많았던 기억은 있는데 그것도 정확지 않다. 일본에서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다니다 보면 자국에 대한 작품, 이야기들을 촬영 불가로 표시해 높은 곳이 많다. 물론 이해한다. 관람에 방해가 될 수 있고 작품 유출에 대한 방어일 수도 있지만 세상에 나와 전시까지 하는 시점에서 입장을 바꿔 보면 과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중간부터 사진을 찍을 수 있었는데 별 의미가 없었다. 천조각이 말하는 게 무엇인지, 우리 집 거실과 똑같은 흰 시폰 커튼이 환풍기 바람에 펄럭 펄럭였다. 작품에 대한 편견은 없지만 보는 사람들,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면 작품의 가치도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림을 보고 하루, 일주일, 한 달이 지나 어떤 걸 봤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다면 그 장소도 잊힌다. '현립 미술관인 만큼 좀 더 유연한 관람 문화를 정립하는 게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보는 내내 남았다.





본관 관람이 끝나면 바로 로댕관으로 이어진다. 현재는 사진촬영이 가능한 곳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앉아서 그림 그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예약하면 그림을 그릴 수 있나.' 앉아 있는 모습만 봐도 멋지다. 이젤까지 갖추고 스케치를 했다. 너무 조용해 연필 움직이는 '사각사각'소리만 크게 들릴 뿐 너무 고요했다. 사람들을 보는 재미도 있다. 심각한 얼굴로 손을 움직이며 구도를 잡고 벌써 그림을 완성한 할아버지도 계셨다.





로댕의 조각을 프랑스가 아닌 이곳, 소도시에서 만날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시즈오카 출신 사업가가 조각을 수집해 기증했다는 작품들, 그림은 벽에 전시하지만 조각은 건물의 공간을 모두 사용한다. 그래서 그만큼 시각적인 효과가 좋고 360도를 돌며 감상이 가능하다. 작은 조각부터 내 키보다 큰 조각품까지 역동적인 모습에 반해 오히려 여기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본관보다 로댕관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찾는다고 하는데 지금은 세 명이 전부다. 비도 오는데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마지막 문이 나와 나가는 곳인지 물어보니 일본말로 길게 말씀을 하셔서 고개를 갸웃하니 잠시 멈추고 지도에 출발지점을 알려주었다. 산책할 수 있는 정원이 있었다. 작품도 있어 표시를 해주셨다. 그런데 비가 조금씩 내리는데 괜찮겠냐며 짧게 영어로 물어 한번 시도해 보겠다며 가볍게 웃고 밖으로 나왔다.  





비탈길을 올라오니 시내가 보였다. 그리고 미술관 건물도 한눈에 들어왔다. 도서관이 있고 심포지엄이 열리는 공간도 있어 규모가 컸다. 위로 더 오르니 동백꽃잎이 바닥에 가득이다. 너무 예뻐 한참을 서서 사진을 찍었다. 꽃향기가 어찌나 은은하게 퍼지는지 내리는 비에 흙냄새와 뒤엉켜 향긋한 동백차를 몇 잔이나 마셨는지 모르겠다. 90도 넘는 뜨거운 물에 꽃잎과 베이스로 흙을 넣은 차,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내리는 비를 맞으며 시간에 맞춰 다시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30분에 탔는데 맘 놓고 있다가 화들짝 놀랬다. 10분, 15분이 지나도 좀처럼 출발한 정류장으로 다시 가지 않았다. 저 멀리 보이는 기차역을 보고 내렸지만 전혀 다른 역이었다. 그래도 JR역이니까 찾아갈 수 있겠지. 버스 노선이 짧아 적자를 걱정했는데 종점부터 시작한 노선은 전혀 다른 길로 운행 중이었다. 20분 넘게 달리고 또 어디를 향해 달리는지, 나도 함께 달리고 싶은 충동이 느껴진다.

 


나에게 여행이란,

뜻하지 않는 장소에서 붉은 동백꽃을 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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