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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도바다 Jan 06. 2022

어렸을 때 형제들의 꿈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가]

    

어렸을 때 흔히 말하는 미래를 꿈꾸었던 '꿈'이 있던 건 아니었다. 막연하게 생각만 했을 뿐 실현 가능한 건지 판단이 서질 않아 포기했던 일들을 지금에 와서야 생각해 보면 ‘그때 해봤다면 내 인생은 바뀌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요즘 아이들도 꿈이 없다 하지만 그때는 더 무언가를 도전한다는 게 엄두가 나지 않았다. 뭔가를 해보고 싶어도 ‘여자가 무슨, 돈 없다. 쓸 때 없는 생각하지 말고 공부나 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기에 '처음' 시작이 쉽지 않았다.





피아노를 초등학교 4학년 때 시작했는데 딱 3년 배웠다. 그것도 1년을 계속 졸라서야 칠 수 있었다.

내 나이 10살, 1년 동안 바이엘 상권을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데 악보를 보며 혼자 마스터했다. 그리고 바이엘 하권을 치며 다시 아빠한테 학원을 보내 달라고 혼자 계속 뚱땅거리니 마지못해 보내주셨다. 한 마디로 너무 기뻤다. 열심히 배웠고 다른 아이들보다 진도도 빨랐다. 3년 동안 체르니 40번까지 마치고,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까지 쳤다. 그때는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였는데 얼마 전 다시 본 악보는 이젠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는다. 중학교부터는 공부하라며 학원을 그만두게 했다. 하지만 난 음악을 계속하고 싶었다. 대학입시 때 전공으로 작곡을 하고 싶다고 하니 돈이 많이 든다며 허락되지 않았던 내 꿈은 지금까지도 아련한 꿈으로 남았다.

 

시작하고 싶어도 이제는 엄두가 나지 않는 말 그대로 '꿈'인 것이다. 간혹 나는 아직도 노랫말을 쓴다. 노랫말이라기보다는 그때 내 감정을 간단하게 기록한다. 쓰다 보니 좀 더 긴 문장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 마음 한 구석에는 쓰린 상처로 남아있기에 그 미련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계속 내 주위를 맴돌고 있는 건 아닐까.


오빠는 어린 내 기억에 아마 가수가 꿈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껏 오빠의 꿈을 물어본 적은 없다. 오빠는 고등학교 때 기타를 치며 곧잘 노래를 불렀다. 성량도 풍부했고 남자다운 목소리가 좋았다. 누군가가 오빠를 잘 이끌어 주었다면 방황하지 않고 좀 더 재밌는 인생을 살았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크다. 그래도 지금은 결혼하고 가족과 잘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좋다. 이제는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어서.





큰언니는 작가가 꿈이었다. 현재는 방과 후 아이들을 가르치고 봉사활동으로 센터에 나가 아이들의 공부도 돌봐주고 있다. 정식으로 작가 등단도 했다. 신문사 신춘문예 ‘희곡’ 부분으로 당선돼 단편으로 여러 작가와 공동으로 책을 출판한 적도 있다. 언니는 지금도 글을 멈추지 않고 쓰고 있어 어떤 스토리의 '장편소설'이 나올지 궁금반 기대 반이다. 아마도 깊은 얘기가 나올 것이다. 언니는 대학원을 가고 싶어 했지만 여자가 그때는 대학만 나와도 감지덕지한 세상이기에 꿈도 꾸지 못했다. 무슨 말만 하면 왜 그렇게 안 되는 게 많았는지, 언니는 그래도 지금까지 글을 쓰고 있고 죽기 전 좋은 작품 하나를 남기고 싶어 한다. 


작은언니는 어려서부터 빛이 났다. 걸어 다니는 인형으로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쳐다볼 정도로 성인이 되어도 예뻤다. 연극영화과를 진학했고 탤런트를 꿈꾸었으나 시험이 돌연 폐지되며 방송에 나갈 수 있는 건 교수 추천으로 볼 수 있는 오디션뿐이었다. 몇 번의 기회를 놓치고 몇 년을 지내다 보니 언니 꿈은 어느 순간 작아졌다. 물론 하고 싶은 연극은 했지만 배우는 때가 있기 마련이다. 요즘은 대기만성이라며 늦게 전성기가 찾아오기도 하고 시대가 변해 다양한 기회는 있지만 그때 언니는 더 이상 도전하지 못하고 집안 사정상 아마 중도 포기했을 것이다. 


결혼하고 시간이 한참 지난 어느 날, 언니한테 에이전시에 사진을 보내보라며 권유한 적이 있다. 아이도 어느 정도 컸으니 다시 도전해 보라 했지만 언니는 지금 평범하게 살고 있다. 미련은 있지만 막상 기회가 온다 해도 다시 시작한다는 게 두렵다고 했다. 난 아직도 언니가 작은 배역이라도 지금의 출발점에서 다시 시작하면 좋겠다.


언니는 속초에 카페를 오픈할 때 형부와 작은 무대를 열어 ‘1인 연극’을 하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아직까지 '꿈'으로 남아있지만 바닷가 카페 'SEESEA(바다를 보다)'에는 언젠가 작은 소극장이 만들어질 것이다. 그 꿈의 무대가 더 늦기 전에 빨리 찾아오면 좋겠다. 세월은 많이 흘렀지만 형부와 언니가 올리는 세상에 하나뿐인 진짜 인생 연극으로, 그 떨림을 다시 한번 느껴보고 싶다.





 

누구나 '꿈'을 꿀 수 있는 시간은 어린 시절을 지나 성인이 되면 잊고 살지만 또다시 마음만 있으면 시작할 수 있는 게 '꿈'이 아닐까. 아직까지도 말로 내뱉기 어려운 '꿈'이 도대체 뭔지, 좋은 기억보다는 허전함, 후회가 남아있지만 다시 그 꿈을 꿀 수 있다면 새로운 기대감, 설렘이 공존하기에 지금이라도 좋다. 주저하지 말고 늦었다 생각하지 말고 우리도 다시 그 '꿈'을 가져보자. 가져보는 건 돈이 들지 않는다. 거창하지 않아도 좋다. 내가 꾸는 꿈은 나만이 실현할 수 있기에 늦지 않았다. 내가 행복하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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