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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금도바다 Feb 05. 2022

왜 나는 아직도 눈치를 보면서 살까

[남과 다를 수도 있는데..]


일상을 살며 남들과 똑같은 생각과 행동을 할 필요는 없지만 그 '다름'으로 힘들 때가 있다.

어느 날 오후, 비가 내리니 우산을 써야 하는데 조카가 우산을 쓰지 않았다. 제법 굵은 빗줄기로 재차 말을 건넸지만 비를 맞고 걸어갔다. "왜 우산을 쓰지 않아, 감기 걸려, 남들이 쳐다보잖아."라는 짜증 섞인 말에도 결국 우산을 쓰지 않고 집까지 왔다. 그 이후로 웬만한 비가 내릴 때면 조카는 우산을 쓰지 않는다. 그때의 감정에 따라 행동할 수 있고, 우산을 쓰고 싶지 않을 수는 있다. 왜 나라고 비를 맞아 보지 않았겠는가.





특히, 사춘기 때는 별것도 아닌데 무슨 말을 해도 들리지 않을 때가 있다. 지금 조카의 마음이 그렇다고 생각해 본다지만, 어렸을 때부터 하고 싶지 않은 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집중할 때는 누구보다도 뛰어난 집중력을 보이고 지구력이 좋은 아이다. 하지만 절충이 필요한 부분을 가끔씩 이렇게 껑충 뛰어넘는다. 집에 와서 나중에 그 행동에 대해 물으니, 조카의 입장은 이랬다.


왜 남들의 시선에서 보는지,

그 말에 화가 났고,

난 남들과 똑같은 행동을 하는 게 싫다며

내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는 게 좋다고 했다.





할 말은 많았으나 하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은 어떤 말을 해도 잘 들리지 않는다.

말이라는 건 '함축의 의미'를 갖고 있다. 한 단어만 말해도 술술 다른 뜻이 몇 갈래로 나눠지듯 비단 우산으로만 하는 얘기가 아닌데 그 뜻을 어찌 알 수 있을까. 조카도 성인이 돼 그때 일을 기억할 수 있다면 아마도 이모 마음을 이해할 때가 올 것이다. 난 평범한 조카이길 바라는 게 아니었고 한 곳만 바라보는 외길로 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DDP 백남준 작가 전시에서 '인생에는 되감기 버튼이 없다.'라는 짧지만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조카와 함께 바라봤던 적이 있다. 그때 어린 너의 눈이 빛났듯 버튼을 누르며 세상 밖으로 나와 씩씩하게 걸어가 보는 건 어떨까? 함께 그 길을 걸어가고 싶다.

     





독특한 성격은 예술가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조카의 커가는 모습을 보며 힘들어할 때도 있었지만 좋은 성품을 가진 아이라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큰 눈망울이 아직도 내 눈에는 어린 조카인데 몇 년 후면 성인식을 한다. 조카가 어른이 되면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더 크게 다가오는데 잘 이겨 낼 수 있을까? 공부할 때가 제일 행복하다는 건 사회에 나오며 내가 뼈저리게 느꼈듯이 아마도 부딪쳐봐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뜰 것이다. 남보다 좀 늦게 출발한다고 해서 나의 인생주기는 결코 뒤처진 게 아닌 걸 알듯, 둥글게 둥글게 여러 갈래길을 걷는 조카의 행복을 품은 발걸음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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