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금도바다 Nov 12. 2021

홍대 다락방

[나는 누구인가]

       

30대 초반 이틀간 서울거리를 방황한 적이 있다. 지나면 별거 아닌데 언니와의 의견 충돌로 쌓인 감정이 폭발했다. 그때만 해도 해외나 지방여행으로 호텔이나 모텔에 가봤지만 서울에서는 한 번도 밖에서 잠을 잔 적이 없었다. 특히  갑자기 혼자 호텔에 들어가기도 망설여져 집 근처 신촌에 있는 가까운 모텔로 들어갔는데 빨간불에 놀라 다시 환불받고 커피 한잔하며 홍대를 걷다 ‘다락방’으로 갔다. 다락방은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와 다닌 만화방이다. 레코드 가게 '미화당' 2층으로 20대에도 종종 친구와 만화를 즐겼다. 24시간 영업한다는 문구에 나도 모르게 발길이 벌써 2층을 향하고 있었다. 남자 4,5명이 있었고 나 혼자 여자였다. 


처음에는 망설였으나 복잡했던 마음은 만화를 보며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밤 12시가 될 때는 고민했지만 만화를 보다 새벽 3시쯤 나도 모르게 스르르 눈이 감겼다. 눈을 떠보니 새벽 6시가 넘었다. 잠깐 화장실에서 고양이 세수를 하고 나와 일상으로 돌아갔다. 무슨 만화를 받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때 하루 동안 쉰 곳은 참 따뜻했다.

전날 갈 곳이 없었던 나는 2명의 친구 집에 전화도 했지만 곤란하다는 말을 들었다. 가족보다는 누군가와 얘기를 하고 싶었고 답답한 마음을 털고 싶었는데 막상 집을 나오니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틀간의 짧은 일탈을 끝으로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언니들이 수소문해 나를 찾아다녔고 속마음을 서로 풀었지만 내 마음이 편한 건 아니었다. 그때 감정을 생각하면 서로 많이 복잡했다. 다 큰 어른이라는 생각으로 무던하게 살고 있었지만 각자 서로 풀어야 할 숙제가 아직 남아 있었다.





벌써 10년도 훌쩍 지난 지금은 속초에 살며 바다를 보고 겉과 속의 감정을 느끼고 생각하며 서울 살 때보다 끝도 없이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질 때가 많다. 어디 갈 곳이 많은 곳도 아닌 이곳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바다를 보고 아무런 감정이 없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매일 보는 바다도 다른 얼굴로 고개를 내미는데 사람의 감정 변화는 더 심할 수밖에 없다. 때론 일탈의 생각이 아직도 꿈틀 될 때가 있지만 지금은 그때가 아니라며  감정을 달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일탈을 꿈꾸지만, 현실과 타협하며 선뜻 나서길 주저한다. 하지만 가끔씩의  무모함은 괜찮지 않을까? 답답함에 스스로에 갇히기보다는 어디를 떠나 낯선 길을 걷다 보면 '나'를 찾을 수도 있다.


작가의 이전글 얼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