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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고희 Jun 09. 2022

에어컨 좀 바꿉시다

몇주 엄마랑 병원 정기 진료 다녀오면서 엄네 동네에 있는 하마트에 잠시 들렀다.

엄마네 집 벽걸이 에어컨이 어느새 이십년이 넘 체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여름마다 덜덜 대는 에어컨이 불안해 해마다 바꾸자고 권했는데, 그때마다 엄마가 한사코 멀쩡하다 극구 역정 내며 우기는 바람에 감히 엄두를 못내고 있었다.

세월의 무게답게 에어컨은 색이 누렇게 바랠 대로 바고, 바람은 실낱처럼 며, 상하로 움직이는 날개는 어느 지점에서 멈춰 부르르 떨따금씩 진저리를 다.


- 엄마 저거 덜덜 떨리는데 괜찮아?

- 어, 저거? 멀쩡해!


노인들은 왜 그렇게 뭐든 새로 사는 것에 기겁을 하 모르겠다. 우리새 거라면 아주 사족을 못쓰는데... 몇년전 들인 커피머신도 지금 싫증나 새로 바꿀까 어쩔까 호시탐탐 기회만 엿보고 있는데 말이다.

그렇게 불안불안하게 에어컨 연명 오중, 작년에 유래 없이 더위가 일찍 시작되면서는 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으신 에어컨옹께서  긴긴 여름을 어찌 려되어 잠 다 안올 경이었다. 한여름에 고장이라도 나면 as든 설치든 가을이나 돼야 가능할 텐데, 가뜩이나 혈압 높은 엄마가 삼복더위를 어찌 버텨낼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때쯤 침이면 엄마에게 화해 엄마의 안부는 뒷전이고 에어컨생사여부부터 챙길 정도으니 말 다했다.

다행히 더위가 일찍 러가면서 에어컨은 무사히 살아남았지만, 올해 또 그 불안안고 살 수는 없는 !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만은 꼭 엄마를 설득리라 단단히 르는 중이었다.

그런데 병원에서 엄마가 수면 문제로 감정이 격해지며 눈물까지 보인 터라, 말 붙이기가 려워 말을 못꺼내고 있다가 밥 먹고 커피 마시며 슬슬 걷는 길에 잠깐 구경이나 한번 해보자 매장데려갔는데, 웬일로 엄마가 그럴까?하고 흔쾌히 따라 들어섰다.

확실히 인터넷보다는 매장이 훨씬 비쌌지만, 뭐든 인터넷으로 사면 못미더워하는 엄마를 위해 그냥 마트에서 적당한 제품으로 구입하기로 했다. 엄마는 한사코 당신이 겠다 우기셨지만, 나도 이번만큼은 물러서지 않고  카드로 (7개월 무이자) 한턱 크게 쐈다. 이 순간을 위해 그동안 돈을 열심히 모아 왔노라며!


며칠 뒤 엄마의 마지막이 될지 모를 에어컨이 배달되고 기사 아저씨가 설치를 하러 오셨다. 나도 일찌감치 서둘러 전철을 타고 엄마네로 갔다.

며칠 사이 엄마의 컨디션이 조금 나아 보였다.

오이소박이 담가주신다며 에어컨 설치하는 동안 마트도 다녀오고 분주히 움직이는 엄마를 보니 이제 좀 괜찮아지시는 건가... 이제 예전으로 다시 돌아가는 건가... 대가 됐다.

그렇게 설치가 끝나 커피 한잔 마시고 쉬었다 내려오려는데 엄마도 운동 겸 같이 걷겠다고 따라나섰다. 지난번 병원에서 열심히 걷고 햇볕 쬐고 운동하시라 주셨는데, 그래도 엄마가 그 말을 허투루 듣지 않고 이렇게 노력하시는구나 싶어 안심이 되었다.

엄마랑 약볕에 전철역까지 쉬엄쉬엄 같이 걸었다. 

예전손잡고 같이 다니던 시장 길을 걸으며, 기는 아직 그대로네~ 여기 예전에 우리 동창생이 하던 가겐데 지금은 문 닫았네~ 기 나눴다.


- 엄마 이제 죽기 살기로 또 열심히 살아볼게...

- 그래 엄마... 엄마가 편해야 우리도 편해...


중간에 딸아이가 좋아하는 '맛있는 녀석들'에도 나온 (내가 삼십년간 즐겨 먹던) 시장 떡볶이를 사서 엄마가 싸준 오이소박이랑 바리바리 손에 들고 전철 입구에서 엄마랑 아쉽게 헤어졌다.


- 엄마, 이제 어디로 갈꺼야?

- 나? 그냥 뭐 여기저기...


일하느라 그 동네 오십년 넘게 살면서 늘 다니는 미용실 말고는 속 깊은 얘기 나눌 친구 하나 없이 그렇게 혼자 터덜터덜 다니는 엄마 모습을 보니 안쓰럽기도, 안타깝기도 또 속상하기도 했다.


-엄마 가~


전철역 입구에서 말없이 내려다보는 엄마를 향해 훠이훠이 그만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다.

엄마도 너 먼저 가라며 손짓을 다.

그러고 계단 끝까지 내려와 다시 돌아보니 엄마가 어느새 가고 없다.

예전에 엄마가 날 방학마다 시골집에 떼어놓고 돌아설 때 저만치 가서 늘 눈물다고 하던데, 바로 이런 심정이었을까. 그날따라 왠지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았다.

집에서 나오기 전 엄마가 찔러 준 오만원권이 주머니에서 바스락거렸다.


내마음의 떡볶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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