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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고희 Dec 11. 2021

본태성 수전증을 앓고 있어요

그림을 그리는 이유

본태성 수전증은 유전적 질환이다. 본태성 떨림이라고도 한다. 내가 병원에서 설명을 들은 바로는 떨림을 관장하고 억제하는 뇌의 한 부위가 제 기능을 못해서 생기는 증상이라(아마도) 들은 것 같다.

엄마가 가끔 기운 없거나 당이 떨어지면 손이 떨린다고 했는데, 난 엄마보다 좀 더 심해서 그럴 때도 떨리고 그렇지 않을 때도 정도의 차이가 조금 있을 뿐 늘 떨린다.

다만 글씨를 쓴다던지, 젓가락질을 한다든지, 바늘에 실을 꿰거나 할 때처럼 정교하게 손을 쓸 때 한정이고, 쓰지 않고 가만히 있을 때나 동작 할 때는 떨리지 않는다.

본태성 떨림은 손뿐 아니라 몸이나 목소리에서도 발병할 수 있다.

학교 다닐 때 수업시간에 앞에 나가서 발표할 때면 항상 목소리가 떨리곤 했는데, 아마도 그것이 이 병의 징조였을까. 

기운 없을 때도 그렇지만, 흥분하거나 긴장할 때도 그리고 고 카페인을 섭취했을 때도 떨린다.


손이 본격적으로 떨린다고 느낀 건 삼십 대 초반 무렵이었다. 그때 직원들과 다 같이 둘러앉아 밥을 먹는 중이었는, 갑자기 손과 목이 뻣뻣해지면서 일종의 마비가 온 것처럼 영 어색해 수저를 들 수가 없었다. 그 상태에서 억지로 손을 들면 덜덜 떨려서 국물 같은 건 다 흘릴 정도였다.

특히 누가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선 더 그랬다. 그래서 술이나 차를 따르는 일은 저히 할 수가 없었고, 커피잔을 손님께 내어줄 때도 본의 아니게 두 손으로 공손히 하지 않으면 다그닥 다그닥 요란하게 떨려서 도저히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처음엔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가?;;; 곧 좋아지겠지 낙관했었다.

그러나 간이 지도 좋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 그래도 어찌어찌 주변인들에게 손이 떨릴 수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고  숨기고 살아서, 가족이나 진짜 자주 보는 들이 아니면 웬만해선 내 증세를 눈치채는 못했다.


결혼 상견례에서는 보통은 그런 곳에 가지 않겠지만, 그때 어머님이 몸이 안좋으셔서 시댁 근처 갈만한 곳을 찾다 보니 하필 '갈빗집'을 가게 되었다. 당연히 고기를 구우면 제일 서열이  내가 고기를 굽는 게 상이겠지만, 그때 난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가만히 보고만 있기 때문에 제일 끝자리에 있던 지금의 남편이 자리에서 일어나 팔을 길게 뻗어 고기를 잘라야 했다. 

그런 내 모습이 인상적이었는지, 남편 결혼  종종 그 얘기를 은연중에 꺼내곤 했다. 그때는 이미 내가 손을 떤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였는데도 그것 때문에 내가 고기를 굽지 다는 것에는 미처 생각미치치 못했지, 만 나면 그때 얘기를 에둘러 돌려 까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회사 여직원 하나가 있는데, 식당 같은데 가 른 사람 수저를 한번  법이 없고 물도 한번 따 주는 걸 본 적이 없며, 가만히 앉아 받아먹기만 하는 게 기가 무슨 공주인 줄 아는 것 같다는 것이. 그러면서 자기는 그런 여자들이 너무 싫 없다고 느다며, 경멸스러운 열변을 토하곤 다.

그때 내색은 안했지만, 나는 저 인간이 나 들으라고 저런 얘기를 하는구나... 이미 눈치채고 있다. 다만 내 치부를 스스로 내뱉기가 싫어 입을 꾹 다물 있을 뿐이다. 

혼하고 몇 년이 지나도록 편은 틈만 나 그런 식으로 슬슬 시동을 걸더니, 한번은 도저히 안되겠는지 너 그때 상견례에서 어른들 쭉 앉았는데 불판 바로 앞에 앉아 놓고도 고기를 안자르고 지켜보고 있었냐, 가 그때 얼마나 놀랬는 줄 아느냐며 디어 을 내비쳤다.

드디어 올것이 왔군...

아니 근데... 그게 결혼까지 해서 수년째 같이 살고 있는 마당에 그렇게까지 따질 인가?! 뭐 내가 일부러 안잘랐고 고백하면 이혼이라도 하려?!

아마도 자기가 선택 여자가 인성에 명적인 약점이 있는 건 아 늘 의심스럽고 찜찜던 모양이다.

나도 참다 참다 그날은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내가 손이 떨려서 그런 거잖아!! 그걸 아직도 몰라서 렇게 집요하게 캐는 거야??!!


내 말을 들은 그의 대답은 단순했다.

아!


그제야 일생일대의 난제를 끔히 해결했다는 , 개운한 깨달음의 외마디 탄성이었다!

으이구 인간아! 그걸 못자르고 지켜보기만 하는 내 심정은 어땠겠냐! 

그래도 내 '인성'에 그토록 집착했을지언정, 어쩌면 더 치명적일 수도 있는 '손 떠는 '만큼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으니, 참으로 맙고 또 다행이야 할까.


그 무렵 우연히 티비에서 본태성 수전증에 관한 다큐를 처음 보게 되었다. 가 바로 저 병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다큐에서는 과적 수술 없이도 음판지 레이저인지 그런 걸 이용해  뇌의 특정부위를 방법이 생겼다며, 노년이 되어 도저히 일상생활이 힘들어지면 수술도 고려해볼 수 있겠다 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래, 나도 언젠가 해봐야겠다...


처음 병원에 가기로 결심한 것은 아이들 어느 정도 키워놓은 후였다. 

어느  생애 처음 위내시경을 받으러 병원에 갔는데, (갈 때부터 무척 긴장을 하긴 했더랬. ) 간호사가 수면 주사 팔목에 놓으려는 순간 갑자기  손이 어찌나 덜덜 떨리던지 간호사 둘이 당황해서  팔잡고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제멋대로 움직이는 손을 움켜쥐고 간신히 주사를 놓 일이 있었다. 이고, 민망해라...

뿐만 아니라 자잘하게 은행이나 휴대폰 매장에서 신청서 같은 거 쓸 때 글씨가 개발새발 제멋대로 져서 직원분이 나를 흘낏거리는 등 온 수모?를 , 이더는 버틸 수 없다는 생각을 절실히 하게 됐다.


검사는 신경과에서 이루어졌다.

양팔 나란히 뻗어서 손이 얼마나 떨리는지 지켜보기, 글씨 쓰기 등등 이런저런 테스트를 해보고 나서 본태성 수전증이란 진단을 정식으로 게 되었다. 아직 수술까진 필요 없고 우선은 약을 처방해주겠다고 했는데, 다만 부작용으로 저혈압이 올 수 있고 그로 인해 기운이 몸이 가라앉을 수가 있다고 했다.

일단 복용하면서 지켜보기로 했는데 약은 만큼의 과는 없었, 처방받을수록 혈압 하염없이 계속 떨어 갔. 

가뜩이나 기운 없는 체질인데, 거의 하루 종일 누워있어야만 나마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면 일어나 라도 챙겨줄 수 있을 만큼 일상이 위태로와져서  약을 끊결심다.

대인관계도 점점 불편해졌고, 사람 만나는 일 어져갔다.


그 후로 조금이라도 팔에 힘을 기르고, 특히 어딘가에 초점을 맞추는 게 어려운 병이니 만큼 단련의 의미로 그림을 한번 그려면 어떨까  간편하게 탭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3년전 내 초창기 그림. 싱크대 선을 보면 내가 어떤 상태인지 대충 짐작할수 있다 ㅠ
작년 그림. 자동 선긋기 기능 사용 안하고 오로지 손의 힘으로만 그렸다.


처음엔 사정없이 떨리던 손이 어느 정도 스킬이 생기면서 많이 좋아졌다. 하지만 병이 고쳐진 것은 아니다. 이 병은 고칠 수가 없다.


손이 떨리기 때문에, 손을 쓸 때 항상 다른 사람들보다 힘을 두배 이상 줘야 해서 하루 집안일을 마치고 면 어깨, 팔목, 팔꿈치 등등 을 쓰기 위해 긴장했던 모든 곳이 근해온다. 기야 어제오늘은 손목과 어깨에 파스를 붙였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내 병은 내가 감하고 살아야지. 

어쨌든 덕분에 어릴 때 이후로 손놓았던 그림 다시 그리며 중년 새로운 취미 생활을 찾았으니, 안좋은 일 면에는 반드시 얻는 도 있다는 것을 시 한번 다.

늘그막에 수저 놓치는 일 없도록 앞으로도 쭉 (못 그리는 그림이지만) 그림 그리는 일에 매진해보려 한다.


+++ 인생은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다. 그냥 나의 약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다.


오늘도 나는 그림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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